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개편 개막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7-20 22:13:04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개편 개막 
‘일맥상통 우리역사’ 통일신라실·발해실 확대개편, 고려실 신설기념 

ㅇ 일시: 7월 24일 (금요일) 오후 5시 
ㅇ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 

▣ 행사내용 

◇용산개관 이후 운영되어 온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의 주제별 전시체제를 시대별 전시체제로 개편하는 사업의 첫 성과로서 그동안 마련하지 못했던 ‘고려실’을 신설하고 통일신라실·발해실의 확대개편 개막을 기념하는 개막식임.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급자중심 전시’로부터 관람객의 시각과 요구를 먼저 고려한 ‘수요자중심 전시’로의 전환을 시도한 첫 성과이며, 전시기획에 있어서도 시대 흐름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전시기법’을 활용했음. 

◇통일신라실의 경우 창녕출토 신발굴자료인 말재갈 등이 전시되고 발해실의 경우 러시아에서 온 발해유물 청동부절 등이 선을 보임. 고려실의 경우 일제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황산대첩비명의 탁본과 경원지역의  
여진문자비 등이 최초로 공개됨. 또 국내에 드물게 전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우학문화재단의 수월관음도와 호림박물관의 지장시왕도가 함께 선을 보이는 등 고려시대의 국가지정문화재 23건 31점(국보 5건, 보물 18건)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공개하는 기회를 마련함. 

▣ 사업 추진배경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 개관과 함께 고고관, 역사관, 미술관, 아시아관, 기증관 등 여러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전시체제는 1층에 시대순으로 꾸며진 고고관과 주제별로 꾸며진 역사관이 따로 있고 2층 이상의 공간에 기타의 전시관들이 역시 주제별로 꾸며져 있는 구조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보기 어려웠다. 고고관은 구석기시대부터 발해실까지 시대순으로 되어 있지만 역사관의 경우 한글실, 금석문실, 왕과 국가실 등과 같이 주제별로 되어 있고 고려실과 조선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꾸며진 것은 전시자료의 중복 등 몇몇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층 전시실 구성체제를 고고관에서 역사관으로 이어지는 시대순(통사전시체제)으로 개편하기로 하고 준비해 왔다. 그 첫 번째 성과로서 오는 7월 24일 통일신라실과 발해실의 확대개편 개막과 고려실의 신설 개막식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내년에는 조선실이 신설된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개편은 박물관이 ‘공급자 중심’의 전시체제로부터 ‘수요자 중심’ 전시로의 전환을 시도한 첫 성과이다. 관람객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려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시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개별 전시물 정보의 전달’이라는 전통적인 전시기법을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중시하고 그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어 제공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통일신라실과 발해실, 그리고 고려실이 관람객들에게 새로 공개되는 7월 25일(토)은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운 고려왕조의 개국기념일이다. 이 뜻깊은 날 발해실에서 멈추었던 시대별 전시의 맥을 다시 잇는 기념의 장을 열게 된다. 

- 전시 개요 - 
▶ 통일신라․발해실 확대 개편 
〈통일신라실〉 


개편 전 
개편 후 
위치 
현 고고관 통일신라실 
현 역사관 한글실 
면적 
181㎡ 
306㎡ 
구성 
및 
내용 
* 골호 등 34건 50점 
* 명품 위주 전시 
* 토용, 십이지, 토기, 골호 등 
종류별 전시 구성 
* 황복사 사리기 등 90건 120여점 
* 주제별 전시 
* 왕권의 성장, 불국토, 왕경문화, 
지방문화, 바다(해상왕국)로 구성 
*고고학, 미술사, 문헌사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전시 


〈발해실〉 


개편 전 
개편 후 
위치 
현 고고관 발해실 
현 역사관 연표실 
면적 
100㎡ 
204㎡ 
구성 
및 
내용 
* 발해 기와 등 34건 40점 
* 건축, 대외교류, 생활, 불교문화 
로 구성 
* 발해 수도 상경성 출토품으로 
구성되었지만 대부분이 복제품 
* 발해 불상 등 95건 110여점 
* 러시아 연해주 출토 발해유물 전시 
* 상경성 출토 문자기와 24점 전시 
* 실물 위주 전시, 복제품 최소화 


▶ 고려실 신설 


신설 전 
신설 후 
위치 
현 역사관 인쇄실, 금석문실, 지도실 
위치는 왼쪽과 같음 
(고려1실, 고려2실, 고려3실) 
면적 

1,325㎡ 
구성 
및 
내용 
* 시대별 전시가 아닌 주제별 
전시체제 
(인쇄실, 금석문실, 지도실) 

* 시대별 전시체제 구축 
-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고려시대실(1,2,3실) 신설 
- 인종시책 등 총 759점 
-경원여진문자비및 황산대첩비명탁본등 최초공개, 우학문화재단소장 수월관음도·호림박물관소장 지장 시왕도 전시 
-국보 5건, 보물 18건 등 고려시대의 국가지정문 화재 23건 31점 동시소개 
* 고려1실: 후삼국 통일과 문벌 귀족의 시대 
- 인종시책 등 고려전기 유물 
* 고려2실: 대외관계, 무신정권과 고려의 정신문화 
- 수월관음도, 지장시왕도, 장양수 급제첩, 사신문 
석관 등 무신집권기 및 정신문화 유물 
* 고려3실: 원의 간섭과 새로운 모색 
- 티베트문 법지, 공민왕부부 초상화등 원간섭기 및 
고려말기 유물 
* 영상전시: ‘벽란도’, ‘만월대’ 등 6편 

