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루이스 멈포드 ― 대지의 철학자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02-08 22: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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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제45호 (1999년 3-4월호)
루이스 멈포드 ― 대지의 철학자
그로버 폴리
"1972년에 발간된 책《대지의 철학자들》에서 앤 치좀은 자신의 저서 제1장을 서양세계의 가장 탁월한 생태적 사상가로서 루이스 멈포드에게 바쳤다. 그러나 그 이후 학자들은 멈포드를 잊고 있었다. 저항운동의 지도자들조차도 그의 저작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어째서 프랭크 프레이저 달링 같은 에콜로지스트의 눈에는 멈포드가 우리의 가장 최고의 생태주의 철학자로 비쳐지고 있는가?
1922년에 발간된 그의 첫 저서《유토피아 이야기》에서부터 멈포드는 데카르트가 기계에 기초한 사고의 패턴을 추구하였듯이 생명에 기초한 사고의 패턴을 추구하였다. 그는 '과학적' 생태학에 관해서 어떠한 책을 쓴 일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의 '총체적' 환경이며, 이것은 전일적 사고를 요구한다. 그는, 만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에콜로지야말로 미래의 주된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를 보존하려면 전체의 과학이 필요하다. 즉, 자연과학과 인문학, 객관성과 주관성, 양과 질, 수단과 목적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학문적 전문주의를 피하여 멈포드는 자신을 '일반과학자(generalist)'라고 부른다. 건강문제로 멈포드는 뉴욕시립대학의 학사과정을 끝내지 못했다. (그가 명성을 얻게 된 뒤 MIT에서의 첫 강의 때 그는 "내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고백해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놀랐고, 한 학생이 손을 들어 "그렇지만 멈포드 선생님, 선생님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멈포드는 실제로 어떤 특정분야에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자신은 도시연구, 건축, 유토피아, 미국문화, 그리고 기술분야의 지도적 권위자가 되었다. 그러나 인문적 연구는 공허한 지식만을 쌓을 뿐인 학문적 제국 건설자들의 테두리를 깨트리고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멈포드의 핵심적 관심은 온갖 다양성으로 존재하는 삶이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스코틀랜드의 도시계획가이자 생물학자인 패트릭 게데스를 주된 스승으로 삼았다. 멈포드가 우리 사회 ― 건조한 실용주의, 니체식 허무주의, 비이성적인 합리주의 ― 를 탐구하면 할수록 그는 그 위기들의 근원이 기술에 연유한다는 것을 점점더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기계에 우리의 자유를 복속시켜버린 것이다. 기계적 힘에 대한 추구로 인해 우리의 개인적 힘은 박탈되었다.
기계에 대한 신앙은 베이컨, 홉스, 데카르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의 풍부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자연을 포착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생명을 통제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에게 생명을 분석, 해부할 것을 촉구했다. 갈릴레오는 과학자 자신속에서 일차적 성질과 이차적 성질을, 수학적으로 기술(記述)가능한 것과 생명을, 객관성과 주관성을 분리하였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해가는 바로 그 과정속에서 인간은 생명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유기적 세계는 한계를 알고 있지만, 기계는 그것을 모른다. 기계론적 과학은 그 과학의 산물이 수소폭탄이나 인위적 재앙으로 나타나더라도 멈출 때를 알지 못한다.
기계의 신화
생명과 기계는 멈포드의 사유의 두 축이다. 그의 균형의 철학과 '생명기술'로 들어가기 전에, 그의 기술철학에 나타난 새로운 통찰을 살펴보자. 첫째 기계의 '주관성', 둘째 기계에 대한 '낭만적 반동'이 갖는 기계론적 측면, 셋째 거대기술의 배후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기계'(이것은 너무나 새로운 통찰이어서 지금까지도 학자들은 무시해오고 있다).
멈포드는 자기의 주저서를《기계의 신화》라고 제목 붙였다. 신화라는 말로 그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거짓된 이야기'가 아니다. 종교철학처럼, 그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도 그러한 제목을 붙인 것이다. 멈포드는 기계가 우리들에게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믿는다. 베이컨에서 카알라일에 이르기까지 사상가들은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는 자(Homo faber)'로 정의했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그의 도구가 아직 원시적인 것이었을 때도 충분히 발달되어 있었다. 어째서 인간은 처음에 도구를 만들어내었는가? 그 목적은 공리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었다. 물건 만들기에 앞서서 마음의 작용이 선행한다. "인간은 무엇보다 마음을 만들고, 자기를 지배하고, 설계하는 동물이다." 도구를 디자인하기 전에 인간은 자기자신을 디자인함으로써 언어와 의식(儀式)과 사회를 만든 것이다.
1934년에 이미 멈포드는 산업혁명에 관건적이었던 발명은 증기기관이나 방직기계가 아니라 시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시계는 시간과 공간과 동작을 표준화했다. 시계는 시간단위를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천문학과 역학에 토대를 둔 우리의 '과학적' 세계관의 기초를 마련했다. 시계에 대한 멈포드의 분석은 자주 학자들에 의해 인용된다. 그러나 죠지 프리드먼, 버트란드 길, 앙드레 러롸-구랑과 같은 학자들이 멈포드의 이론을 입증하는 작업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이 갖는 함의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거대기술로 인한 재앙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동물적 비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뛰어난 비합리성'에 있다. 어째서 가장 합리적인 자들 ― 과학자들 ― 이 원자폭탄, 로켓, 유전적 괴물과 같은 가장 비합리적인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도구를 통해 스스로 신(神)이 되고자 갈망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사회적 도구 ― 도시 ― 는 거대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 그러한 갈망의 산물이었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이 갖고 있는 안정성과 타고난 겸손을 포기하였다. 인간은 단순히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다. 문명은 '원시인'들이 알고 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나쁜 야만이 되었다.
