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종가제례의 현황과 특징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12-28 0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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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제례의 현황과 특징 

김 경 선(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 

1. 머리말 

전통문화를 알고 전승하는 것은 곧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엿보는 것이고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며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효에 대한 관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며 인륜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해 왔다. 효를 바탕으로 한 조상숭배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다.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함께 조상숭배사상에 바탕을 둔 제례문화는 오랜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생활 여건이 변천되면서 가치관과 의식의 전환으로 전통제례문화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해방 후 물밀듯이 도래한 서구문명과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생활여건이 바뀌면서 우리 전통제례에 대한 관념과 의식 절차가 편의에 입각하여 변질되어 왔고, 무형의 소산인 의례문화는 멀지 않은 장래에 완전히 소멸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2년~2007년까지 6년간에 걸쳐 전국 27개 종가를 대상으로 50여 회의 전통제례 및 제례음식에 대한 조사기록사업을 수행하였다. 이 기록사업은 전통제례에 대한 이론적 ․ 학술적인 규명이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범(典範)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데 있기보다는 시대적 변천에 따른 전통의례의 변화된 모습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여 전통문화의 생생한 전승자료로 활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서구의 물질문명을 수용하는데 급급하여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볍게 여기고 또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문화와 주체성을 잃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있을 수 없다. 현장 조사된 종가의 제례에 대하여 
예서(禮書)의 내용과 비교 분석하면서 21세기 초반 현재의 전통제례문화의 현황과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 표 1 > 
연도별 종가제례 조사내역 
조사 
년도조 사 대 상 종 가소 재 지기제묘제차 례기타설날유두추석동지2002년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종가 
서흥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 
반남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월성손씨 양민공 손소 종가 
청주한씨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 경북 안동 
경북 달성 
경기 의정부 
경북 경주 
경기 안산v 


2003년 선산김씨 점필재 김종직 종가 
재령이씨 갈암 이현일 종가 
해남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 종가 
경주이씨 초려 이유태 종가경북 고령 
경북 영해 
전남 해남 
충남 논산 
충남 공주 

2004년 진성이씨 퇴계 이황 종가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 종가 
안동김씨 보백당 김계행 종가 
안동권씨 충재 권벌 종가 
하동정씨 일두 정여창 종가경북 안동 
경북 안동 
경북 안동 
경북 봉화 
경남 함양 

2005년 광산김씨 농수 김효로 종가 
성주이씨 응와 이원조 종가 
안동권씨 탄옹 권시 종가 
진주정씨 우복 정경세 종가경북 안동 
경북 성주 
대전 서구 
경북 상주v 

2006년 진원박씨 죽천 박광전 종가 
청송심씨 청성백 심덕부 종가 
전주이씨 오리 이원익 종가 
장수황씨 방촌 황희 종가 
진주류씨 진산군파 향사 전남 보성 
경기 연천 
경기 광명 
경기 파주 
경기 고양v 

