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국 근대건축과 도코모모 코리아의 역할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6-12-16 08: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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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건축과 도코모모 코리아의 역할
김정신(金正新)
DOCOMOMO Korea 부회장
단국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1. 서언
지난 30년간 한국사회의 고도경제성장으로 우리의 도시환경은 급변하였고, 개발과 재개발의 역동적인 힘에 의해 근대사의 물리적인 흔적들이 거의 지워졌다. 다행히 근대건축과 그 보존에 관심을 가진 소수 학자들의 노력으로 개항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50․60년대의 건축도 한국건축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정부도 이에 대응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 국토가 재개발․재건축의 열풍에 휩싸인 우리의 물신주의 경향과 최첨단 기술에의 지향, 그리고 그에 따른 일상적인 감성의 변화는 이러한 보존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이제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은 학자들의 연구와 당국의 제도적인 지원만으로 충족될 수 없다. 기록과 보존, 활용을 통한 보다 체계적인 실천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더욱더 그 바탕을 다져야 한다. 건축역사학자, 건축가, 문화예술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도코모모 코리아(DOCOMOMO Korea)가 이러한 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코모모 코리아의 창립을 자축하며, 한국 근대건축의 성격과 연구과제, 그리고 도코모모 코리아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한국 근대건축의 흐름과 성격
지금까지 한국 건축계에서 논의되었던 ‘근대건축’의 개념은 ‘근대라는 시대에 출현한 건축’이라는 광의의 일반적인 의미와 ‘근대적인(modern) 건축’ 혹은 ‘근대주의(Modernism) 건축’이라는 협의의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고대, 중세, 근대의 3분법에 의한 근대, 즉 ‘가까운 시대’의 건축을 말하는데 그냥 가까운 시대만이 아니라 ‘이전시기’(중세)와는 확연히 다르고 ‘지금’(현대)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즉 ‘근대성’을 지닌 건축을 말하며, 후자는 20세기 초 서구 건축 사회의 근대건축운동(Modern Movement)에 의해 생성되고 전세계에 확산되어 하나의 규범적 형태로 공식화 된 국제주의 양식을 뜻한다.
한국 근대건축에 대한 성격규명은 아직 하나로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4가지 주제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 근대건축의 시대적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1) 서구 양식건축의 수용
개항이후 이질적인 서양건축이 직접 또는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고, 그것은 주로 서양의 양식주의 건축으로서 구법과 재료, 공간형태, 기능이 전통건축과 다른 것이었다. 건축의 주체가 외국인이었지만 우리 도시 경관의 일부를 이루었고, 학교, 교회, 공공, 주거 및 상가건축은 한국인이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한국 근대건축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 수용과정의 타율성이 비판되기도 한다.
2) 전통건축의 근대적 변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외래건축의 영향과 전기, 전화, 철도, 수도 등 신문명의 보급으로 전통건축도 차츰 근대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전통사회에서 경험하여보지 못한 새로운 기능의 교회와 학교 및 도시상업 건축에서 그 변화가 뚜렷하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목조 기와지붕에 2층을 두고 난간과 기둥, 칸벽은 서양식 또는 중국식을 절충한 소위 한양절충식의 건물이었다.
전통건축의 변화내용은 공간의 확대와 중층화, 도시 주택의 순수 주거기능에서 복합기능으로의 변화, 신재료와 신기술의 채용, 용도에 따른 건축유형의 분화, 택지와 배치의 변화, 장인의 조직화와 건축술의 평준화 등이었다.
자주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 명쾌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3) 모더니즘의 유입과 모방
탈양식과 탈장식의 근대 합리주의 건축은 1930년대 후반 일본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일본 건축계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근대건축이 전개되었고 1930년대를 전후하여 국제주의 양식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일본의 이러한 경향은 당시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건축가들에 의해 이 땅에도 유입되었는데 총독부가 설계한 공공건물들과 학교, 전화국, 공장, 일부 민간설계에 의한 상업건축에서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인 건축가가 탄생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작품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양식주의적인 특성이 남아있긴 해도 철근콘크리트조와 평지붕 구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구조체계가 외관에 표현되기도 하였으며 평면구성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이들 ‘초기 모더니즘’은 서구 근대건축(모더니즘)의 근간이었던 사회주의적 이념과 아방가르드정신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구건축의 양식을 모방하였을 뿐 그것에 내재된 정신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4) 모더니티의 추구
한국건축과 서구건축의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구의 근대건축을 모방하고 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세계건축의 흐름에서 소외되었던 당시의 건축가들은 근대건축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고 주로 양식과 기술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야 근대적 자아를 통한 세계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근대건축의 근본정신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한국 건축의 자율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한국 현대건축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네가지 주제는 대채로 시간적 흐름에 부합하나 연속적 과정으로 전개되지 못했다는데 한국 근대건축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건축을 서양 근대건축(Modernism)의 개념으로 일관되게 적용하여 정의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서양의 경우 광의와 협의의 근대건축이 연속적 과정으로 전개되었으나 비서구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으며, 서양의 근대와 근대건축도 복합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3. 한국 근대건축사 연구의 과제
1970년대 들어 근대건축사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적잖은 연구성과가 있었으며,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새로운 사실들이 발굴되었고, 기존의 관점과 다른 입장에서 근대사를 보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근대건축사가 한국건축사에 기여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고, 실천적인 행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근대건축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현재성이 아직 철저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떠오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건축은 전통과도 현대와도 연결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남아있다. 근대건축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다 깊고 넓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연구방법론의 정립