기계화된 니르바나
그러한 엄청난 갈망을 떠나서는 우리의 현대적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기계화된 낙원을 설명할 수 없다. '절대적 무기' ― 원자탄의 절대적 힘, 로켓의 신화적 속도, 컴퓨터의 초인적 통제력과 정확성 ― 에 대한 추구를 생각해보라. '평화'를 위해서도 기술관료들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 ― 기계화된 낙원 ― 을 제공한다. "인공수정과 자궁외 임신(뮬러)에서 시작하여, 격리된 요람에서부터 아기를 위한 자동조절 장치가 돌아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고립된 방속에서 직접적인 인간적 접촉 없이 학습기계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다(스키너)." 과학자들은 아이들의 꿈을 분석하고, 성격을 조정하며, 미리 프로그램화된 정보를 주입할 것이다. 컴퓨터가 농사를 자동화할 것이고(랜드), 로봇이 가사일을 전부 수행할 것이다(글렌 씨보그). 기술자들은 노동자가 필요없는 자동화된 공장을 세울 것이며(노버트 위너), 자동차를 위한 중앙통제된 원격조정체계(MIT 및 포드)와 소행성들에 지하도시와 식민지를(덴드리지 코울) 건설할 것이다. 전자 미디어를 통해서 "무의미한 메시지들의 끊임없는 홍수가 고립된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이다(맥루헌)." 컴퓨터가 결정권자를 대신할 것이며, 대중들속에서는 "흔적만 남은 모든 인간들에게 환각제가 살아있다는 황홀한 느낌을 줄 것이다(리어리)." 장기이식은 이 사이비 삶을 백년 또는 이백년 더 연장시켜줄 것이다. "결국 이 체제의 수혜자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깨닫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이 기계적 열반의 세계에 대한 추구는 합리적인 꿈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현상"이라고 멈포드는 말한다. 기술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우주 자체가 끊임없는 변화와 집중화된 통제와 무제한한 힘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비젼이 실제적인 변화에 앞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라기보다 하나의 신앙이다. 고타마 왕자처럼 그 비젼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한다. 그러나 한가지 차이가 있다. 불교도들의 감각은 보다 예민해지고, 시와 철학과 지상의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속에서 꽃피어났다. 기계의 낙원은 그러한 희망을 담고 있지 않다. 실제로는, "이 낙원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수소폭탄의 교환이나 과학적으로 고안된 질병으로 인해 한결 더 신속한 방법으로 똑같이 공허한 종말이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로켓의 비합리성
구체적인 예로서 속도의 역설을 생각해보라. 기술적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적응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변화에 중독되어, 느리고 안정된 삶을 누릴 능력을 잃게 된다. 멈포드가 말하는 '변화'는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보다도 훨씬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토플러는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기술변화에 멋지게 적응한다고 해서 찬양하였다. 그러나 멈포드는 우리가 그러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 변화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불균형한 존재로 만든다. 기껏해야 우리는 무감각한 로봇이 되어 사이비 적응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멈포드는 여러 형태의 속도를 비판한다. 나는 오직 로켓에 대해서만 얘기하겠다. 왜냐하면 전쟁이나 평화를 가리지 않고 아직도 로켓은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별들의 전쟁'을 핵전쟁의 해결책으로 본다. 즉, 그것은 궁극적인 신속한 기술적 봉합책인 것이다. 그리고, 명성높은 평화지도자 칼 세이건도 우주여행을 우리의 병폐들에 대한 치유책으로 본다. 크렘린에 로켓을 퍼붓는 대신 화성에 인간을 데려가자는 것이다. 세이건 역시 하늘을 정복하고자 하는 해묵은 꿈을 드러낸다.
인간으로 하여금 처음 우주 로켓을 건설하도록 부추긴 것은 무엇인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인가? 장군들의 승리욕망인가? 쇼비니스트들의 남근(男根)상징 추구인가? 아마도 이 모든 것일 것이지만, 거기에 추가해야 할 것은 바벨탑처럼 인간을 하늘로 추켜올려놓고 땅을 비하하는 권력의 종교이다.
우리의 로켓의 목표가 무엇인가. 적을 말살시키거나 불모의 위성으로 사람들을 데려다놓는 일이다. 로켓은 원자탄만큼 비용이 많이 들고, 또 그만큼 쓸모없는 것이라고 멈포드는 말했다. 그것들은 지구자원을 허비하고, 산업과 과학과 노동조합으로부터 인재를 징발해간다. 모든 것이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다른 나라를 파괴하거나 염탐하고, 또는 단지 "우리가 처음이야"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1969년 달 여행에 대한 열광이 절정에 달했을 때 멈포드가 로켓에서 본 것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살육의 판타지였다.
그러나, 로켓이 정말로 지구를 훼손하는가? 멈포드는 공상과학 소설에 대한 공헌으로 기사작위를 받은 아서 클라크를 가리킨다. 클라크는 로켓으로 인해 비록 인간의 것은 아닐지라도 지능이 활짝 개화(開花)할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멍청이들은 지구에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천재는 우주공간 ― 살과 피가 아닌 기계의 공간인 ― 에서만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로봇 지향 인간들은 지구의 자원을 한도 없이 요구할 것이라고 멈포드는 말한다. 우주탐험은 유기적 한계를 모른다. 우주탐험에 요구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국가들은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우주에서의 자유라는 꿈은 지상에서의 한층 강화된 억압을 낳는다.
