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광화문 원래 자리 찾았다. - 경복궁 광화문지 발굴 조사결과 발표
이름 : 원지영
등록일 : 2007-09-10 14:24:30

광화문 원래 자리 찾았다. 
-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 발굴 조사결과 발표 

고종2년에 중건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광화문의 위치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였으며, 이와 연결되는 월대의 좌우 기단석과 어도를 확인하였다. 

원래 광화문의 위치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가 1968년 복원된 광화문이 있던 곳에서 남으로는 11.2m. 서쪽으로 13.5m 떨어진 곳이며, 경복궁의 축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한 이번 발굴에서는 광화문 앞 광장을 일컫는 월대도 발견되었는데 광화문 터 남쪽으로 연결되어 동서 너비 29.7m, 남북 확인길이는 8.3m로서 전체 추정길이가 52m인 점을 감안할 때 세종로 지하에 43.7m 정도가 더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말했다. 이밖에 궁장(담장)지와 청자·백자·청화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다수의 기와편도 함께 발견되었고, 일제시대 만들어진 전체 선로(침목) 일부분과 전신주(목제)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한편, 문화재청은 광화문터 발굴 전 발견된 동쪽 담장의 홍예 및 어구는 새로 만들어진 인도에 국민들이 현장을 관람할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만들고 유리를 설치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향후 광화문과 담장의 복원 시에 구체적인 전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게시일 2007-09-07 15:54:00.0  


--------------------------------------<보도자료>------------------------------------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 발굴조사 결과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에서는 문화재청의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다. 

광화문은 태조 4년(1395년) 창건되어 임진왜란(1592년) 때 소실되었으나, 고종 2년(1865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함께 중건되었다. 이후 일제 시대 때(1927년) 조선총독부를 신축하면서 건춘문 북편(현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이건 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 피폭으로 문루가 소실(1951년경)되었다. 이후 1968년 원래의 광화문 부근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한 것을, 2006년 12월 4일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을 가지고 전면도로 선형변경 및 기존 광화문(이하 구광화문) 철거 후, 지난 7월 4일부터 원래의 광화문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광화문지(光化門址)와 그 남편으로 이어지는 월대(月臺), 그리고 광화문의 동서로 연결되는 경복궁의 궁장지와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도로(현 아스팔트 도로 밑 60~70cm)가 확인되었다. 원 광화문은 구광화문(1968년 복원)에서 남으로 11.2m, 서로 13.5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되었으며, 구광화문이 경복궁의 축에서 3.75° 틀어져 있었던 반면 원래의 광화문은 경복궁의 축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광화문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만든 육축(陸築)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으로 문루를 세웠다. 육축에는 3개의 무지개문을 두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궁궐 문루 중 단 하나 밖에 없는 3홍예문(三虹霓門)이다. 광화문지는 기단석 기준 동서 길이 34.8m, 남북 잔존 길이 10.2m(총14.7 m)로 전체 너비의 2/3가 확인되었다. 

광화문의 중앙문은 왕이 출입하던 문으로 남편 기준 너비 500cm로 가장 넓고, 동문은 문관이, 서문은 무관이 출입하던 문으로 각각 너비 350cm로 같다. 

월대는 광화문지의 남편에 연결되어 동서 너비 29.7m, 남북 확인 길이는 8.3m로서 전체 추정 길이가 52m인 점을 감안할 때, 세종로 지하에 43.7m가 더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월대의 좌우에는 난간석이 유실되고, 중앙 부분에는 어도(御道; 폭520㎝)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궁장지는 광화문의 동서로 연결되며, 현재 너비는 330~410cm이다. 궁장의 남쪽에는 처마의 낙숫물을 받는 박석(50×70×20cm)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당시 지표면에 노출된 생활면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 밖에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전차 선로(침목) 일부와 전신주(목제)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청자 뚜껑편을 비롯한 분청사기·백자·청화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다수의 기와편 및 전돌편, 철도자 등 금속류가 있다. 

광화문은 조선시대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그 의미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 할 수 있겠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그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광화문의 제 위치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였으며, 이와 연결되는 월대의 좌우 기단석과 어도를 확인하여 향후 복원·정비의 결정적인 고증자료를 확보하였다. 

