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통 표상은 근대가 편집·연출한 것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9-09 23:51:59
전통 표상은 근대가 편집·연출한 것
ㆍ전통문화硏 11일 ‘전통담론 구성의 역사’ 심포지엄
전통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에 의해 발견되고 편집되고 연출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주의나 자민족 중심주의가 개입하기도 한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 상황이 전통을 수립하고 전통담론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담론으로서의 전통 논의가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창조됐고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등을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구소가 11일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학교 연수원대강당에서 ‘전통담론 구성의 역사’라는 주제로 여는 제1회 학술심포지엄이다. 신채호의 ‘민족’ ‘국수’ 개념, 소설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조선조 성 풍속 담론, 한국전통미술의 재발견 등 전통 담론에 대한 다양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
첫 발표자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국 근대가 세운 전통 표상’이라는 발표문에서 백제인으로 4세기쯤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왕인(王仁)을 한국 근대가 세운 전통표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한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왕인은 한자 문명의 전파자이자 일본 문학인 와카(和加)의 아버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한국 역사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18세기 초 신유한의 <해유록> 등 일본 사행(使行) 기록류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실학 저술에 나오지만 “모두 일본 사행이 현지에서 얻어온 정보로 극히 단편적인 언급”이라는 설명이다. 역사서로는 유일하게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왕인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임 교수는 “이 또한 일본 측 자료들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20세기가 호출한 왕인”에 주목하면서 “아득한 옛날 한반도에서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이라는 존재가 ‘문화의 전파자’로서 근대적으로 부활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해 근대 문화 또한 일본을 경유해서 받아들였던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게 마련인 박탈감과 열등의식에 대한 보상심리로서 문화전파자로서의 왕인의 표상을 클로즈업시킨 면이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전남 영암군의 왕인 기념사업도 거론한다. 왕인의 영암 출생설에 대해 “근대 이전에 영암의 왕인을 입증할 문헌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왕인의 영암 출생설 기록은 1930년대 <조선환여승람> ‘영암편’과 영산포 본원사 주지로 와 있던 일본인 승려 아오키의 왕인 박사 동상 건립 취지문에 비로소 나온다. 임 교수는 “동상 건립 취지문은 1932년에 작성됐고 <조선환여승람> ‘영암편’은 1937년 발행된 것으로 결국 왕인의 기록 내용은 일본 쪽에서 들어온 것”이라면서 “최초의 발설자인 일본인 승려가 무슨 근거를 가지고 발설을 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임 교수는 “일본 근대 역시 왕인을 내세웠다”면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병탄한 일본은 동족동문(同族同文)의 논리를 내세웠고 왕인은 그 역사적 본보기로 삼기에 알맞았다”고 밝혔다. 일본인 승려가 영암에 왕인 동상을 건립하자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정책방향에 부응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나아가 “1970년대 이후 ‘영암의 왕인’ 작업은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 민족문화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그 이면에 한·일 친선을 다지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근대의 ‘관념적 반일’과 ‘현실적 친일’은 양면성이다. 반일과 친일의 사이에서 친일 가까이에 왕인이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한국전통미술의 재발견-1960~70년대를 중심으로’라는 발표문에서 “개별 미술품은 심미적이고 문화적인 동시에 물질적이고 사회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1960~70년대 문화재 정책은 여기서 민족을 치켜세우는 속성만을 부각시켜 전통으로 재발견했다”고 밝혔다. “국가에 의해 재발견된 전통미술은 권력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여기에 배제되는 미술이 계속 잊혀지도록 만드는 역기능도 하게 된다”고도 했다.
진경환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전통담론의 해체와 전망’이라는 발표문에서 “일제는 <광복군 아리랑>과 같이 비판적인 내용의 아리랑은 금지하고 사랑 타령과 인생무상의 내용으로 변개된 아리랑은 권장했다”면서 “흔히 이별의 한을 노래했다고 알려진 아리랑은 왜곡되거나 파편화된 불구의 전통일 가능성이 짙다”고 주장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