멈포드는 로켓에서 피라미드와의 평행관계를 본다. "나는 유인 우주캡슐은 거대한 피라미드의 제일 깊숙한 방과 정확히 상응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미이라가 된 파라오는 하늘로의 마술적인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장비들의 축소판에 둘러싸여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정지된 로켓이었다. 현대의 로켓은 움직이는 무덤이다. 멈포드는 세명의 러시아인들이 1년 동안이나 모형우주선에 갇혀 지내기를 어떻게 자원했는가를 주목한다. 어째서 이렇게 자진하여 무덤속에 갇히고자 하는가? 그것은 깊은 헌신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평생동안 어두운 토굴에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통풍구를 통해서 음식을 받아먹으며 지낸 기독교의 은자(隱者)들처럼 지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는 대지의 풍요로움을 부정한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 벅민스터 풀러의 제트기 찬양에서 드러나듯이 ― 지구를 한개의 당구공으로 축소시키려는 것이다. '우주여행'은 인간을 파라오 같은 미이라로 축소시킨다. 한 사진설명에서 멈포드는 말한다.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보라. 영장류라기보다는 거대한 개미 같은, 껍질을 뒤집어 쓴 생물체 ― 확실히 벌거벗은 신(神)은 아니다." 그는 그저 우주공간을 통해 돌아다니는 단순한 질량과 운동의 기능물일 뿐이다. 우주선을 타기 위해서 그는 약물에 취하거나 감각을 잃어버리는 훈련을 받거나 아니면 속도 자체에 의해 혼수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높은 속도는 하나의 역설을 드러낸다. 인류사회의 오래된 슬로건은 "움직임을 통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어떤 지점을 벗어나면, 우리는 삶을, 그리고 심지어 움직임조차도 점점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대륙간 제트 비행기 여행은 너무나 갑갑하고, 따분하고, 공허하다. 그러나 항공회사들이 제공하는 유일한 재미들은 우리가 가까운 캬바레, 식당 또는 영화관으로 걸어가서 얻을 수 있는 통속적인 것들 ― 술, 음식, 영화, 관능적인 스튜어디스 등이다. 오직 마음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 공포감과 음산한 죽음의 가능성만이 현실감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클라크의 로봇 유토피아는 생명의 풍부한 다양성을 부정한다. 지구는 아직 은하수만큼이나 많은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의 종(種)들의 신비를 결코 다 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주는 생명의 충만함의 한조각도 제공할 수 없다. 세명의 러시아인들은 너무나 긴장한 끝에 체스게임도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실제 우주여행에서는 훨씬 더 많은 것 ― 불안, 무중력 상태, 질병에 대한 면역력 상실 ― 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들은 나무와 실개천도, 봄과 여름도, 밤과 낮도 없이 지내야 할 것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우주기술이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비실존(non-existence)이다. 획일화된 환경에서 획일화된 조건 밑에 서로 구별이 안되는 획일화된 목적지를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속도로 가게 하는 이 기술이 제공하는 세계는 어디를 가든 하워드 존슨 레스토랑과 힐튼호텔 일색으로 된 세계와 같은 것이다."
요약하면, 우주 로켓은 반(反)생명 기술의 천재적인 구현이다. 멈포드는 어디선가 그것을 "사탄의 권력에 바치는 뇌물"이라고 불렀다. "우주탐험과 더불어 신과 인간의 전통적인 적이 포스트-파우스트의 모습을 띠고 이미 다시 나타났다." 이 현대의 파우스트는, 영혼을 대가로 하여,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절대적 통제를 약속한다.
로봇과 반항자
테크놀로지에 관한 저술가들은 멈포드의 존재를 간과하지 않는 경우에 흔히 그를 반문화의 이론적 대변자인 씨오도어 로작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멈포드는 반문화속의 많은 요소 ― 마약뿐만 아니라 변화와 속도와 자유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 대해 반대한다. 느긋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로서는 켄 케세이의 환각을 일으키는 버스 달리기나 티모시 리어리의 엉터리 종교속에서 찬미할 만한 것을 별로 찾지 못했다. 그러나 청년문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좀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근원적으로, 그는 기계의 '객관성'에 대한 응답으로서 감정을 내세우는 청년문화의 낭만적 믿음에 공감하지 않는다. 감정은 우리 시대의 기계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보다 많은 감정이 그 기계의 위협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겠는가?
멈포드는 그의 친구 빅터 브랜포드가 오래 전에 '썩은 주관성'이라고 부른 것을 거부한다. 무엇이 멈포드를 반문화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드(id)와 자동장치가 상호의존적인 양극단으로서 쌍둥이 관계에 있다는 기본적 명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비이성적인 합리성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캘리번(세익스피어의《태풍》에 나오는 괴물인간-역주)과 컴퓨터는 함께 손을 잡고 일한다.
기술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일 이상을 한다. 인간의 자아는 완전히 말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로봇이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반항한다. 균형잡힌 문화에서 주관과 객관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계화된 세계에서, 주중 내내 조립(組立) 라인에 매달려 일할 수밖에 없는 인간 로봇들은 토요일 밤이면 반항자로 돌변한다. 여전히 그의 사상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인《인간의 변모》에서 멈포드는 '새로운 세계 인간'의 두 양상, 기계주의와 낭만주의의 기원을 추적한다. 기계주의는 추상적 상징, 보편적 법칙, 예측가능한 사건을 꿈꾸며, 낭만주의는 미지의 대양, 인도의 보물, 젊음의 샘을 꿈꾼다. 개척자는 자연자원을 겨냥하고, 기술자는 기계가 창조한 부를 노린다. 하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다른 하나는 원자의 세계를 탐험한다. "두가지 탐험양식 어느 것에서나 처음부터 도전적인 자만과 악마적인 광기가 들어있었다."
때로는 그 두가지가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다니엘 디포우의 유명한 표류자 로빈슨 크루소가 그렇다. 이 중산층 영웅은 아담 스미스로부터도, 루쏘로부터도 사랑을 받았다. 땅과 별들과 하나가 되어, 폭풍과 바다와 싸우는 크루소의 모험담에서 새로운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예술이라는 검은 양과 자본주의라는 외로운 늑대는 둘다 이것을 유용한 지침서로 삼았다. 그것은 고갱을 타히티로, 앤드류 카네기를 제철공장으로 데려다주었다."
멈포드는 이 두 측면을 노동과 유희, 싸움과 사유 등 현대생활 전반을 통해서 발견한다. 전쟁은 무엇보다 기계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기율과 약탈을 연결한다. 노동도 전쟁을 닮는다. 전쟁의 불구덩이에서 채광과 야금기술이 나왔다. 광부의 세계는 병졸의 세계만큼 음울하고, 꽉짜인 틀에 매여있다. 그것은 빛깔과 맛과 향기가 없는 세계이다. 그래서 광부도 일시적인 해방을 찾아 방종한 쾌락과 알콜과 도박에 빠진다.
현대적인 노동도 인간의 열정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서류를 묶고, 카드를 뚫는 일도 보초병의 일만큼 지겨운 일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파업과 태업과 작업속도의 감소 등의 수단으로 반항을 한다.
여가도 이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없다. 유희는 지나치게 틀에 매인 사람들을 위한 단순한 안전판이 되었다. 로마의 황제는 대중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다. 바로크 시대의 군주들은 카니발로써 민중에게 오락을 제공했다. 핵 국가는 대중들에게 섹스와 마약과 텔레비젼을 통하여 자유의 환상을 준다.
무엇보다 파시즘은 이 두 얼굴 ― 한편으로 얼음처럼 차디찬 효율성과 다윈의 과학, 다른 한편으로 피와 흙으로 되어있는 ― 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나치즘은 저 유명한 닥터 멩겔레의 실험에서 드러나듯 합리적 방법과 비이성적 광기를 결합하였다. 그 실험은 사회적 결과에 대해 무심한, 객관적인 것이되 완전히 타락한 것이었다.
