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경복궁"은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 [최병선]
이름 : 원지영
등록일 : 2007-09-19 22:12:18
"경복궁"은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 [최병선]
경복궁(景福宮)은 태조4년(1395)에 창건된 조선 제일의 으뜸 궁궐(正宮, 法宮)이다. 궁궐의 명칭은 태조의 명을 받아 정도전이 시경(詩經)에서 뜻을 가져와 지어 올린 것으로 "새 왕조가 큰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건 초기 경복궁의 전각 규모는 강녕전 등 왕이 기거하는 내전건물 173간, 근정전 등 왕이 공식행사를 치르는 외전건물 212간, 정치, 행정관서인 궐내각사 건물이 390여 간으로 총 755간이였다. 그런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으뜸 궁궐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세종때였다. 이때 비로소 광화문(南門), 건춘문(東門), 영추문(西門), 신무문(北門) 등 4대문에 명칭을 부여하고 경회루, 사정전 등 주요건물의 중수를 시작으로 만춘전과 자선당 등 경복궁의 주요전각이 새로 지어졌다.
그러나 선조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왜군에 의해 경복궁이 모두 불에 타버린다. 그 뒤
고종2년(1865) 신정왕후의 명으로 경복궁의 영건이 결정되기 전까지 273년간 방치된 채 폐허로 남게 되었다. 그 뒤 경복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하게 된다. 당시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3년만인 고종5년(1868) 기둥과 기둥사이를 1간으로 볼 때 7,200여간에 이르는 큰 규모의 공사를 완성하게 된다. 마침내 1868년 7월 2일 고종이 대왕대비와 왕대비 등을 모시고 새롭게 지어진 궁으로 이어하게 되면서 경복궁은 다시 조선의 으뜸궁궐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1895년 일본 낭인에 의해 경복궁 건청궁 곤령합 옥호루에서 명성왕후가 살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되고,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俄館播遷)하자 28년간 왕이 거처하던 궁궐은 다시 주인 없는 빈 궁궐로 남게 된다.
빈 궁궐인 경복궁은 일제강점기 들어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훼손당하게 된다. 특히 근정전 앞에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립하고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광화문과 흥례문 등 대부분의 전각이 헐리면서 비어있는 공간에는 탑, 부도, 불상들을 옮겨다 놓아 경복궁은 제 모습을 완전히 잃게 되고 말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복궁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면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먼저 일본인들에 의해 훼손된 경복궁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근정전 앞에 버티고 있던 (구)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였다. 또 경복궁내에 있어
서는 안 될 탑과 부도 등을 이전하고 건물지 발굴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2009년까지 20년간 5단계로 구분된 대단위의 경복궁 제모습찾기 사업계획이 수립되고 본격적인 복원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1단계사업(‘90~’95)으로 강녕전 등 침전권역 12동, 2단계사업(‘94~’99)은 자선당 등 동궁권역 18동, 3단계사업(‘96~’01)은 흥례문 등 권역 6동, 4단계사업(‘97~’06)은 태원전 및 건청궁 등 권역 39동의 건물 복원을 완료하고, 5단계사업(‘01~09)으로 광화문 및 함화당, 집경당 행각 등 권역내 18동의 복원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9년까지 복원사업이 완료되면 경복궁은 총 93동의 3,250평 규모의 건물이 추가로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일제당시 남아있던 36동의 2,957평과 합쳐 경복궁에는 총 129동에 6,207평 규모의 건물이 존재하게 된다. 이럴 경우 고종 당시의 건물이 총 330여동에 15,600평 규모임을 감안할 때 전체건물의 39%와 40%의 면적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해방이후 경복궁의 규모는 건물이 36동으로 고종당시의 10.9%, 면적으로는 2,957평으로 18.9%밖에 안 되었다. 반에 반쪽짜리 궁궐도 못되다 보니 궁궐로서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청(궁능관리과)의 대대적인 경복궁제모습찾기 사업으로 앞으로 2년 후면 경복궁 전체 모습의 40%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원래의 모습은 아직 60%가 부족하다. 그동안 고종 당시 건물의 29.1%인 93동을 복원하는데 1,789억원이 투입되고 20년이 걸렸다. 아직 9,393평의 규모에 201동을 더 복원해야 경복궁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어려운 그간의 과정을 볼 때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다. 욕심을 낸다면 그래도 경복궁 제모습찾기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원건물의 사이사이를 살피고 관리하다 보면 그간의 복원사업에 아쉬운 것이 많다. 잔디밭과 빈공간이 너무 많아 황량함이 마음을 죈다. 1975년 혜촌 김학수 선생의 북궐도 그림을 보면 나무와 건물이 어우러져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서인지 마음을 편안하고 푸근하게 해준다. 이제부터라도 건물의 복원과 함께 나무와 꽃의 복원도 같이 했으면 한다.