▣ 주요전시유물 

말재갈과 발걸이 鑣轡, 鐙子 (신출토 발굴자료) 
[ 발걸이 높이 25.2㎝, 창녕 화왕산성 내 연못, 통일신라실 전시] 
말을 제어하는 재갈과 말에 올라 탈 때에 발을 디디는 발걸이로서 말과 관련이 있다. 재갈은 긴 막대의 끝을 살짝 굽혀 고사리모양으로 만든 재갈멈치개가 특징이다. 또한 발걸이는 삼국시대의 발걸이와는 형태가 다른 것으로 뒷꿈치를 제외한 발 앞쪽 전체를 감싸는 주머니 모양의 것이다. 이러한 말갖춤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모양이다. 이것들은 창녕 화왕산성의 연못에서 출토되었다. 이것이 연못에 들어간 사유는 기우제를 지낼 때에 말을 죽이던 습속에서 말 대신 말갖춤을 대신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화왕산성은 통일신라의 중요한 산성이며, 그 아래에 창녕 진흥왕척경비와 교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청동부절 靑銅符節 (러시아에서 온 발해 유물) 
[ 길이 5.6㎝, 러시아 니콜라예프카 성터, 발해실 전시] 
러시아 연해주의 니콜라예프카 성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원래는 두 개가 짝을 이루어 서로 합하면 옆면에 ‘합동(合同)’이라는 글자가 완성된다. 뒷면에 새겨진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섭리계(聶利計)’라는 글씨에서 당시 발해 변방의 성을 지키던 관직과 인물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인종시책 仁宗諡冊 
[고려 인종 24년(1146년), 길이 33.0㎝, 너비 3.0㎝, 두께 2.5㎝, 고려실 전시] 
고려 17대 왕 인종(재위 1122~1146)의 시호와 생전의 업적 등을 새긴 시책이다.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시책은 아들 의종이 글을 지어 바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일, 원구에서 제사지낸 일 등 아버지 인종의 생전의 여러 업적과 인품을 서술한 후, 말미에 그 시호와 묘호를 기록하였다. 각 돌의 옆면 위아래에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금실 같은 끈을 넣어 연결하도록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원 여진문자비 慶源女眞字碑 (최초공개 유물) 
[고려 의종 10년(1156년) 추정, 높이 179㎝, 폭 54㎝, 두께 44㎝. 고려실 전시] 
함북 경원군 동원면 화동 절터에서 출토된 비석이다. 함경도 경원지방에 여진인들이 세운 비이며 현재까지 확인된 여진 문자 비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지역에 세운 오롱초사라는 절의 건립 및 불상 제작과정, 시주자 등을 기록한 내용으로 판독되고 있다. 이 비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여진 문자와 여진 사람의 이름, 지명, 관직명 및 어휘와 형태소들을 보여주며 여진문자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황산대첩비명 탁본 荒山大捷碑銘拓本 (최초공개 유물) 
[조선 선조 10년(1577년) 세로 282㎝, 가로 142㎝. 고려실 전시] 
고려 말의 신흥무장 이성계가 전라도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일을 기념하여 조선 선조 때 세운 승전비이다. 김귀영이 비문을 쓰고 송인이 글씨를 썼다. 우왕 6년(1380)에 삼도순찰사 이성계는 함양으로부터 공격해오는 왜구들과 격전을 벌여 적장 아지발도를 사살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어 사라졌다. 현재 남원시 운봉면에 있는 비는 1957년 다시 세운 것이다. 

고려불화 高麗佛畵 
우학문화재단 소장의 수월관음도와 호림박물관 소장의 지장시왕도 등 2점의 고려불화가 선을 보인다. 오늘날 국내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10여점의 고려 불화 가운데 관음도와 시왕도를 한 점씩 선정하여 나란히 전시했다. 

고려불화 1.《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고려 14세기, 보물 제1286호, 세로 198.3㎝, 가로 68.8㎝, 비단에 채색, 우학문화재단 소장, 고려실 전시]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보타락가산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은 치마를 입고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寶冠)을 썼으며 보관에서부터 전신을 감싸는 베일을 걸치고 있다. 관음보살의 옆쪽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등 뒤로는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정병은 중생의 목마름을 없애준다는 의미를 가진다. 

고려불화 2.《지장시왕도 地藏十王圖》 
[고려 14세기, 보물 제1048호, 세로 111.1㎝, 가로 60.4㎝, 비단에 채색, 호림박물관 소장, 고려실 전시] 
지장보살과 심판관인 시왕을 그린 그림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로, 지장을 그린 그림에는 저승세계를 지키는 호법신이나 심판관의 모습이 함께 등장한다. 지장시왕도는 지장신앙과 명부시왕신앙이 결부되어 나타나고 있어 당대 말(唐代末) 승경(僧經)으로 엮어진「예수십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장시왕도는 당나라말기부터 세간에 유행하였다고 하며 현재 돈황지역에도 지장시왕도들이 남아 있다. 이 그림에서는 지장신앙이 주를 이루고 시왕신앙이 종속적 의미를 지니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러한 양식상의 특징으로 볼 때 고려 말 14세기경의 불화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