자동장치와 이드, 지나친 합리주의와 비이성주의는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증가하는 불균형 가운데서 동요하다가 붕괴될 뿐이다. 우리는 두 극단 가운데 어느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으로써 유기적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극단은 모두 스스로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재앙으로 이어진다. 그 둘은 모두 과거를 거부하거나 신화적 과거를 만들어낸다.
멈포드와 반문화
젊은이는 우리의 미래이므로 멈포드는 젊은이들의 편에 서지만, 그러나 그는 반문화의 생활 스타일과 영웅들 ― 마르쿠제, 노먼 브라운, 블라바스키 ― 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로작이 히피들을 찬미할 때, 멈포드는 그들에게서 '근원적인 방종함'을 보았다. 로작이 다가오는 '아쿠아리스의 시대'를 획기적인 시대의 시작으로 맞이하려고 하는 것에 반해 멈포드는 마약과 블랙파워와 마술과 맥루헌을 껴안는 자유숭배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에게는 이러한 것이 다만 전도된 권력 컴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었다.
반문화가 이드 ― 멈포드가 성적 과시주의라고 부르는 ― 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보라. 더 많은 리비도가 공격성과 억압을 종식시키지 않는다. 규범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속도와 환각체험속에 뿌리없이 표류하는 청년문화는 상업주의에 의해 조종되기도 한다. 여기서도 이드는 자동장치를 강화한다.
반문화에는 또한 그 나름의 우상들이 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삶에서 마술을 제거하고, 영지(靈知)와 감성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 기독교가 만들어낸 발명물이라고 본다. 그와 대조적으로 멈포드는 끊임없는 변화의 추구를 우상숭배라고 본다. "그들의 축제의 성공의 토대는 '큰 이름'을 가진 가수와 그룹들, 대중 앞에 나타남으로써 또 음반과 필름의 판매를 통해서 엄청난 상업적 보상을 받는 '우상들'이다."
그들의 스타들처럼, 젊은이들은 편집증(偏執症)이 아니면 과대망상증을 드러낸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원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서른살이 넘은 자는 아무도 믿지 말라!" 세계정복을 손쉽게 꿈꾸는 이 기사들은 노상에서 총을 맞을 것이 두려운 나머지 모든 권위를 공격하고 있다. 그들도 그들의 선배들처럼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 결과는 무정부주의적 페스티발, 힘들지 않는 삶에 대한 꿈, 어딘가 '충돌'할 장소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으로 나타난다.
멈포드는 그들의 곤경에 공감을 느낀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이 '무차별 포격지대'속에 방치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마치 호손의〈영 굿맨 브라운〉처럼 '악마의 잔치'를 벌이고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6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은 출세를 포기하고, 폐허에서 살았다. 그러나 전면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 병리학의 일부가 되었다.
거대기계
기계의 신화를 잉태하고 유지하는 기술적 원천은 무엇인가? 멈포드는 이 원천을 '거대기계'라고 부른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서 보는 비젼이 필요하다. 그럴 때 과거는 현재이고, 기계는 아이디어이며, 과학자들은 사제(司祭)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멈포드는 '신기술' 혁명이라는 30년대의 자신의 희망을 곧 포기하였다. 50년대 말 MIT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그는 몇몇 기술이 드러내는 거의 악마적인 비이성에 대해 경고하였다. 전투기와 네이팜과 원자과학 덕분에 전쟁은 종족학살이 되어버렸다. 처음으로 멈포드는 기술적 이성은 필연적으로 비이성적인 것으로 되는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나는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그다지 열심히 탐구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도시에 대해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그는 고대문명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저 도시문명의 잔해를 머릿속에서 깊이 파들어감에 따라 나는 비상하게 복잡한 기계를 발견하였고, 그것은 결국 최초의 진정한 기계이자 나중의 모든 기계의 원형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이 기계를 보지 못하였는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멈포드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부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BC 4천년경에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문화적 대폭발이 이루어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새로운 도시들이 정치권력과 기술의 힘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이 도시문명은 기계가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듯이 몇가지 기본적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구성요소들은 신왕(神王), 과학자-사제, 서기-관료, 군대, 그리고 노역대(勞役隊)였다.
우리가 이 기계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 기계가 갖는 힘이 주로 하나의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神) ― 이집트의 태양신 ― 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인간의 사고에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의 원시적인 도구들로써는 저 엄청난 기념물들과 기술적 성취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집트인들은 도르래도 기중기도 수레바퀴도 없이 피라미드를 세웠다. 그 기술적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주로 가공할 만한 사고의 확장에 있었고, 그것은 수천년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언어의 발명에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주된 도구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즉, 수학적 상징, 천문학자의 계산, 그리고 수렵시대의 족장에서 태양신으로 왕의 지위를 변화시킨 사제들의 신성질서 개념 등이 그러한 도구였다. 새로운 절대적인 하늘의 질서는 지상에서의 절대적인 질서를 요구했다. 이제 부족시대의 인간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엄청난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서 거대한 노역대가 조직될 수 있었다. 왕의 신하들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로켓, 레이저, 마하-2 전투기에 경탄하듯이 왕의 피라미드와 대사원에 경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현대의 거대기계
지금까지 멈포드는 다만 고고학자들이 파놓은 유적을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다음 차례의 논제는 좀더 귀에 거슬릴 만한 것이었다. 즉, 그는 고대의 거대기계가 우리 시대에 되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명도 같은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왕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대통령 또는 슈퍼컴퓨터이고, 마법사와 예언자들은 우리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며, 노역대는 순종적인 '조직인간'을 거느린 우리의 다국적기업이다. 관료조직과 군대는 그때나 다름없이 지금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파괴적이든 생산적이든, 목표가 전쟁이든 평화이든 상관없이 이 복합적 체제는 권력에 대한 공통한 신앙속에서 살아간다. 이 체제에 대해 의심한다는 것은 신들에 대한 불경이며, 이단이다.
이 기계는 너무나 거대한 것이어서 여기에 저항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것을 파악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거대기계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모 자체가 그것이 오직 대규모의 과업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뜻하였다. 좀더 작은 일들을 위해서는 점차로 나무와 놋쇠와 철로 된 기계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문명의 흥망성쇠 전체를 통해서 원래의 패턴 ― 기율, 표준화된 부품들, 명령체계를 통한 원거리 통제 ― 은 군대속에서 굳게 보존되었다.
