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민속의 정치적 악용 학자들이 막아야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12-16 23: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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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의 정치적 악용 학자들이 막아야
‘글로벌시대의 민속’ 주제- 카슈바·임돈희교수 대담
‘민속’이라고 하면 무조건 옛날 것, 박물관에 있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민속은 삶의 현장에 있다.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유문화가 사라지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민속의 의미는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어떤 민속을 보존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인지의 결정 배후에는 정치권력이 작동한다.
지난 12~13일 ‘글로벌 문화의 로컬화, 로컬 민속의 글로벌화’라는 주제로 한국민속학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참석한 독일 민속학자인 볼프강 카슈바 흄볼트대 교수와 임돈희 동국대 교수(한국민속학회장)가 글로벌 시대의 로컬 민속과 민속학 연구,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문제 등을 화제로 대담을 나눴다.
카슈바 교수(이하 카슈바) = 독일민속학은 유럽연합(EU) 통합 이후 유럽민속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과거보다는 현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 박사과정 학생들은 전통보다 도시와 대중문화에 관심을 쏟지요. EU
통합을 계기로 유럽 각국의 문화가 통합되는 과정이나 영국인이 비자 없이 동구를 여행하는 것처럼 인구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임돈희 교수(이하 임돈희) = 유럽은 경제적으로 통합됐고 지난 세기에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형성됐기 때문에 민족 단위의 민속학보다는 통합된 문화로서 유럽 민속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시아는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됐기 때문에 유럽과 달리 긍정적인 편이고 민족이라는 인식도 뚜렷한 편이지요. 동아시아 민속보다는 한국·일본·중국의 민속이라는 민족적 경계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카슈바 = 민속이란 게 정체성과 연결되는데 유럽에도 유럽 전체의 정체성이 있는가 하면 독일이나 프랑스라는 개별 민족의 정체성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유럽 통합이라는 거대한 과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독일인,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은 안전감을 부여합니다. 문제는 정치가들이 이민 온 사람들을 배척하는데 민족의 정체성을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독일 정치인이 세계화로 인해 독일문화가 사라진다면서 대책마련을 주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 원인은 세계화에 있지만 결과는 독일에서 케밥을 파는 터키인에게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임돈희 = 민속은 민족 정체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이지요. 가장 나쁘게 사용된 게 나치즘과 독일 민족주의의 연결입니다. 우리 경우에도 일본 식민지배 당시 일본이 내선일체를 주장하는데 반대해서 최남선 같은 학자는 한국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관여하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후보 선정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일민족이어서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을 선정하는 데 갈등이 없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인구의 90%가 한족이지만 국내정치의 필요 때문에 신장의 위구르족 문화유산을 끼워넣어야 합니다. 정치와 민속학은 관계가 깊은데 이것은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카슈바 = 고전적인 민속학자들이 연구한 형질인류학은 일부 학술적 근거도 있지만 나치즘에 정치적으로 이용됐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학자들이 해야 할 것은 민속이나 민속학의 지식이 악용되지 않도록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학자들은 과거의 연구 성과에서 민족주의 이념을 전달하는 부분을 제거할 수 있고 강연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극우파가 동원하는 통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세 때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로 이주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본토로 돌아온 독일계는 외국인으로 취급되지 않지만 학자들은 이들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지요.
임돈희 = 유럽내의 차별도 문제이지만 서구와 비서구의 위계가 심각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정책을 보면 유형문화유산은 1970년대부터 등재, 보존해온 반면 무형문화유산은 200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협약이 채택됐습니다. 유형문화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같은 기준을 적용해 어떤 문화유산이 다른 문화유산에 비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합니다. 대부분 유럽에 몰려있기도 하고요.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무형문화유산은 문화적 상대주의, 평등성에 기반한 상호존중과 배려, 차별논리 철폐, 타자화에 대한 반대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카슈바 = 유네스코와 유럽의 문화유산 정책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무형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건 자신의 모국을 떠난 이민자들이지요. 유형문화유산은 가져올 수 없지만 이민자들이 간직한 무형문화유산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임돈희 = 요즘 한국 민속학계에서도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가 화두입니다. 사람과 아이디어가 움직이고 매체가 세계화되면서 전세계의 문화가 뒤섞이고 있지요. 사물놀이가 우리 전통과 서양 형식의 접목이듯 현대문화의 계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고요. 결혼, 노동을 위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어떻게 동등한 자격으로 한국 문화에 융합하면서 공존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카슈바 = 세계화, 다문화화, 도시화로 다양한 문화가 혼융되는 현상이 민속학자들의 공통 관심사일 겁니다. 세계화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대중음악·의상·영화 등 공통 요소가 확산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잊힌 각 지역의 민속들도 함께 유통되고 있는 것입니다. 동질화 못지 않게 지역적, 민족적인 것이 강화되는 추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윤정기자·사진 김세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