2007년 남양홍씨 충장공 남이흥 종가 
청송심씨 안효공 심온 종가 
파평윤씨 명재 윤증 종가충남 당진 
경기 수원 
충남 논산v 
v 


합 계 총 27종가191841512 
* 갈암 이현일 종가는 길제, 오리 이원익 종가는 생신제임 
2. 종가의 제사 

제사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 함께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사의 종류는 그 목적과 대상, 주재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정착되어 온 각 종가의 전통 제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종가의 사당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왕실의 사당을 종묘, 학교(태학)의 사당을 문묘, 가정의 사당을 가묘라 한다. 신주 대신에 영정을 모시기도 하는데 영당이라고도 한다. 예서에 의하면 사당은 정침의 동쪽에 두고 북쪽 벽에 가(架)를 설치하여 4개의 감실(龕室)을 만들어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신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종가 사당의 위치는 『주자가례』의 법식대로 정침의 동쪽 또는 동북쪽 조금 높은 곳에 사당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예외적으로 정침의 서쪽 또는 사랑채와 안채의 중간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봉화 안동권씨 충재 종가의 사당은 정침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성주 성산이씨 응와 종가의 사당은 사랑채와 안채 중간에 사당이 있다. 서쪽에 둔 경우는 풍수지리상의 이유인 듯하나 확실한 근거는 찾지 못하였고, 중간에 두는 경우는 돌아가신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이 보다 더 가까이에서 교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안동의 퇴계 종가의 사당은 정침과 별채인 추월한수정의 중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별채는 퇴계의 불천위제사를 지내는 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당의 신주 봉안 방법으로는 소목식과 동당이실식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소목식은 5묘제의 경우, 1세를 중앙에 모시고 2세와 4세를 동쪽에 두어 ‘소(昭)’라고 하고, 3세와 5세는 서쪽에 두어 ‘목(穆)’이라 한다. 동당이실식은 한 건물 안에 신실만 구획하여 서쪽을 상위로 하여 차례로 모시는 방법이다. 소목식은 고례(古禮)에 있었으나, 후한대 이래 이미 모든 사당의 형식은 동당이실식으로 바뀌었다. 
종가의 불천위 신주는 일반적으로 4대친을 모시는 가묘에 감실을 하나 더 마련하여 함께 모신다. 서쪽을 상위로 하여 불천위(원위)를 가장 서쪽에 모시고 고조고비, 증조고비, 조고비, 고비의 순서로 모신다. 이미 4칸으로 지어진 후에 불천위를 인정받은 경우에는 동벽에 감실을 하나 추가로 설치하여 모시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고례의 소목법을 원용하여 사당의 중앙에 불천위를 모시고 4대조를 좌우에 소목의 세대 순서에 따라 배치하여 모시는 종가도 있는데, 점필재 김종직 종가와 한훤당 김굉필 종가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4대친을 모시는 가묘와는 별도로 별묘를 지어 불천위를 모시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별묘를 종가 안에 두기도 하고 묘소 옆이나 기타 다른 연고지에 별도로 별묘를 두는 경우도 있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종가는 불천위를 두 분 모시고 있는데, 4대조를 모시는 가묘와 별도로 불천위는 각각 별묘에 따로 모시고 있다. 불천위는 고산 윤선도와 그의 4대조이며 해남윤씨 득관조인 어초은 윤효정인데, 가묘는 정침의 동쪽 담장 안에 위치하여 안사당이라 하고 담장 바깥쪽에 고산과 어초은의 불천위 사당이 각각 따로 위치하고 있다. 4대 조상의 기제사는 해당 기일에 각각 정침에 출주하여 지내고 별묘에 모셔진 조상의 불천위제사는 사당에서 지낸다. 
우복 정경세 종가 역시 두 분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는데, 우복은 가묘에 4대조와 함께 모시고 있고 그의 6대손인 입재 정종로는 별묘에 따로 모시고 있다. 오리 이원익은 종가 안에 불천위 영당(오리영우)이 있고, 청송심씨 안효공 심온은 묘하에 부조묘(안효사)가 있다. 장수황씨 방촌 황희는 묘소 옆에 부조묘 사당이 있고, 묘 아래와 반구정 옆에 따로 영당이 있다.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김씨 사당에는 부조지위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있다. 부조지위는 군자마을 입향조인 김효로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그의 증손자 근시재 김해이다. 불천위와 부조위는 같은 의미이나 이 문중에서는 종손이 주관하여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조상을 ‘불천지위’, 유림이 주관하여 향사를 지내는 조상을 ‘부조위’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사당은 일상적으로 매일 아침 문안드리는 신알례, 외출 시에 인사드리는 출입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약식으로 예를 올리는 참례, 명절을 맞아 그 때마다 나는 음식을 사당에 올리는 천신례, 그리고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고하는 고사례 등의 일상적인 의례를 행한다. 그리고 사당은 고인이 죽은 후 4세대에 걸쳐 약 100여년 동안을 기제사, 명절 차례 때 마다 신주를 출납하는 곳으로 조상과 자손이 교감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2) 기제 - 불천위 제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사는 기제사이다. 기제사는 기일제사 즉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기제사의 대상은 직계 4대 조상이다. 고조부모로부터, 증조부모, 조부모와 부모의 4대를 제사 지내기 때문에 4대 봉사라고 한다. 
불천위 제사는 기제사의 특수한 형태이다. 불천위란 4대를 지나 친진(親盡)이 되어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자손 대대로 영원히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조상이다. 불천위란 나라에 큰 공을 세웠거나 학덕이 높아서 국가에서 인정한 국불천위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향불천위 또는 사불천위가 있다. 국불천은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 국난을 극복한 공로로 공신에 책록되면 토지와 노비의 벼슬을 내리는 물질적인 특혜는 물론 사후에 그 자손들이 영원히 제사지낼 수 있는 부조묘를 내리게 된다. 종묘에 배향되는 종묘배향공신과 학문과 덕망으로 문묘에 배향되는 유현들도 부조위로 인정되고, 또 특별한 공로가 있을 때 왕의 특지(特旨)로 부조위의 은전을 내리기도 하였다. 
조사대상 종가의 경우, 경주 양동마을의 양민공 손소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이 되었고, 당진의 충장공 남이흥은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공신에 책록됨으로써 부조지위의 은전을 받았다.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선조 임금을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이 되었고, 봉화 닭실마을의 충재 권벌 역시 광국원종공신 1등에 책록됨으로써 친진부조의 명을 받았다. 안효공 심온(세종비 소헌왕후의 부)과 서평부원군 한준겸(인조비 인열왕후의 부)은 국구(國舅)로서 불천위가 되었다. 세종조의 황희는 종묘배향공신으로서, 인조조의 이원익은 호성공신이며 종묘배향공신으로서 불천위이다. 초기 사림으로 훈구세력과 대립하다가 무오&#8228;갑자사화에 화를 입은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과 퇴계 이황, 사계 김장생 등은 도학자로서 문묘에 배향됨으로써 국불천이 되었다. 

