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순장자들은 어떻게 죽임을 당했을까?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7-12-30 23:57:56

?>
순장자들은 어떻게 죽임을 당했을까? 
송현동 고분 발굴조사..'음독설'에 무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지증왕 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지했다(下令禁殉葬)고 한다. 그러면서 그 이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죽여서 함께 묻었다(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고 덧붙였다. 

정말 그랬을까?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라시대 왕릉을 발굴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증왕 전후 시기 신라 무덤 중에 왕릉이라고 판명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다만, 1973-75년 발굴조사한 경주 황남대총은 총 길이 120m, 봉분 높이 23-24m에 이르는 규모로 보아 왕릉급 무덤이 거의 확실하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이 황남대총은 봉분 2기를 남쪽과 북쪽에 나란히 붙여 조성한 소위 쌍분(雙墳)이며,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는 그 모양이 표주박을 닮았다 해서 표형분(瓢形墳)이라고도 한다. 

발굴조사 결과 남분(南墳)이  
먼저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남자가 묻힌 데 비해 나중에 봉분을 남분에 이어붙인 북분은 묻힌 주인공이 여자였음은 출토 유물로 보아 거의 틀림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아마도 왕과 그 왕비 무덤일 것이다. 나아가 이들 쌍분이 조성된 시기가 지증왕 이전임을 의심하는 연구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황남대총, 그 중에서도 남분은 지증왕이 등장해 이제는 더 이상 순장을 하지 말라는 조칙이 내려지기 전에 등장한 왕릉임이 거의 확실하게 된다. 

한데 남분을 발굴했더니 무덤 주인공을 제외하고 대략 8-9명에 이르는 순장 흔적이 드러났다. 애초 발굴단은 순장자가 1명이라고 발표했으나, 1990년대에 들어와 그 유물과 발굴 당시 도면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려 10구 가까운 순장자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국왕이 죽을 때 10명을 순장했다는 기록만 보이지만, 이것이 국왕만 순장을 한다는 뜻을 아닐 것이다. 규모는 작았겠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춘 지배층에서는 순장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비단 황남대총 뿐만 아니라 지증왕 시대 이전 신라, 혹은 그 영향력이 짙은 지방에서 순장은 매우 광범위한 양상을 보인다. 경산 임당동 유적이라든가, 경남 양산 부부총 같은 데가 그런 곳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벌이는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조사한 대형 석실분인 6-7호분은 물론이고, 최근 조사한 15호 석실분에서도 순장 흔적이 드러났다. 특히 15호분은 순장자일 가능성이 매우 큰 인골이 4개체분이나 확인됐다. 

하지만 인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뤄지기 전에는 이를 꼭 순장이 남긴 유산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고인골 분석에 주력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서민석 박사는 "송현동 15호분 인골이 순장자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는 인정하지만, 추가장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는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추가장이란 특정한 무덤이 조성되고 그 첫 매장이 이뤄지고 난 뒤에도 추가로 다른 사람을 매장하는 일을 말한다. 추가장 횟수는 1회가 보편적이지만, 곳에 따라서는 그 이상 이뤄진 곳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송현동 15호분 인골 4구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추가장이 아니라 순장이 남긴 흔적으로 간주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인골 4구가 주피장자와는 시신을 안치한 방향도 정반대인 데다, 그 위치 또한 입구 쪽에 몰려 있으며, 특히 4구가 일정한 간격과 방향을 유지하면서 줄을 이룬 채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 인골 4구가 같은 시기에 이곳에 매장되지 않고서는 있기 힘든 현상이다. 

순장이라고 간주할 경우에도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첫째, 순장자는 어떤 사람이 선별되었을까? 둘째, 순장자는 죽은 상태로 무덤에 매장되었을까 아니면 무덤에 산 채로 들어왔다가 영원히 이곳에 묻혔을까? 셋째, 이들 순장자는 어떻게 죽임을 당했을까? 등등이 여전히 해명할 문제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런 단서가 없다. 다만 이에 대한 기록이 간헐적으로 남은 중국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생전에 주인을 모시던 노비 같은 부류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은 인골 발견 상황에서 비교적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인골 4구가 일정한 간격, 일정한 방향에 따라 발견됐으므로, 이미 죽은 상태에서 안치됐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순장자들은 어떻게 죽임을 당했을까? 순장과 관련한 중국 기록이나 조선시대 문헌에는 '자발적'으로 따라 죽는 경우가 더러 발견된다. 사실 이런 '자발적 자살'은 현대 사회에서도 비교적 자주 들려오는 소식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 따른 합장(合葬)은 순장이라기보다는 '순사'(殉死)로 간주하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순장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을까? 자발적 자살이 아니라면 가능성은 타살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 또한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그 원인이나 방법은 목졸림인가? 음독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다른 강제적인 방법인가? 등등을 해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잔혹한 사례가 되겠지만, 국립경주박물관이 조사한 영덕 개시동 고분군에서는 머리만 순장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신라문화권이 아닌 4-5세기 백제문화권 사례이긴 하지만,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는 인체 각 부분 뼈를 한데 모아 항아리에 담아둔 사례도 있다. 이는 세골장(洗骨葬)이라 해서 시신을 썩인 다음 남은 뼈만을 추려서 장사를 지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으로 학계에서는 본다. 

송현동 14호분 순장 인골 4구에서는 아직까진 죽음으로까지 몰고갔을 만한 타력(他力)에 의한 외상 흔적이 뚜렷이 발견되지 않는다. 

서민석 박사는 "인골 출토 정황으로 보아서는 독극물을 마시고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듯하다"면서 "그렇다면, 이들 인골에 대한 치아 분석 등에서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흔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음독으로 드러난다면 그 독극물까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송현동 발굴은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 유물을 꺼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