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혼탁한 세상…‘어짊’의 의미 되새기며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13-01-11 10: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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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지어진 궁궐은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 등 5개다. 

이중 경복궁은 조선 창건초기 ‘시경’의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왔으며, 창덕궁은 태종 때 처음 세워진 궁궐로,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게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창경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壽康宮)터에 1484년 성종이 별궁으로 건립했으며, 경희궁은 광해군이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이 살던 집터에 궁궐을 지어 당초 경덕궁이라 했지만 영조때 다시 경희궁으로 개칭했다. 

돌담길로 널리 알려진 덕수궁(사적 제124호)은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고종이 1907년 왕위를 순종에게 물려준 뒤,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하지만 원래는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리고 물러앉은 궁 이름이 덕수궁(德壽宮)이었다. 곧, 덕수궁은 왕위를 물린 태상왕의 궁궐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왕에게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덕수궁은 1904년의 큰 불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이 지어지면서, 원래 궁궐 공간의 조화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문이 바뀐 것이다.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비록 조선 후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지만,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관헌과 석어당 사이에 있는 새담에 세 개의 일각문 중 가운데 문이 유현문(有賢門)으로, 이곳의 꽃담은 덕수궁의 백미다. 아치형 문을 벽돌로 쌓았는데, 바깥인 서쪽과 안쪽인 동쪽이 전통 문양으로 장식되어 눈여겨 볼만하다. 글씨는 전서(篆書)로 되어 있으며, 유현문은 전돌을 아치형으로 쌓고, 글씨 좌우에 봉황을 새겨 넣는 등 매우 공들여 만들었다.

꽃담과 꽃담이 연결되는 곳에 낸 무지개 모양의 유현문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었던 두 전각의 분위기와 화사하게 어울린다. 

유현문(惟賢門)은 ‘현명함을 생각하는 문’이란 뜻이다. 공자가 ‘논어’의 ‘이인편’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마을이 어진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곳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子曰 里仁이 爲美하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어질지 않은 자는 곤궁함에 오래 처할 수 없으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어짐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어진 것을 잘 이용한다’(子曰 不仁者는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이니라), ‘오직 어진 자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子曰 唯仁者아 能好人하며 能惡人이니라),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한 일이 없다’(子曰 苟志於仁矣면 無惡也니라).

세상이 얼마나 혼탁했으면 공가가 ‘어짐’에 대해 이처럼 강조했을까. 고종이 승하할 때까지 비운의 주인공 덕혜옹주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드나들었던 문이 바로 유현문이다. 고종이 60세에 딸을 얻으니 막내딸 덕혜옹주란다. 누구든지 지나 다니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유현문. 왕은 옹주가 이동할 때면 반드시 유현문을 통과하게 했다는 일화가 예사롭지 않으며, 고종의 딸 사랑이 참으로 지극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유현문은 전돌을 아취형으로 쌓고 땅의 높낮이에 따라 담장의 높이에 변화를 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지만 이곳에 설때마다 장차 벌어질 자신의 앞날에 대해 까마득히 모른 채 어린 시절 즐거이 뛰놀았을 덕혜옹주의 체취가 맡아지는 듯 가슴이 아리다. 

유현문의 홍예(무지개)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용이 보인다. 구름은 둥글게 말려 피어오르는 모습이다. 용의 머리에는 뿔이 솟아 있으며 몸에는 갈퀴와 비늘이 보인다. 몸은 구불거리며 위쪽을 향하고 있다.

때문에 유현문은 벽돌로 만든 화담으로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후원인 전통정원양식으로 조성된 ‘희원’ 입구문으로 재현될 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덕수궁 꽃담 사이로 보이는 자그마한 유현문은 조선조가 비운의 역사, 설움의 역사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이다.

함녕전 아궁이에서 뺀 불의 연기가 조금 떨어진 굴뚝으로 연가(굴뚝)에 ‘수(壽)’자를 비롯, 담장을 길게 연결하는 이곳의 꽃담은 화려함이나 탐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으며, 소박하고 단아하며 야하지 않아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배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석조물과 석함 및 괴석들의 배치가 적고, 몇 개의 굴뚝만 있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해지면서도 경사면마저 넉넉하게 자리 잡고 있어, 푸르름은 배가 되는 된다. 특별한 장식으로 꾸미지 않아도 이토록 품위있게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조상들의 예술적 안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