가. 기제의 일시 및 장소 
기제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자정이 지나 날이 새기 전에 지낸다. 장소는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있는 경우 정침 또는 청사로 출주하여 지낸다. 정침은 집의 중심되는 공간으로 보통 안채나 사랑채의 대청에서 지낸다. 
나. 설위 및 진설 
제상의 제사를 모실 때 돌아가신 한 분만을 모시면 단설이라 하고 그 배우자와 함께 모시면 합설이라 한다. 예서에서도 주자의 『가례』에는 단설로, 정자의 『제례』에는 합설로 나와 있어 그 이론적 근거를 달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여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이론상으로는 기일에 해당하는 한 분만 모시는 것이 바른 예로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의 근본은 인정에 있다 하여 두 분을 함께 모시는 합설로 지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합설의 경우에도 신주를 한 교의에 모시고 제수를 한 상에 차리느냐 아니면 각각 다른 제상에 따로 차리느냐에 따라 합설과 각설(병설)로 구분된다. 각설은 모든 제사 음식을 신위의 수대로 완전하게 따로 진설하는 반면, 합설의 경우에는 메와 갱, 잔반만 따로 올리고 나머지 제수는 공통으로 차린다. 예서에서는『국조오례의』에서 합설로 규정되어 있고『주자가례』를 비롯하여 이이의『격몽요결』「제의초」나 이재의『사례편람』등의 가례류에는 모두 각설을 예시하고 있다. 
조사대상 종가에서도 대부분 합설로 모시고 지내고 있으나 퇴계 이황종가를 비롯하여 서애 류성룡 종가, 충재 권벌 종가 등 영남지방의 일부 종가에서는 단설로 설위한다. 합설일 경우 진설은 대개 공탁으로 차리나 학봉 김성일 종가에서는 양위를 각각 완전하게 따로 차린다. 
제수를 제상에 격식을 갖추어 배열하는 것을 진설이라 하는데 제사 상차림은 지방마다 가정마다 각기 달라 ‘가가례(家家禮)’라 일컬어질 만큼 다양하다. 모든 예서에서 제수의 차림이 4행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이의『격몽요결』「제의초」에서만 탕이 한 줄 추가되어 5행으로 되어 있다. 제상의 맨 앞쪽으로부터 첫째 줄에 과일을 놓고, 둘째 줄에는 포와 나물 종류를, 셋째 줄에는 탕을, 넷째 줄에는 어육과 면병을, 마지막 줄에 시접과 잔반을 놓고 메와 국을 차린다. 현재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탕을 쓰고 있으므로 5열로 차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 기제의 절차 
① 출주 
출주는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사당에서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오는 의례를 말한다. 설날과 추석 차례에서와 같이 사당에 모시고 있는 모든 조상에게 합동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는 사당에서 지내지만 기제사는 기일에 해당하는 신위만을 정침 또는 청사로 출주하여 제사를 올린다. 합설인 경우에는 배우자도 함께 출주한다. 주인은 사당에 올라가 분향하고 출주 고사를 하고 주독을 정침으로 모셔온다. 

< 표 2 > 
예서별 기제절차 비교 
朱子家禮 擊蒙要訣四禮便覽陳設 設蔬果酒饌 設蔬果酒饌 設蔬果酒饌出主 焚香 
出主告辭 
出主(正寢) 
啓&#27357; 焚香 
出主告辭 
出主(正寢) 
啓&#27357; 焚香 
出主告辭 
出主(正寢) 
啓&#27357; 參神 主人以下再拜 主人以下再拜 主人以下再拜降神 焚香 
斟酒 
灌於茅上 
再拜 焚香 再拜 
斟酒 
灌于茅上(盡傾) 
再拜 焚香 
斟酒 
灌于茅上(盡傾) 
再拜進饌 魚肉 米&#40618;食 羹飯 魚肉 餠&#40618; 羹飯 魚肉 米&#40618;食 羹飯初獻 斟酒 
奠爵 
祭之茅上 
進炙肝 
讀祝 
再拜 
徹酒 徹肝 斟酒 
奠爵 
祭之茅上(少傾酒也) 
進炙肝 
讀祝 
再拜 
徹酒 徹肝 斟酒 
奠爵 
祭之茅上(三祭少傾) 
進炙肝 
讀祝 
再拜 
徹酒 徹肝亞獻 主婦爲之 
進炙肉 
如初獻儀 但不讀祝 主婦爲之 
進炙肉 
但不祭酒不讀祝 主婦爲之 
進炙肉 
但不讀祝終獻 兄弟之長 或長男 或親賓爲之 
進炙肉 
如亞獻儀 兄弟之長 或長男 或親賓爲之 
進炙肉 
如亞獻儀 兄弟之長 或長男 或親賓爲之 
進炙肉 
如亞獻儀侑食 添酌 
扱匙正&#31599; 
再拜 添酌 
扱匙正&#31599; 
再拜 添酌 
扱匙正&#31599; 
再拜 闔門 闔門 闔門 闔門啓門 啓門 
奉茶 
啓門 
奉茶(熟水) 
徹羹 啓門 
奉茶(代以水) 
徹羹辭神 主人以下再拜 主人以下再拜 主人以下再拜(焚祝文)納主 合&#27357;(奉主納于&#27357;) 
納主(奉歸祠堂) 合&#27357;(奉主納于&#27357;) 
納主(奉歸祠堂) 合&#27357;(奉主納于&#27357;) 
納主(奉歸祠堂) 徹 徹饌 徹饌 徹饌 