건축은 양식이나 형태만의 것이 아니고 또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만으로 결정지을 것도 아니다. 근대건축사학의 전형이 형성된 19세기 후반 이후 서양에서는 다양한 건축사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근대사는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건축사에서의 주체적 역량을 중시하고 한국근대건축사를 발전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우리 자체의 이론적 확립과 사관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2) 연구대상의 범위와 확대
학위논문과 관심의 증가로 인해 근대건축사의 연구주제가 점점 넓어져 가고 있는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각 건물 유형별 건축사의 성과가 돋보인다. 그 동안 학교, 교회, 주거건축에 대한 접근이 적지 않지만 개별 건축물에 대한 연구는 더욱 그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당연히 건물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건물을 지은 설계자의 의도나 시공자의 기술여건, 집을 지었던 사회와 경제여건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건물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함께 고려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시간적으로 19세기 전반부분(실학의 완성기)이 거의 전무하다. 개항이전의 건축과 광복이후의 건축과도 연계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공간적으로 북한지역과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도 포함되어야 한다.
3) 비교사학의 필요성
관련학문간의 비교와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건축은 그 시대의 사회․경제․문화․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이런 건축외적인 상황과 단절하고서는 바른 역사해석이 불가능하다. 건축과 영향을 주고받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해석을 함으로써 근대건축의 자료한계를 극복하고 건축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의 세분화를 지양하는 현대추세에 비추어서도 범 학문간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역사에서 이론은 인간 여러 집단의 역사를 비교해 봄으로써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사와 세계사의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동아시아의 근대건축을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관점과 역사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의 근대건축을 보는 시각을 보다 객관화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문화와 견주어보는 열린 시각을 갖출 때 비로소 세계건축사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우리의 특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4) 실증적 자료발굴과 도면화
아직도 실증적 자료부족의 한계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건축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사료는 건물 자체이며 또한 관련 문헌이다. 그러나 근대건축물들은 자주성을 상실한 시대의 건축이라는 의식적 거부감으로 인해 기록 없이 사라져가고 있고, 문헌자료도 지극히 부족하다. 우리 손으로 직접 기록하고 보관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의 서술주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해독과 해석의 어려운 점이 많지만 당시 우리와 관련이 있었던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서양 여러 나라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그간 근대건축사의 상당한 양의 연구가 있었다고 하지만 시간과 노력,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현장에 밀착한 연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변형되고 사라져 가는 현존 건축 유구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남아있을 때 현장조사와 실측을 통해 도면화 하여 연구자료로 남기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며 절실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5) 보존에 대한 연구와 실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양식 건축물 등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는 6․25전란과 인식부재, 개발논리로 인해 거의 훼손․멸실 되었고 극히 일부만이 지정․보존되어 왔다. 다행히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마련과 학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진적인 제도의 정착과 효율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적 이해와 보존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며 이해 대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천적인 시민운동의 전개와 체계적인 보존기술의 개발이 시급하다.
4. 도코모모 코리아의 역할
그러면 도코모모 코리아의 출범이 왜 필요한지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혹자는 얼마 되지 않는 건축사 연구 인력의 열악한 환경에서 건축학회나 건축역사학회의 한 분과로서 활동하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학회의 근대건축사 부분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도코모모 코리아는 학자중심의 역사학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건축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창립하였고 학문적 연구도 있지만 앞으로는 많은 예술문화 운동가, 기술자, 시민들의 참여로 이론위주가 아닌 실천위주의 조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도코모모 코리아의 역할은 도코모모 코리아 2003의 선언에서 뚜렷이 밝히고 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조직이 도코모모 인터내셔널(Docomomo International)의 가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과제는 한국 근대건축의 목록화 작업이며, 우리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회의), mAAN(아시아 근대문화유산보존전문가네트웍) 등의 국제적 네트워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제적 교류의 창구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며 근대문화유산의 기록 보존을 위한 제도적․기술적 지원과 시민계몽운동, 교육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의 역사적․산업적․문화적 유산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보존기반을 확대하며, 나아가 국가적인 등록과 보존기술의 연구․개발, 시민계몽운동, 교육활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건축물 중심에서 벗어나 장소, 가로, 문화조경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근대건축과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가졌던 피상적인 시각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한국근대건축사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자체의 이론적 확립과 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비 서구권이라는 특수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근대건축 그 자체를 되묻고 그 잠재적 가능성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이웃 문화와도 견주어보아야 하고 서구의 근대건축도 보다 심도 깊게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세계건축사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우리의 특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