물론 문명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문명은 또한 엄청난 위협을 초래했다. 도시는 오직 파괴되기 위해서 건설되었다. 문명은 부와 자유와 화려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빈곤과 노예와 추악함을 생산해내었다. 그것은 운하와 제방과 곳간을 세웠지만, 또한 전차(戰車)와 거대한 병영과 수메르의 방진(方陣)과 "적의 몸뚱이들을 깔아뭉개는 걸어가는 탱크(보병대)"를 만들어내었다.
재앙으로의 길
고대와 현대의 기계들이 그 가치체계와 구성요소와 생산물에 있어서 보여주는 평행관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양쪽에 공통한 주된 가치는 권력이다. 부족시대의 인간에게 군대는 '절대적 무기'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핵의 확산과 함께 적도 곧 그 나름의 군대를 갖게 되었다. 지금과 같이 그때도, 거대기계는 절대적인 속도와 통제권을 추구했다. 궁전의 출입문에 위치한 날개달린 사자들은 로켓에 실린 수소폭탄과 맞먹는 것이고, 예언자와 전령사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태양신의 눈은 우리의 기술관료들이 꿈꾸는 슈퍼컴퓨터와 같은 것이었다. 거대기계는 또한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변화와 힘을 결합시키는 능력에 있어서 피라미드 시대는 우리 시대에 필적한다. 파라오마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였다. 그러한 공공건설 프로젝트는 잉여 에너지를 흡수하고, 경제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새로운 신앙의 힘을 증명하였다. 오늘날 현대의 거대기계는 우주 로켓과 초고속도로와 방사능 낙진 대비 참호라는 집단적 묘지를 건설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합법화한다. 어떠한 다른 신앙도 그토록 역동적이며, 수많은 대안적 삶의 방식을 억압해오지는 않았다고 멈포드는 말한다.
거대기계는 고대, 현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반신(半神)으로서의 왕이 있다. 거대기계는 소수를 신성화하고, 다수를 획일적인 틀에 넣어 조직해왔다. 그토록 우리의 지배자들은 신성한 존재들이어서 그들의 거대한 사진들이 성화(聖畵)처럼 전시될 뿐만 아니라 레닌과 스탈린처럼 그들의 시체는 대중으로부터의 경배를 위하여 방부처리되어왔다. 파라오의 경우와 너무나 흡사한 평행관계가 아닌가.
사제로서의 과학자는 어떤가? 이집트의 사제들은 우리의 과학자들처럼 삶에 대한 새로운 수학적 관점을 도입했다. 그리고, 아직 구상만이었지만, 태양에너지를 지상에 풀어놓는 시도를 했다. 오늘날 우리의 '새로운 사제들'은 '씽크탱크'라고 이름붙여진 연구센터들로 떼지어 몰려간다. 그들이 도시적 삶의 낡은 센터들을 회피하는 것은 그곳이 다른 신앙, 다른 생활양식을 '혼란스럽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멈포드는 말한다. 그들의 이상적인 거처는 로스 알라모스와 같은 사막이다.
마지막으로, 고대와 현대의 거대기계의 공통성은 그 생산물이다. 고대세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감탄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 고대인들이 스핑크스나 로도스의 거상(巨像)을 찬탄하였듯이 우리는 콩코드 비행기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찬탄해 마지않는다. 체제의 충실한 신민들은 말과 행동으로 왕국과 권력, 그리고 핵과 전자(電子)의 신들의 영광을 증언한다. 이러한 신앙이 가져다주는 기적은 진정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내세우는 주장이 가짜일 뿐이다. 고대적 거대기계의 주된 산물은 지배자를 위한 거대한 무덤과 다수대중을 위한 파괴된 도시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파괴적인 힘에 대한 숭배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과학의 시대는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심지어는 물질과 생명간의 간극을 좁혀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혜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다면, 기계론적 지식은 인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컴퓨터의 '순수' 지능 또는 방사능 먼지를 들어앉혀 놓을 것이다. 피라미드 시대는 난폭한 민중봉기 가운데 붕괴되었다. 우리의 핵시대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핵분열로 파괴될지 모른다. 너무나 많은 기술적 지식으로 우리는 지혜를 잃어버렸다. 미친 목적을 위해 과학적 수단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비이성적인 합리성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우리의 핵 사제들은《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처럼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나의 수단과 방법은 건전하다. 그러나 나는 미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공예기술과 거대기술
멈포드는 거대기술에 맞서 '공예기술'을 내세운다. 공예기술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다양성이 안정성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단작(單作)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 유전자 다양성을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또한 단일기술에 맞서서 기술적 다양성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예적 기술은 민주적이고, 여러 사람의 손으로 고루 흩어져 있다. 그러한 기술은 풍차가 원자로에 비해서 장점을 가지고 있듯이 집중화된 거대기술에 비해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거대기술을 선호한다. 원자로는 원자탄에 유래하고, 점보 제트기는 국방성의 C-5A 화물용 비행기로부터 나왔으며, 중국의 만리장성 이후 최대의 공공건설 프로젝트인 미국의 주간(州間) 고속도로 체계는 군사적 필요에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거대기술은 수선조차도 엄두를 내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한세기 전에 윌리엄 모리스는 갈퀴 하나를 수선하기 위하여 언젠가는 우리에게 큰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날이 이미 여기 당도해 있다고 멈포드는 말한다. 공예기술은 또한 거대기술보다도 창의력과 개선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자본주의에 의해서 밀려나기 전까지 공예는 17세기에서 18세기 동안 90가지에서 250가지로 성장하였다. 세련된 기술은 공예와 가내공업을 위한 풍부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작은 전기모터와 발전기는 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힘을 준다. 연료를 사용하는 공장이나 선반과 같은 정밀기계를 가지고 공예가는 소규모의 일에 동력으로 움직이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멈포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1968년에 체코인들에게 어떻게 정보를 전달했으며, 자전거가 베트남의 게릴라에게 B-52를 물리치도록 어떻게 도움이 되었던가를 주목한다.