<출주고사> 합설인 경우 

今以 
顯先祖考某官府君 遠諱之辰 敢請 
顯先祖考 
顯先祖&#22947;神主 出就正寢 恭伸追慕 



② 참신 &#8228; 강신 
사당에서 신주를 출주하여 교의에 모시고 개독한 다음 참제자 일동은 재배하여 참신례를 행한다. 신주에 조상의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먼저 인사를 드리는 의례이다. 강신례는 조상의 혼백이 강림케 하는 의식이다. 향을 피워 천상의 혼(魂)을 부르고, 강신술을 모사에 부어 지하에 있는 백(魄)을 모셔와 혼백을 일치시키는 상징적인 의례이다. 주인은 신위 앞에 나아가 향을 세 번 피우고 집사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모사에 붓고 일어나 두 번 절한다. 모사는 모래에 띠 풀을 꽂은 것으로 땅을 상징한다. 
제사 절차에서 참신을 먼저 하느냐 강신을 먼저 하느냐 하는 문제는 예로부터 많은 논란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실제 행례에 있어서도 지방과 가문에 따라 일정하지가 않다. 예서에서도 제사의 종류에 따라 참신 &#8228; 강신의 순서가 다르고 또 같은 종류의 제사에서도 예서에 따라 순서가 다르게 되어 있기도 하여 실제 행례에 있어 혼동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한 후에 강신례를 행하고, 지방을 모시고 지낼 경우에는 그와 반대로 강신한 후에 참신례를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신주를 모시고 지낼 경우에도 기제사와 같이 신주를 출주하여 정침에서 지낼 때에는‘선참후강’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설날이나 추석 차례와 같이 신주를 옮기지 않고 직접 사당에서 지낼 경우에는 ‘선강후참’의 순서로 규정되어 있다. 
묘제의 경우에는 예서에서조차 그 순서가 서로 다르게 규정되어 있어 실제 행례에 있어 각양각색으로 행하고 있다.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는 ‘선참후강’의 순으로 되어 있는데 율곡의 『격몽요결』「제의초」에는 ‘선강후참’의 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 종가의 경우, 불천위 제사는 사당에서 신주를 정침 또는 청사에 출주하여 지내므로 예서에 규정된 대로 대체로 ‘선참후강’의 순서로 지내고, 설날과 추석 때 사당에서 지내는 차례는 ‘선강후참’의 순서로 행하고 있다. 
고산 윤선도 종가는 불천위는 별묘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기제도 사당에서 지내므로 ‘선강후참’의 순서로 지낸다. 그러나 신을 먼저 강림케 한 후에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다는 생각으로 제사의 종류와 장소에 관계없이 ‘선강후참’의 순서를 행하는 종가도 있다. 점필재 김종직 종가, 한훤당 김굉필 종가와 응와 이원조 종가의 경우가 그러하다. 반대로 충재 권벌 종가에서는 기제, 차례, 묘제 등 모든 의례에서 ‘선참후강’의 순으로 행하기도 한다. 

③ 진찬 
강신 후에는 진찬한다. 조상신이 강림하였으므로 메와 국, 탕, 면병 등 더운 음식을 올리는 절차이다. 예서에는 주인과 주부가 함께 차리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집사들이 대행한다. 
④ 초헌례 
초헌은 신위께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예로 반드시 주인〔宗子〕이 행한다. 신위께 헌작, 독축, 재배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예서에는 먼저 신위께 헌작하였다가 다시 술잔을 내려 모사 위에 세 번 조금씩 지우고〔祭之茅上〕다시 신위전에 올린다. 헌작 후 특별 안주로 적(炙)을 올리고, 메의 뚜껑을 연다. 주인 이하 제관 일동은 부복하고 축이 주인의 왼편에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독축은 신위께 제향을 올리는 사유와 자손의 정성을 고하는 절차로 제례의 정점에 해당한다. 독축이 끝나면 술잔을 내려 비우고 적을 내린다. 

<축문> 

維歲次○○ ○月○○日 
孝○○代孫○○ 敢昭告于 
顯○○代祖考某官府君 
顯○○代祖&#22947;某封某氏 歲序遷易 
顯○○代祖考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謹以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饗 


