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조선왕조 문화절정기… 궁중화가들을 만나다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13-10-12 14:10:23



조선왕조 후기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난만한 발전을 이룩했던 문화절정기를 흔히 진경시대(眞景時代)로 부른다. 숙종부터 정조에 걸친 시기다. 주자성리학이 조선 전기 200년간 제구실을 다한 다음 노쇠화 현상을 보이자 퇴계와 율곡이 조선성리학으로 심화 발전시키면서 진경시대의 주도적 이념으로 부상했다. 고유이념에 대한 자긍심은 고유색 짙은 진경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이는 우리 국토와 풍속, 우리 내면의 정신성을 드러내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토대가 됐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전시를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가을에는 진경시대 궁중 미술가였던 화원들의 작품을 모아 13일부터 27일까지 ‘진경시대 화원전’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연다.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출품된 화원들은 진경화풍이 탄생한 시점보다 한 세대 처진다는 점이다. 진경산수화풍의 시조인 겸재 정선(1676∼1759)과 진경풍속화의 시조인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은 사대부화가였다. 새로운 화풍의 창안은 새로운 도전과 이념에 대한 선구적 이해가 바탕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궁정장식화를 업으로 삼았던 화원들은 일종의 기술자로 새로운 화풍을 창안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한 세대 지난 후 화원들이 겸재 그림을 배우고 흉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화원화가들은 왕실전속 전문 직업화가로 국왕을 비롯한 왕실이나 궁척들의 주문에 따라 기존의 화풍을 활용하여 보다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화원들은 회화사에서 문화발생기보다 문화절정기에 항상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전시에는 진경시대 화원화가 21명의 그림 가운데 시대별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 80여점이 나온다. 진경시대 초기 화원화가들의 그림은 진경화풍과는 거리가 먼 것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진경화풍을 이끌었던 사대부화가들의 작품과 이들 화풍을 모방한 화원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겸재를 따라 배운 불염재 김희겸(1710∼?), 현재 심사정(1707∼1769)을 모방한 호생관 최북(1712∼1786), 겸재의 정밀사생화풍을 본받은 화재 변상벽(1730∼?), 겸재와 관아재를 계승해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장식한 단원 김홍도와 고송유수관 이인문(1745∼1824), 한양서울의 도회풍속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원 신윤복(1759∼?) 등의 작품이 출품된다.

이밖에도 겸재와 관아재, 현재 화풍을 아울러 독자적인 진경풍속화풍을 이룩했던 긍재 김득신(1754∼1822), 초원 김석신(1758∼?), 김건종(1781∼1841)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들 3인은 조선후기 대표적 화원가문인 개성김씨 집안 사람들이다.

신윤복의 그림 ‘유곽쟁웅(遊廓爭雄·유곽에서 사내다움을 다투다)’은 기생집에서 벌어진 주먹다짐이 오고간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말리는 사람과 웃통을 벗어젖히고 으름장을 놓는 모습은 오늘날의 술집 풍경과 다를 게 없다.

김건종의 ‘호리건곤(壺裏乾坤·잔 속의 하늘과 땅)’은 유교, 도교, 불교의 3교를 대표하는 유학자와 승려, 도사가 한자리에 모인 그림이다. 화양건을 쓴 도사가 승려에게 잔을 건네고, 유학자는 승려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유불선 삼교회통(三敎會通)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교가 주도한 조선시대엔 흔한 그림이다. 유교가 주도한 조선시대지만 일상생활에선 여전히 도교와 불교의 습속이 여전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주류가 아니었던 불교와 도교 입장에선 유교와의 병존을 모색하는 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는 점도 삼교회통의 한 요인이었다.

영·정조시대 화원화가들은 왕과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와 정조가 그림에 능한 문예군주였기 때문이다. 영조와 정조는 자신들의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화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해 등급을 가르기까지 했다. 정조는 도화서 화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시행해 규장각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을 뽑았다. 자비대령화원은 수시로 왕과 만나 정치와 회화적 이념을 교류했다.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정치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섰던 것이다. 이들이 한국회화사에 문인화가를 능가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대표적 인물이 현감까지 지낸 단원 김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