나아가서, 공예기술은 우리의 마음과 손을 충분히 활용한다. 진정한 일은 예술의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멈포드는 말한다. "기술의 목적은 노동의 절약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사랑에 있다." 19세기의 여행가 라파엘 펌펠리는 언젠가 나사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일본의 금속 노동자를 만났다. 쇠로 만든 나사를 한번 보고 난 그 이튿날 그 노동자는 열개가 넘는 예술품과 다름없는 나사를 가지고 왔다. 그는 심지어 펌펠리가 지니고 있던 콜트 권총을 복제하여 훌륭하게 작동할 뿐만 아니라 더 맵시있는 총을 만들어내었다.
예술 그 자체는 의미있는 일을 기반으로 한다. 예전에는 민중의 일과 노래가 고전음악의 창조에 기여하였다. 슈베르트는 그의 E-플랫 장조 야상곡에서 말뚝을 박는 일꾼들의 노래를 이용하였다. 교향악과 오페라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동안 절정에 다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무렵까지 민중의 음악에 기대는 것이 가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조화의 소리는 불협화음으로 변하고, 인간적 리듬은 기계화된 혼돈에 대체되었다.
요약하면, 공예기술은 성장보다는 균형을, 권력보다는 생명을, 그리고 혁명보다는 갱생을 우위에 둔다. 공예기술에 내재된 한계, 균형, 다양성에 대한 의식은 인공적인 세계를 건설하려는 광적인 기도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한다.《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간단히 창을 여는 대신에, 자신의 아파트를 빈틈없이 밀봉해버리고, 공기를 모조리 밖으로 빼낸 다음에 다시금 더 비싼 장치를 써서 공기를 도로 방안으로 흡입해들이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생명을 어설프게 또는 치명적으로 모방하는 물건을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도 지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공예기술에 관한 멈포드의 긴 논의에 대하여 나는 다만 가볍게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그 논의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멈포드는 모든 기술을 수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이반 일리치가 갖고 있는 강력한 간결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보다 큰 넓이와 깊이가 있다. 개인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관료적 강제에 맞서서 그는 권위주의적 기술의 신화적 뿌리를 강조하고, 동시에 자동차에 반대하여 자전거를 또는 대학에 반대하여 독습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자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한다.
E.F. 슈마허와는 달리 그는 고대와 현대의 중간적인 새로운 기술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단순하고 싸고 수선가능한 도구에 대한 우리의 필사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사이의 전면적인 충돌을 강조한다. 기술의 균형을 너머 그는 정신의 균형 ― 그것만이 시의적절하고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 을 찾는다. 그의 강점은 그의 넓이와 균형감각이다. 멈포드의 평생에 걸친 연구만이 우리의 거대기술의 배후에 있는 광기를 드러낼 수 있다. 거대기계의 힘은 단순히 이윤추구(마르쿠제)나 효율성(엘룰) 또는 권력의 집중(일리치)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령, 달 로켓을 쏘아올리는 광기는 종교에 근접하는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명을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반(反)신앙 ― 즉, 삶이 유토피아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믿는 ― 이 필요하다. 히틀러가 득세할 때 멈포드가 자유주의자 동료들에게 경고했듯이, 이성이 실패할 때는 강제력과 은총이라는 급진적인 치유책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명에 대한 믿음은 ― 1944년 이태리 전선에서 전사한 멈포드의 아들 게데스의 경우와 같은 ― 자발적인 희생을 요구할지 모른다.
생명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유기적 균형이라는 멈포드의 좀더 넓은 철학적 견해에 통합되어 있다. 그는 기계론적 과학속에서 이 균형이 증명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날 '과학적' 생태론자들은 '과학적' 맑스주의자들처럼 자연의 균형이라는 개념을 철저히 거부한다.
생명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통계가 아니라 안정성이다. 이것은 기술인간의 무감각한 역동성과 완전히 대조되는 세계이다.
유기적 균형
멈포드는 포괄적인 균형철학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기술문화와 반문화 어느 쪽과도 구별된다. 그의 사고는 기계가 아니라 생명을 인간문화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옛날의 종교와 철학은 균형에 대해서 가르쳤다. 중용이라든지,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또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 있다라는 말들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현대적 인간은 그 대신에 성장, 진보, 힘을 믿는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원리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진리이다. 생명은 성장을 멈추어야 할 때를, 그리고 (개별 존재들의 경우) 살기를 멈추어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월터 캐넌이 그의 호메오스타시스(恒常性) 개념에서 보여주었듯이, 활동성은 안정성과 균형이 맞아야 한다. 신체는 자동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이것은 수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측량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것들의 적절한 조화와 적절한 조직화의 결과"라고 멈포드는 말한다. 안정과 활동은 상호부양의 관계에 있다. 생리기능의 호메오스타시스는 자유를 북돋우며, 이 자유속에서 마음과 수의근(隨意筋)에게 온갖 '잉여' 활동, 예컨대 예술이나 유희와 같은 활동이 허용되는 것이다.
미래는 또한 과거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진화에 의한 변화도 생태적 연속성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스스로 미래의 물결이라고 생각하는 '현재 중심의 세대'는 과거를 상실하고 있는 한 미래를 상실한다. 그러한 세대는 기술관료들처럼 ― 고대 팔리어 경전에서 '열살짜리 인간'이라고 부른 ― 전통의 지혜를 무시한다. 그러나 진화는 사람의 기억과 각 세포의 유전자속에서 과거를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죽은 과거'를 매장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매장하는 것이다. 더이상 과거를 소화하여 초월할 수 없는 우리는 과거를 억압하고,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자연을 유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고대문명의 상처를 되풀이하고 있듯이, 우리는 부지중에 과거를 되풀이하기만 할 뿐인 운명에 처하게 된다.
멈포드는 많은 환경전문가들이 은밀히 갖고 있는 과학주의를 넘어간다. 예를 들어, 베리 커머너의 에콜로지 3원칙을 보자. 첫 두 원칙은 커머너의 주된 관심사인 오염문제에 관계된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상호연결되어 있으며, 또 모든 것은 어딘가로 보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세번째, "자연이 가장 잘 알고 있다"라는 원칙은 멈포드의 주된 논점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그러나 멈포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연은 균형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염뿐만 아니라 인구에도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과학과 인문학, 지식과 가치, 논리와 신념 사이의 균형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술적 이성도 사회주의혁명도 생명을 구제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삶은 질적인 것, 내적 충동, 창조적 목표를 알고 있다. 그것은 수단을 넘어 목적을 알고 있다. 가치와 신념은 인간의 삶에 사실과 논리만큼 핵심적이다.
