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국고전번역원, 왕실 제사기록 ‘사직서의궤’ 번역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13-01-24 1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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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고 훗날을 기약하소서.”
사극을 보면 면전에서 왕에게 주로 올리던 이 말은 조선이 국가의 근본을 종묘와 사직에 뒀으니 이를 먼저 보존해야 한다는 간청이다.
조선은 조상 숭배와 예, 교육을 중시한 유교에 뿌리를 둔 왕조였다. 유교 중심의 조선은 나라를 다스리던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영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신주라는 상징물을 만들어 보관했다. 이 신주를 모신 곳이 바로 종묘다.
또 왕실에서는 백성의 삶이 평안하도록 풍년을 기원하고자 땅의 신과 곡식의 신, 즉 ‘사직(社稷)’을 따로 두어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던 곳이 사직단이며, 사직단을 관장하는 관청이 사직서(社稷署)다.
최근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제사의 기록인 ‘사직서의궤’를 번역했다.
의궤란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말로, 의례를 예법에 맞게 행하기 위한 전례(典例)를 기록한 책이다. 책은 왕실의 의식과 행사를 개최하기까지 준비, 실행, 마무리 등 전 과정을 그림을 곁들여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했다.
의궤를 편찬한 이러한 배경에는 의식이나 행사의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어 후대 사람들이 법도에 맞게 의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고, 행사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해 이후에 시행착오 없이 원활하게 행사를 치르는데 참고할 수 있게 하는 나라 주인의 뜻이 담겨있다.
‘사직서의궤’는 1783년(정조 7년) 정조의 명령으로 사직서에서 편찬했다. 책에는 사직의 제도와 의식 절차, 관련 행사 등이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사직신(땅과 곡식의 신)에 대한 제사는 종묘제향과 마찬가지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당에서 제사 지내는 종묘제향과 달리 사직에 대한 제사는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이는 제단을 노출함으로써 ‘상로풍우(霜露風雨)’를 직접 받을 수 있게 해 천지의 기운을 받고자 함에서 비롯됐다.
조선 왕실은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경우 반드시 사직에 고했는데, 사람은 토지와 곡식 없이는 살 수가 없으므로 양쪽에 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이를 사직단이라 불렀다.
사직서의궤에는 사직단의 전경, 사단과 직단의 신주 배치와 주변 담장의 모습, 제사지낼 때의 음식, 제기, 악기, 국왕과 왕세자, 재관의 복장 등이 상세하게 그림과 함께 설명돼 있다.
또 당시에 옷감을 잴 때 사용하던 포백척을 비롯해 4종의 자(尺)의 그림을 실물 크기로 그려 책을 보는 사람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에 번역된 책(오세옥, 김기빈 옮김)에는 이러한 상세한 설명을 비롯해 그림에 대한 설명 등이 그대로 담겼다.
한편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천여 년 동안에 행해졌던 사직대제는 매년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날 밤에 거행됐다. 이후 1908년(순종2) 일제의 강압으로 폐지됐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복원돼 지난 2000년 10월 19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됐다.
현재 사직대제는 매년 9월 셋째 주 일요일에 서울 사직단(사적 제121호)에서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사직대제보존회 주관으로 봉행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