⑤ 아헌례 &#8228; 종헌례 
아헌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순서로 예서에서는 모두 주부가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래 엄격한 내외법 때문인지 여성들은 으레 제수의 조리 등 준비만 하고 의례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온 것 같다. 특히 불천위 제사의 경우 가까운 집안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문중의 사람들도 제관으로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주부 대신에 남성이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사 대상 종가 중 실제로 주부가 아헌을 행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상주의 우복 정경세 종가, 안동의 보백z당 김계행 종가, 경주 양동마을의 양민공 손소 종가에서만 주부가 아헌례를 행하였다. 손씨 종가의 경우 주부가 아헌을 행하기는 하되 직접 신위 전에 나아가지 않고 옆방에서 헌작하고 곡배하는 남녀유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 학봉 김성일 종가에서도 주부가 아헌을 행하였다고 하나 종부가 타계한 후에는 남성이 대신하게 되었고, 점필재 김종직 종가에서는 종부가 처음 시집왔을 때 한번 아헌을 하였다고 한다. 
종헌은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순서이다. 순서와 방법은 아헌의 경우와 꼭 같다. 아헌관 종헌은 보통 지파의 파종손이나 문중의 문장(門長)이 맡기도 하고 유림에서 참여할 경우 문하의 타 문중 대표가 맡기도 한다. 
초헌, 아헌, 종헌 때에 헌관이 술잔을 신위전에 올렸다가 다시 내려 모사에 세 번 조금씩 붓고〔祭之茅上〕다시 올리는 의례는 지방과 가문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각기 준거 예서를 달리하고 있는 데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주자가례』와『사례편람』에서는 삼헌 때에 모두 ‘삼제(三祭)’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격몽요결』「제의초」에는 초헌 때에만 ‘삼제’의례가 있고 아헌과 종헌 시에는 없다. 또 『가례의절』에는 삼헌 때에 모두 ‘삼제’ 의례를 행하되 침주-제주-전작의 순서로 미리 ‘삼제’한 후 잔을 올리는 것으로 다소 간소화 되었으며, 『국조오례의』에는 아예 ‘삼제’ 의례가 없다. 
사계 김장생 종가를 비롯하여 탄옹 권시 종가, 안효공 심온 종가,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 충장공 남이흥 종가 등 기호지방에서는 대부분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서 정한대로 삼헌 시에 모두 ‘삼제’ 의례를 행하는 반면, 영남지방에서는 대부분 ‘삼제’ 의례 없이 헌작례를 행한다. 그러나 영남지방에서도 충재 권벌 종가와 양민공 손소 종가와 같이 삼헌 때에 모두 ‘삼제’ 의례를 행하고 있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기호 지방에서도 명재 윤증 종가와 서계 박세당 종가에서는 ‘삼제’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일두 정여창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와 응와 이원조 종가에서는 삼헌에 모두 ‘삼제’를 행하되 헌관이 잔을 올릴 때 미리 삼제한 후에 전작하여 『가례의절』의 예를 따르고 있다. 
보백당 김계행 종가에는 홀기 상에는 삼헌에 모두 삼제 후 전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종헌 때에만 ‘삼제’ 후 헌작하고, 퇴계 이황 종가는 아예 홀기상에 초헌&#8228;아헌 때에는 없고 종헌 때에만 ‘삼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신을 위하여 대제(代祭)한다는 ‘삼제’의 본래의 의미가 약화되고, 종헌 후에 이어지는 유식례에서 첨작할 때 잔이 넘치지 않도록 미리 잔을 좀 덜어낸다는 의미의 ‘제작(除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학봉 김성일 종가의 경우 홀기에는 삼헌 시에 모두 ‘제주(祭酒)’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실제 행례에 있어서는 ‘삼제’의례를 행하지 않고 있다. 호남지방의 경우에도 고산 윤선도 종가에서는 삼헌 시 모두 ‘삼제’를 행하는 반면, 죽천 박광전 종가에서는 전혀 ‘삼제’ 의례를 행하지 않는 등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⑤ 유식 &#8228; 합문 &#8228; 계문 
유식은 신에게 식사를 권하는 순서이다. 주인은 술 주전자를 들고 종헌 시에 올린 술잔에 첨작하고 삽시한 다음 향안 앞으로 돌아와 재배한다. 합문은 신이 식사하는 동안 잠시 문을 닫고 기다리는 절차이다. 음식을 드시는 조상을 정면으로 향하기가 송구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사(대청)에 모셔내어 제사를 지낼 때 문이 없을 경우에는 병풍으로 가리고 부복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9식경이라 하여 밥을 아홉 술 뜨는 시간이라고 전해온다. 
계문은 신의 식사가 끝났으므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차를 올리는 순서이다. 축이 헛기침을 세 번 하고 문을 열면 모두 제청 안으로 들어가 제자리에 선다. 국그릇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다. 제관은 모두 제자리에 부복하거나 국궁한다. 각종 예서에는 모두 ‘봉다’, ‘헌다’, ‘진다’, 점다‘ 등의 용어로 규정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차를 상용하지 않아 숭늉〔熟水〕으로 대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⑥ 사신례 
진다절차가 끝나면 좌우 집사는 수저를 내리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이어서 제관 일동이 신위를 향하여 함께 두 번 절함으로써 신을 보내드린다. 사신 재배로 제례의 절차는 모두 끝나고 신주는 주독에 모시고 사당에 환안한다. 축은 축문을 태우고 집사들은 철상하고 음복한다. 
기제에서는 사시제에서와 같이 복주와 조육을 먹는 음복수조의 예가 없다. 대신에 사신하기 전에 주인이 동쪽에서 서향하여 서고, 축이 서쪽에 서서 주인을 향하여 ‘이성(利成)’을 고하기도 한다. 이는 고례에 있던 예로 신을 봉양하는 예가 원만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의식이다. 『주자가례』나 『사례편람』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행하는 집도 있고 행하지 않는 집도 있다. 


(3) 묘제 
가. 묘제의 대상 
묘제는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로 묘사 또는 시제, 시사라고도 한다. 묘제의 대상은 『주자가례』에는 4대친과 5대조 이상의 구별이 없이 전 조상에게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고,『사례편람』에서는 4대친은 3월에, 5대조 이상 조상에 대하여는 10월에 지내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다. 대체로 기호지방에서는 5대조 이상 조상에 대하여는 1년에 한번 묘소에서 지낸다 하여 ‘세일사(歲一祀)’라 하고 4대친에 대하여는 설, 한식,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지내는 절사(節祀)로 구분하기도 한다. 

나. 제일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는 3월 상순에 날짜를 정하여 묘제를 지낸다고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묘제를 중시하여 설날 &#8228; 한식 &#8228; 단오 &#8228; 추석 등 속절에도 묘제를 지냈다. 『격몽요결』「제의초」에는 속제에 의하여 정조 &#8228; 한식 &#8228; 단오 &#8228; 추석 4명일에 묘소에서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은 대개 1년에 한 번 음력 10월에 날을 정하여 지내기도 하고, 춘추 향사 또는 4절일 중에서 형편에 맞게 날짜를 택하여 묘제를 지내기도 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추석날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성묘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조사대상 종가에서는 대부분 음력 10월에 날을 정하여 묘제를 지내고 있다. 청송 심씨 안효공파 종중에서는 안효공 심온 묘소에서는 설날&#8228;한식&#8228;단오&#8228;추석에 4절사를 지내고, 배위인 순흥 안씨 묘소에서는 춘추 향사를 지낸다. 방촌 황희 종중에서는 한식날 묘소에서 절사를 지낸다. 