멈포드는 무엇보다도 기계론적 사유를 생태적 사유로 대체하려고 하였다. 그는 양적 성장 대신에 질적 성장을, 권력 대신에 생명의 충만함을 찾는다. 그는 풍요의 반대개념으로 빈곤이 아니라 유기적 풍부성을 내세운다. 생명에는 성장과 제한, 진화와 안정이 모두 필요하다. 유기적 성장에서는 조절과 균형이 이루어진다. "균형, 전체성, 완전성, 그리고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은 유기적 모델이 갖는 특징이다." 진화와 연속성은 '충만함'의 두 양상인 것이다.
멈포드는 이 개념을 '존재의 위대한 사슬'이라는 전통적인 사상에서 본다. 종교 사상가들이 처음 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신(神)의 끊임없는 창조성에 경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종의 수효의 많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명의 엄청난 다양성 ― 그리하여 인간에 와서 절정을 이루는 유기적 자유 ― 에 경이를 느꼈다.
멈포드는 같은 사상을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발견한다. 그러나 빅토리아조 시대의 사람들은 힘을 믿었다. 그들은 토마스 헉슬리처럼 자연선택을 단순한 살아남기의 문제로 환원시켰다. 그들은 생명의 자율성, 스스로 변신하며 목적을 가지고 진화하는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생명이 역동적 균형을 보여주는 곳에서 그들은 변화 ― 변화를 위한 변화만을 보았다. 생명과 달리 그들의 기계적 힘은 아무런 경계선도 제약도 몰랐다. 힘이 그들의 새로운 신화였으므로 그들은 균형이라는 아이디어는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은 성장을 자제하고, 외부적 목적을 내적 반응으로 조절하며, 활동과 휴식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멈포드는 일상생활에서도 균형을 찾는다. 그는 판에 박은 여덟시간의 노동보다도 이 일에 몇시간, 저 일에 몇시간 하는 식으로 마치 나비가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니듯이 일할 수 있는 푸리에의 '나비원칙'을 선호한다. 그는 또한 도시와 시골생활의 균형을 추구했다. 뉴욕시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거의 마흔살이 되어서야 시골로 영구적인 거처를 옮겼다. 그 시골에서도 자동차라는 단일기술이 기차를 사라지게 할 때까지 그는 기차를 이용하여 쉽게 뉴욕시와 연결되었다. 그는 농장생활과 정규 대학강의 사이에 균형을 맞추었다. 주요저서에서 멈포드는 그가 말하는 반(反)도시, 즉 거대도시에 맞서는 역사적 도시를 옹호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쏘로우에게 깊이 공감하고 야생지에 대한 필요를 주장했지만, 그 자신은 맨해튼 북쪽 100마일 거리의 숲과 초원과 공원이 있는 농촌지역 더체스 카운티에서 살기를 선택하였다. 그는 벤턴 매케이와 같은 친구들이 애팔래치아 산길을 탐험하도록 도우면서도 자신은 그 길의 오직 몇마일만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그는 백년이나 묵은 시골농가의 서재에서 고독을 즐기면서, 불과 몇마일이면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뒷길을 따라 산보하는 것을 즐겼다.
균형 개념은 일찍부터 멈포드의 저술을 지배하였다. 그는 '전체성'을 추구하고, 존 듀이의 철학을 지배하고 있는 일면적인 실용주의 인간과 대조적으로 온전한 인간을 내세웠다. 그는 전체적인 맥락이 아니라 부분적인 악에 초점을 맞춘 폭로기사를 비판하였다. 그는 삶의 어떤 부분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1964년에 멈포드는〈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린든 존슨의 베트남전쟁 확전을 비난한 최초의 공적 인물이 되었다. 1965년에 그는 미국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의 원장에서 물러나는 퇴임연설에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략을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멈포드는 도시나 자동차(알맞은 규모, 속도, 목적이라면)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처럼 과학과 기술과 진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에콜로지는 안정성뿐만 아니라 변화를 포함한다. 충만성에 대한 그의 개념은 성장과 자기규제 모두를 껴안는 것이다. 기계적인 풍요에 대한 대답은 빈곤이 아니라 유기적 풍부함이다. 기계적 모델은 한도를 모른다. 진화와 에콜로지는 나란히 간다.
베네딕트 수도사들처럼 우리에게도 '명상과 노동'의 균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일하는 것, 질과 양, 안정성과 변화가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핵을 풀어놓음으로써 우리는 태양신을 부활시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태양이 아니라 태양의 자식인 땅이며, 핵융합이 아니라 생명이다. 우리에게는 자연의 가치와 균형을 이룬 인간적 가치의 부활이 필요하다. 자연은 성장에 한계를, 자유에 경계를, 변화에 제약을 설정한다. 유기적 삶은 "빈껍데기의 가치에 등을 돌리는 사치"를 포함한다.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 멈포드는 많은 것 ― 부와 사치와 사교적인 생활 ― 을 포기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듣기에는 너무나 명료하게, 너무나 깊이, 그리고 너무나 일찍 보았다고 나는 믿는다. 아마도 그가 잘못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잘못을 입증하는 노력을 충분히 보상하는 잘못일 것이다. 거대기술로 인한 재앙의 시대에, 거대기술에 대한 가장 선진적인 분석가에 주목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기술과 상징>>>
어떤 노인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항아리를 안고 힘들게 물을 떠오고 있었다. 이를 본 젊은이가 왜 편리한 ‘기계’를 쓰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기계는 기계로서의 기능과 효율이 있다. 여기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사람의 본성을 망치게 된다.” 중국의 고전 ‘장자’에 나오는 얘기이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근대적 기술비판의 원점을 찾을 수 있다. 기술의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면 사람이 기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 있다.