얼마 전 건청궁 개방을 앞두고 유홍준 문화재청장께서 나무를 심고 괴석을 놓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현장에서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 비록 식재 시기는 놓쳤지만 조경기술을 동원하면 가능하기에 수령 좋은 나무
를 골라 정성껏 이식하였다. 몇 그루의 나무에 의해 건물과 어우러져 건청궁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경복궁 제 모습 찾기 사업이 건물 복원에만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2년 후 광화문과 좌우 궁장이 복원되고 월대가 제 모습을 찾는다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인 정궁을 회복하게 되면서, 경복궁의 정문에서부터 드나들던 옛 벼슬한 관리와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경복궁의 복원은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이루어낸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궁궐을 다시 되살려 놓은 것으로 후손들로부터 평가받을 것이다. 따라서 복원을 하고 다시 또 빈 궁궐로 남겨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는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인 경복궁을 국민에게 선보이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껏 누리며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의 관광인들이 찾아오는 경복궁을 만들어 우리 국민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은 4대궁 및 종묘, 13개 능원, 3대 유적관리소, 2관을 운영하면서 국민에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공개하고 있다.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인 경복궁은 수도 서울에 위치하여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문화유적지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수도 서울을 알리고 세계와 한국을 잇는 가장 뛰어난 메신저이다.
제모습찾기 사업이 시작되는 해인 1990년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은 914,661명으로 373,541천원의 관람수입을 올렸다. 이후 경복궁의 제 모습이 갖추어 지면서 관람객이 대폭 늘어 2006년에는 2,340,668명으로 3,651,257천원의 관람료 수입을 올렸다. 16년전인 1990년에 비해 관람객 250%, 관람료 수입이 980%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006년 18,000$에서 2007년에는 20,000$로 예상되고 있어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고 있다. 그만치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을 복원한 우리국민의 문화에 대한 관람의식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경복궁으로 들어갈 때는 모든 백성이 탈것에서 내려 걸어가고, 문은 가운데가 아닌 협간을 이용하며, 온 백성은 임금을 하늘같이 받들라” 라고 했듯이 궁궐은 존엄하면서도 엄숙한 공간이다. 따라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궁·능은 개인의 공간이 아닌 공유의 장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소장이 바라본 우리의 관람문화 수준은 아직도 궁궐을 도심공원이나 유원지, 관광지, 소풍장소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경복궁을 찾은 일부 초·중·고등학교와 초보수준의 관람객의 태도를 유형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관람문화 수준이 낮은 관람객의 행태
가. 평상과 휴게의자에 앉아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음료수, 빵, 아이스크림, 캔맥주 등을 먹는 행위.
나. 가족끼리 트럼프, 고스톱놀이, 돌로 연못의 물고기 맞추기, 과일나무 흔들어 따기, 나무 꺾고 껍질 벗기기, 화장실에서 웃통벗고 세수하기, 아무데서나 소변보기.
다. 외국인에게 접근하기, 큰소리로 저속한 표현하기, 품계석과 월대난간석에 걸터앉기, 연인들의 노골적 애정표현, 단체 노래부르기 등
둘째, 관람문화 수준이 낮은 초·중·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
가. 수학여행, 체험학습을 위해 단체로 경복궁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모임시간을 정해주고 정문에서부터 개별관람, 자유관람토록 하고 인솔교사는 주차장에 남아 술과 잡담, 인사동이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
- 감독의 통제를 벗어난 학생들은 손뼉을 치고 괴성을 지르며, 몰려다니고, 격렬하게 장난치며 싸우는 행동
- 엄숙하고 중요한 장소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등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 먹던 빈 깡통과 페트병을 놓고 발로 차며 놀거나 아무데나 버리는 행동, 건물벽을 기어오르고, 밟고, 낙서하고, 흠집 내고, 문짝을 뒤흔들고, 손가락으로 창호지 뚫고, 몰래 담배피우고, 호각불고 노는 행동
- 외국인에게 집단으로 말 걸기, 사진찍기 강요, 한국말로 욕설, 장난하기 등
나. 인솔 교사에게 학생들의 관람질서를 요구하자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도리어 경복궁관리자에게 문제학생 경고, 퇴장을 요구하는 선생님의 무책임한 행동
다. 외국인에게 접근하기, 큰소리로 저속한 표현하기, 품계석과 월대난간석에 걸터앉기, 연인들의 노골적 애정표현, 단체 노래부르기 등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질서한 관람문화가 건전한 시민의식과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15일 경복궁 소장으로 취임하여 9월에 접어드니 6개월 남짓 되는 것 같다. 취임하여 가장먼저 관심이 가는 것이 경복궁 제모습 찾기 20개년 사업이었다. 그동안 많은 건물이 복원되고 마지막 단계로 광화문권역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니 2년후에 관람객이 새로 복원되는 광화문으로 입장할 것을 그려보니 무척 기대가 된다.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제 모습을 찾아가는 으뜸궁궐인 경복궁은 매년 관람면적이 늘어나고 관람객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의 대통령과 왕세자 등 아주 귀하신 분들이 많이 방문한다. 그만큼 경복궁은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쉽고 편하게 많은 것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지인 것이다.
따라서 앞서도 지적하였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선진국 반열의 국민답게 문화재를 관람하는 문화의식을 한 단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의 우수한 문화의식과 함께 조선 제일의 으뜸궁궐이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경복궁을 대내외에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장 최병선
게시일 2007-09-14 13:1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