다. 묘제의 절차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 따르면 묘제의 순서는 참신→강신→초헌→아헌→종헌→사신의 순으로 되어 있다. 예서에서의 기제와 비교하여 다른 점과 각 종가의 실제 행례에서의 몇 가지 다른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진찬 
제사음식을 차릴 때 기제에는 출주 전에 먼저 진설(설소과주찬)하고 강신 후에 진찬하는 절차로 되어 있으나 묘제에는 진설 &#8228; 진찬 구별 없이 한꺼번에 차린다. 진찬 방법은 기제사 때와 같이 하나 묘소의 형태에 따라 합설 또는 각설(병설)로 차린다. 부부의 묘 형태는 대체로 같은 장소에 쌍분, 또는 합장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지형상 또는 풍수지리상의 이유 등으로 상하 또는 전후의 배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부가 서로 다른 지역에 각각 따로 위치하는 단묘(單墓)의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묘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묘제를 각각 따로 지낸다. 합장분일 경우에는 한 석상 위에 합설로 진설한다. 메와 갱, 술잔만 신위의 수대로 따로 차리고 나머지는 공통으로 차린다. 상하 또는 전후에 위치할 경우에는 배위의 신위를 부군의 묘소로 모셔 와서 합설하여 함께 지낸다. 
신위를 모셔오는 의례를 인향, 인혼 또는 인배라고 한다. 주과포로 제물을 갖추어 분향 &#8228; 헌작하고 향로나 신위석에 의지하여 부군의 왼쪽에 모시는 의례인데, 보백당 김계행, 서애 류성룡의 묘제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었다. 보백당 묘소에서는 바로 뒤쪽에 위치하는 배위의 묘소에서 부군의 신위 옆으로 인혼(引魂)하는 의례를 행하였고, 서애 류성룡의 묘소는 부군과 초배위 양위가 합장되어 있는데 인근에 계배위의 묘소가 있어 그 신위를 인배(引拜)하여 3위를 함께 합설하여 제사를 올렸다. 그러나 청송 심씨 청성백 심덕부 묘제의 경우에는 배위의 묘소가 부군묘의 바로 앞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각각 별도로 묘제를 지냈다. 학봉 김성일의 묘는 양위가 쌍분으로 되어 있고, 석상도 각각 따로 설치되어 있는데, 기제 때와 마찬가지로 제수를 각각 따로 차리는 각설의 예를 볼 수 있었다. 

② 참신 &#8228; 강신 
『주자가례』와『사례편람』에는 참신→강신의 순서로 되어 있으나 『격몽요결』「제의초」에는 강신→참신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예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되어 왔다. 사계 김장생은 “신위를 설치하는데 신주가 없으면 먼저 강신을 하고, 뒤에 참신을 한다. 묘제 역시 그러한데, 『주자가례』에는 ‘우선 참신을 하고 나중에 강신을 한다’고 하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 『격몽요결』에서 ‘묘제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고 하니 아마 옳은 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저술한 『상례비요』의 묘제에서는 『주자가례』에서와 같이 ‘선참후강’하는 것으로 정해 놓았다. 『격몽요결』을 따르고 싶었으나 『주자가례』를 바꾸는 것이 미안해서 그대로 따랐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예서에서조차 순서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의 실제 행례는 ‘가가례’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학봉 김성일 종가, 충재 권벌 종가, 탄옹 권시 종가, 서계 박세당 종가 및 안효공 심온 종가는 선참&#8228;후강의 예를 따르고, 점필재 김종직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 보백당 김계행 종가, 응와 이원조 종가, 방촌 황희 종가, 죽천 박광전 종가, 파평윤씨 노종파에서는 선강신&#8228;후참신의 예를 따르고 있다. 퇴계 이황 종가, 일두 정여창 종가에서는 정침(청사) 또는 재실에서, 진주 류씨 종중에서는 사당에서 지방을 모시고 지내므로 강신례를 먼저 하고 참신례를 행한다. 

③ 초헌 &#8228; 아헌 &#8228; 종헌 
헌작 절차는 대체로 기제사와 같다. 종헌 후에 유식 절차 없이 바로 사신하게 되므로 『격몽요결』「제의초」에는 초헌 때에 삽시정저하는 것으로 명기해 놓았다. 묘제의 축문은 예서에서 묘제의 시기와 대상에 따라 소정의 축식이 있다. 현재 많은 종가에서 음력 10월에 행하는 묘제 축식은 다음과 같이 정형화 되어 있다. 


維歲次○○ ○月○○日 ○○ 
孝○○代孫○○ 敢昭告于 
顯○○代祖考某官府君之墓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塋 不勝感慕 
謹以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饗 

『주자가례』에서는 묘제를 3월에 묘소에서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氣序流易 雨露旣濡 瞻掃封瑩’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격몽요결』「제의초」에는 설날 &#8228; 한식 &#8228; 단오 &#8228; 추석 4명일에 지내는 속제에 맞추어 그 절기에 따라 축식의 표현이 조금씩 다르게 정해져 있다. 
&#8228; 正朝 : 氣序流易 靑陽載回 瞻掃封塋 不勝感慕 
&#8228; 寒食 : 氣序流易 雨露旣濡 瞻掃封塋 不勝感慕 
&#8228; 端午 : 氣序流易 草木旣長 瞻掃封塋 不勝感慕 
&#8228; 秋夕 : 氣序流易 白露旣降 瞻掃封塋 不勝感慕 