발굴단은 유구 하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광화문 및 월대, 궁장의 축조방식과 그 성격을 확인하고 나아가 선대(先代) 유구의 유무를 파악하여 태조 연간과 고종 연간의 광화문의 위치 이동 여부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한편, 광화문지 발굴 전 발견된 동쪽 담장의 홍예 및 어구는 새로이 조성된 인도에 행인들이 현장을 관람할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만들고 유리를 설치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향후 광화문과 담장의 복원 시에 구체적인 전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담당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신희권, 최인화 
전화번호 : 02-720-7068  
게시일 2007-09-06 11:21:00.0  

-------------------------------<조선일보 보도자료>----------------------------------

광화문 옛터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가 1927년 광화문을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로 옮기고 꼭 80년 만이다.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 권역 복원 정비사업' 일환으로 광화문 터를 발굴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6일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광화문 터는 지금의 도로 밑 70cm 깊이에 있었다. 파헤쳐진 흙 사이로 기단과 지대석이 보였다. 광화문의 3개 무지개문 터와 문 양 옆의 궁궐 담장 흔적, 임금이 다니던 어도(御道), 그 앞 광장인 월대(月臺) 자리까지 오롯이 보존돼 있었다. 조선시대 경복궁을 드나들던 이들이 지나던 흔적인 셈이다.

6월까지 해체된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11.2m, 서쪽으로 13.5m 떨어진 지점이 광화문의 원래 위치였음이 이번 발굴에서 확인됐다. 한국전쟁 때 피폭으로 훼손된 것을 68년 복원하면서 경복궁 중심 축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3.75도 틀어진 반면 이번에 드러난 광화문 터는 경복궁 축과 정확히 일치한다. 

원래 광화문은 장방형 돌을 쌓아 만든 육축(陸築)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지붕으로 문루(門樓)를 세웠다. 육축에는 3개 무지개문을 마련했다. 이 삼홍예문(三虹霓門)은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서는 광화문이 유일하다. 이 중에서 왕만이 사용하던 중앙문은 너비가 500cm로 가장 넓고, 문관과 무관이 각각 출입하던 동문과 서문은 너비가 같은 350cm였다. 월대는 이 광화문 터 남쪽에 연결돼 동서 29.7m, 남북 8.3m가 현재까지 드러났다. 연구소 측은 "월대의 원래 크기가 남북 길이 52m인 점을 감안할 때 세종로 지하에 43.7m가 더 묻혀있을 걸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월대의 난간석인 동자석 40개는 일제 때 옮겨지면서 없어졌으나 최근 그중 하나로 추정되는 것이 청와대 경비대가 있는 경복궁 뒷동산인 녹산(鹿山)에서 발견됐다. 동자석에는 경비대서 쓴 걸로 추정되는 '예방하고 이상 무 보고하자'는 문구가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기단석 기준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광화문 터는 동서 34.8m, 남북 10.2m(총 14.7m)며 이는 원래 광화문 규모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이 밖에 식민지 시대에 만든 전차 선로 일부와 전신주 흔적이 드러났으며, 청자 뚜껑과 분청사기.백자.청화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기와.전돌(벽돌)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확인한 광화문의 옛 위치 그대로 이르면 2009년 말까지 복원할 것이며, 월대는 전체 52m 중 세종로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인 8.3m까지 되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화문=조선시대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태조 4년(1395년)에 창건됐다. 세종 8년(1426년) 집현전 학자들이 '빛이 사방을 덮고, 감화가 사방에 미친다(光被四表 化及萬方)'는 의미로 명명했다. 임진왜란(1592년) 때 불타고 300여 년 만인 고종 2년(1865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함께 중건됐다. 그러나 일제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1927년 건춘문 북편(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겼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1951년께) 피폭으로 문루가 소실됐다. 복원사업을 위해 해체되기 전까지 세종로에 있던 광화문은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재건된 것이다. 당시 도로와 주변 건물들에 맞추느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 글 :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 사진 :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876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