그런데 물동이는 일종의 기술적 산물이다. 흙을 반죽하여 불로 구워낼 줄 알아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노인 역시 기술을 이용하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은 이때 물동이처럼 소박한 도구와 수차(水車) 같은 기계의 차이를 지적할 것이다. 도구가 자연에 순응한다면 기계는 자연을 이용하거나 거스른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장자 시절의 기계란 모두 자연력에 순응하는 것들이니까. 현대철학자 하이데거를 떠올려보라. 20세기를 무시무시한 ‘원자력의 시대’로 정의할 때 그는 수차 같은 옛 기계들을 얼마나 정겹게 묘사했던가? 여기에 물음이 있다. 장자에게는 괴물이던 기계가 하이데거에게는 낭만적인 사물로 바뀐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자에게 괴물 하이데거에겐 낭만
하나는 분명하다. 대상의 정체를 모를수록 더 두렵고 혐오스러울 수 있다는 것. 근대기술을 둘러싼 이미지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년)를 생각해보라. 여기서 괴물은 과학기술의 상징이기도 하다. 몸은 ‘자연재료’로 되어있지만, 그 생명은 기술의 결과이니까. 그런데 괴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아버지’는 그에게 이름을 붙여줄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이것은 결국 괴물을 만든 박사조차 기술의 정체를 몰랐다는 것, 그리하여 기술의 산물을 혐오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럴수록 괴물은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끝내 파괴되지 않았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마치 산업혁명과 기계파괴 운동 사이에서 표류하던 19세기 기술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지금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추羈셀珥?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성 파괴의 주역인 것처럼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혼란스럽다. 우리는 아직도 기술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것이다. 이런 혼란은 어쩌면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다. 전통사회에서 기술에는 나름대로 분명한 위치가 있었다. 가령 ‘사농공상’이라는 질서는 어쨌거나 당시 사회에서 기술이 차지하던 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학기술의 의미는 괄호 속에 들어있으며 다만 그 효용과 부작용만 논의되고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철학자 멈포드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상징 개념을 제기했다. 여기서 상징이란 인간의 정서적 소통을 비롯해 개성, 창의성, 상상력과 연관된 문화 활동을 포괄한다. 그가 볼 때 문제는 상징 능력과 기술 사이에 균형이 무너진 데에 있다. 기술이 너무 빨리 성장한 바람에 그 문화적 의미를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상대적으로 뒤쳐진 인간의 상징 능력을 북돋우어 다시 균형을 되찾자고 제안했다.
‘능동’적인 제안이다. 실질적으로 인문 예술을 좀더 발달시키자는 주장이니까. 그래서 ‘종합’적이다. 기술을 제한하기보다는 그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내성’을 길러, 한결 풍성한 문화를 만들자는 얘기이니까.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술과 상징이라는 이분법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상징은 주관적, 개성적인 반면 기술은 객관적, 기계적이다. 즉, 기술 속에는 ‘의미 있는 상징’이 없고 기계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없다. 이렇게 차가운 기술에게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는 것이 상징 능력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처럼 기술 잠재력도 미지수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철학자 시몽동(Simondon)은 대조적인 얘기를 했다. 기계도 인간적이라고 한 것이다. 이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언뜻 보기에 기계는 마치 생물의 기능 가운데 하나를 고정해놓은 듯하다. 안테나는 곤충의 더듬이, 음파탐지기는 박쥐를 본 땄으며,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 기능을 확정하는 것은 단지 처음 단계일 뿐이다. ‘인공지능’을 보라. 오히려 외부 환경에 따라 기능을 조절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도 똑같이 작동하는 기계는 초보단계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외적 정보(상황)에 민감하며 상호작용하는 기계가 나온다. 기능이 다원화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기계들, 나아가 인간들과 접속하는 관계도 다원화된다. 서로 끊임없이 연결, 해체, 수렴한다. 이런 측면을 두고 시몽동은 ‘비결정성’이라고 불렀다. ‘열려있다’는 뜻이다.
그는 기계의 진면목이 이런 비결정성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기계의 잠재성은 끝이 없다.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연이어 변화, 생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또한 그렇지 않은가? 사람의 손은 악수를 할 수도 있고 컴퓨터를 다룰 수도 있다. 한 가지 기능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에 잠재된 능력은 아직도 미지수이다. 한계를 확정할 수 없다. 기계 속에 인간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인간의 특정 기능을 닮은 게 아니라 인간의 비결정성과 생성을 닮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기계는 모두 생성한다. 더욱이 함께 ‘공진화’한다. 가령 네 발로 기던 사람이 직립하여 도구를 쓴다고 하자. 여기서 ‘앞발’은 이동 기능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특정한 도구와 연결되었다. 인간/기계는 이런 식으로 접속하며 변화한다. 혹은 서로 헤어져 또 다른 접점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이것을 시몽동은 변환(transduction)이라고 불렀다. 이후에 들뢰즈가 ‘탈영토화’ ‘재영토화’ 등으로 발전시킨 개념이다.
인간/기계가 이렇게 맞물리며 진화한다는 말은 결국 인간의 정신활동이 기술과 더불어 형성된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은 인간/기계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주관/객관, 기술/상징의 이분법도 벗어난다.
너무 낙관적인가? ‘장자’와 같은 심오한 비판을 너무 쉽게 여기는가? 물론 장자에는 일리가 있다. 지나치게 기능과 효용에 매달리면 인간성이 메마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직 기능과 효용을 위한 괴물로서 기술을 바라본다면 이것 역시 지나치다. 실제 장자의 생각도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어떤 백정의 우화를 기억해보라. 사물의 자연스런 ‘결’을 거스르지 않았기에 19년이 넘도록 칼날을 갈지 않고 소를 잡았다는 이야기. 어쩌면 인간/기술의 창조적 공존을 보여준다. 그는 사물을 저마다 본성에 맞추어 대접하자고 했다. 기계의 고정된 기능에 맞춰 사물을 획일적으로 대하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肩?생각은 시몽동과 통하지 않는가? 자신의 ‘외부’에 맞춰나가는 기술, 혹은 비결정성 개념과 닮지 않았는가?
기술문명 전체 그물망 성찰해야
기술도 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그래서 기술은 이미 하나의 상징체계이며 주관성을 띤다. 실제로 기술은 석기시대 이래로 다양한 상징과 아름다움을 표현해왔으며 상상력, 종교적 의미, 미적 유희를 기술혁신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았다. 요컨대 기술에도 개성과 주관성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기술이라는 상징체계와 더불어 세계를 파악하며 살아간다. 그럼으로써, 세계와 맺는 관계망을 바꿔나간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체’의 관점이다. 전체로서의 인간/기술 그물망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 그물이 엮어내는 문명이 말 그대로 ‘기계’적인지 ‘인간’적인지, 다시 말해 세계를 고정된 관점에서 획일화하는지 아니면 인간의 창조적 자유와 생성에 이바지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럴 때야 기술은 익명의 괴물이 아니라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지훈 / 한국해양대 강사
출처 : 한겨레
날짜 : 2006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