청송심씨 안효공 심온 묘소의 단오 절사 축문에는 ‘歲序遷易 端陽茂菖 瞻掃封塋 不勝永慕’라고 쓰고 있다. 『사례편람』에는 4대친과 친진된 5대조 이상의 조상을 구분하여 4대친에 대하여는 3월에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氣序流易 雨露旣濡 瞻掃封瑩 不勝感慕’를 쓰고, 친진조에 대하여는 10월에 지내는 것으로 ‘草木歸根之時 追惟報本 禮不敢忘 瞻掃封塋’ 으로 축문을 쓰도록 예시하고 있다. 
불천위 조상에 대하여는 기호 지방에서는 묘제를 지내지 않고, 영남지방에서는 불천위라도 대부분 묘제를 지내고 있다. 이 경우 기제를 지내는 불천위와 친진되어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을 구분하여 축문의 내용을 다르게 고하는 종가도 있다. 일두 정여창 종가와 죽천 박광전 종가의 경우에는 불천위에 대한 축문은 ‘氣序流易 霜露旣降 瞻掃封塋 不勝感慕’ 를 쓰고, 기타 5대조 이상 조상에 대하여는 ‘歲薦一祭 禮有中制 履玆霜露 彌增感慕’라 하여 ‘세일사’임을 표시하고 있다. 
진주 류씨(진산군파)의 경우 동일 묘역의 모든 조상에 대하여 사당에서 합동으로 세일사를 지내므로 ‘歲薦一祀 古有典禮 瞻掃祠宇 合同行祀’라는 축식으로 고한다. 
④ 유식 &#8228; 합문 &#8228; 계문 &#8228; 사신 
『주자가례』와『사례편람』에는 묘제에 유식과 합문, 계문의 절차가 없다. 종헌 후에 바로 사신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행례에 있어서는 기제 때와 같이 종헌 후에 유식, 진다를 행하는 가정이 많다. 점필재 김종직 종가, 보백당 김계행 종가, 응와 이원조 종가, 파평 윤씨 노종파 종중에서는 삼헌 후에 바로 사신하는 절차로 지내는 반면, 충재 권벌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 및 서계 박세당 종가의 묘제에서는 종헌 후 유식 및 진다를 행하고 사신한다. 
유식례는 기제 때와 같이 종헌 때에 올린 술잔에 첨작하고 삽시정저하는 절차이다. 묘제는 실외에서 지내기 때문에 합문, 계문 절차는 대체로 생략하고 부복 또는 국궁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학봉 김성일 종가에서는 종헌 후에 첨작하지 않고 삽시정저만 한다. 탄옹 권시 종가, 죽천 박광전 종가에서는 종헌 후 진다례를 행하고 사신한다. 탄옹 종가의 묘제홀기에는 “차 대신에 숭늉을 올린다. 예서에서는 생략되지만 속례에 따라 행한다”라고 주석해 놓은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시대부터 묘제는 예서의 규정에 불구하고 기제 절차에 준용하여 행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⑤ 후토제(산신제) 
묘제가 여타 제사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묘제를 지낸 후에 토지신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산신제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정확하게는 ‘토지지신’〔后土神〕에게 드리는 제사이다. 묘제와 산신제 어느 쪽을 먼저 지내느냐 하는 것은 지방과 가문의 관습에 따라 다르게 전래되고 있으나, 예서에서는 모두 묘제를 지낸 다음에 토지지신에게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토지지신에게 조상의 유택을 잘 보호해 주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후토제를 지낸다고 해석한다면 토지신에게 먼지 지내는 것이 예의인 듯하나 예서에는 반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각 가문마다 그 순서가 구구하다. 기호지방, 영남지방 구분할 것 없이 거의 반반으로 그 순서를 달리하고 있다. 

○ 후토제를 묘제 후에 지내는 종가 
&#8228; 기호지방 : 서계 박세당 종가, 탄옹 권시 종가 
&#8228; 영남지방 : 점필재 김종직 종가, 학봉 김성일 종가, 응와 이원조 종가, 농수 김효로 종가 
○ 후토제를 묘제보다 먼저 지내는 종가 
&#8228; 기호지방 : 청성백 심덕부 종가, 안효공 심온 종가, 진주 류씨 종가 
&#8228; 영남지방 : 일두 정여창 종가, 충재 권벌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 

후토제는 주인이 직접 주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타인에게 대행시키고 있다. 대행시의 축식은 아래와 같고 축문은 조상의 묘소에 세사를 지내게 됨에 토지신이 조상의 유택을 잘 보호해 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維歲次○○ ○月○○日 
幼學○○ 敢昭告于 
土地之神 ○○恭修歲事于 
顯○○祖考某官某公府君 
顯○○祖&#22947;某封某氏之墓 惟時保佑 實賴 
神休 敢以酒饌 敬伸奠獻 尙 
饗 



후토제의 절차는 예서에는 삼헌하는 절차로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종가에서는 단헌으로 약식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점필재 김종직 종가, 탄옹 권시 종가, 응와 이원조 종가에서는 정식으로 삼헌례를 행한다. 후토제는 제수도 대개 그 종류와 규모에 있어 묘제 본 제사보다 훨씬 소략하게 차리는데, 서계 박세당 종가와 탄옹 권시 종가에서는 본 제사와 꼭 같은 규모로 차리는 정성을 보이고 있다. 

라. 시범사례 및 변화추이 
기제사는 봉사 대수가 4대로 한정되어 있지만 묘제는 봉사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종래에는 명당자리를 찾아 조상의 묘소를 정하였기 때문에 모든 조상을 대상으로 묘제를 지내는 데는 상당한 시일과 비용이 소요된다. 지금도 실제로 10월 한 달 내내 시향을 지내는 집들이 많다. 
옛날에는 묘역별로 그 묘역에 소요되는 제사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위토〔祭田〕를 마련하고 묘하에 재사(齋舍)를 지었으며, 재사에는 관리인을 두어 위토를 경작하고 묘소를 관리하며 제수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남의 재사에 거주하면서 묘지 관리를 해줄 인력이 없어 재사들은 대부분 비어 있는 실정이며, 제수는 종가 또는 종중에서 직접 준비하여야 하는데 역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애로점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근래에는 묘제의 대상이 되는 조상에 대하여 합동으로 향사하는 추세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날짜는 후손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휴일로 정하고, 장소는 재사 또는 종가 정침에서 행하며 제수 준비는 문중에서 협력하여 공동 부담하는 식으로 하여 시간과 경비를 절감하고 후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데 부심하고 있다. 조상의 묘소가 각처에 산재해 있는 경우에 문중 묘역 또는 가족 묘역으로 이장하기도 하고, 문중의 묘역에 사당을 지어 전 조상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모시기도 한다. 
묘제의 변화하는 실제 사례 몇 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사례 (1) 풍산 류씨의 문중시사(회전합사) 
안동 하회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풍산 류씨 문중은 조상에 대한 숭모 정신과 후손들의 참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문중시사의 전통이 있다. 이미 겸암 류운룡 &#8228; 서애 류성룡 형제 당시부터 실전된 선대 조상의 묘소를 찾아내어 묘역 단위별로 6소(所)로 정하고, 문중의 자손들을 3년마다 번갈아 한 번씩 의무적으로 참례하게 하여 18년이 지나면 모든 소의 선조 묘에 참배할 수 있게 하였다. 자손들은 제물을 담은 합(盒)을 만들어 지정된 소에 참례한다. 합은 음식을 담는 정방형의 목재 그릇으로 몇 개를 중첩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휴대용 도시락과 같은 것이다. 각자 준비한 음식을 합채로 진설하고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합제사’ 또는 ‘합사’라 한다. 제사가 끝난 다음에는 합 가운데 잘 된 것을 가려 뽑아 정성과 솜씨를 겨루는 품평회를 가지기도 한다. 이런 회전시사를 통하여 동족의식을 재확인하고 문중의 친목과 결속을 다지는 전통이 수백 년간 전승되어 오고 있다. 

■ 사례 (2) 진성이씨 퇴계 이황 종가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파조인 이황으로부터 현 종손의 4대친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상의 묘제를 정침에 인향하여 합동으로 지낸다. 종손이 연로하여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묘소에 제사를 주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수의 준비 및 운반, 제관의 참여, 제사경비 등 여러 면에서 각 묘소별로 행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행례 전에 각 묘소로부터 신위로 모셔 오는 인향의례를 행한 후, 종가에서 지방(紙榜)으로 설위하고 합동으로 지낸다. 15대조인 퇴계로부터 9대조까지 상대의 조상과 그 이하의 하대 조상을 회전(會奠)과 사산제(私山祭)로 구분하여 두 번 지낸다. 하대의 사산제는 제수도 다소 간소하게 차리고 절차도 무축단헌으로 약식으로 지내고, 상대의 회전은 은전으로 차리고 정식 절차에 의하여 문중 행사로 지낸다. 

■ 사례 (3) 하동정씨 문헌공파(일두 정여창 종가) 
하동정씨 문헌공파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승안산 기슭에 문중 묘역이 있다. 정여창의 5대조로부터 직계 선후대 7대에 걸쳐 10기의 묘소에 20위가 모셔져 있다. 종래에는 각 묘소별로 묘제를 지내왔으나 묘소가 여러 능선에 산재해 있고 참례하는 제관들이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기 때문에 3년 전부터 재사(여재각)에서 합동제사를 올리고 있다. 제청에 묘소의 수대로 제상을 10개 설치하고 신위는 지방으로 설위하며, 진설은 각 묘소 단위로 합설하여 합동으로 지낸다. 

■ 사례 (4) 진원박씨 죽천 박광전 종가 
진원박씨 죽천 박광전의 묘소는 전남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종택 뒷산에 죽천의 조부모를 비롯하여 증손에 이르기까지 직계 선후대 6세대의 집단 묘역 안에 위치하고 있다. 종손은 현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읍내에 거주하고 종택에는 노종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묘제 제수를 종가에서 준비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종중에서는 묘소별로 위토를 분할하여 인근에 거주하는 후손들에게 나누어 지급하여 경작케 하고 제수 준비를 분담시키고 있다. 묘제 당일에 제수를 맡은 후손들이 각기 마련한 제수를 묘소에 운반해 와서 각각 진설한다. 제수의 종류와 규모, 장만한 솜씨도 조금씩 달라 제물품평회와 같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문중이 단합한다. 

■ 사례 (5) 진주 류씨 진산군파 
진주 류씨 선대 묘역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무원마을에 있다. 중시조인 10세 진산군 류인비의 단소로부터 22세 황해병사공 류탄연의 묘소에 이르기까지 모두 20기의 단묘에 4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진주 류씨 대종회는 묘역 내에 사당(명인각)을 짓고 신주를 조성하여 모두 20독(&#27357;)에 44위의 신위를 안치하고 이 사당에서 합동으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수는 사당 안 중앙에 큰 상 하나에 합동으로 차리고 메와 갱 술잔만 각 신위별로 따로 올린다. 헌관은 각 신위별로 분정하여 초헌 &#8228; 아헌 &#8228; 종헌 시에 20독에 20명의 헌관이 함께 술잔을 올린다. 제수를 합설하므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20위의 신위에 헌관이 동시에 헌작하므로 시간이 절약되며 헌관을 계파별로 다수인으로 분정하여 후손들의 참여도와 유대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전통예법에는 없는 행례방법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시범사례로 인식되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사례 (6) 오리 이원익 종가 
형식적인 제사 의례를 혁신적으로 폐지하고 조상의 업적을 현창하는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숭모정신을 이어가는 종가도 있다. 오리 이원익 종가의 경우, 제사는 1년에 한번 영당에서 지내는 현조 이원익의 생신제만 있을 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4대 조상에 대한 기제사도 이미 오래 전에 철폐하였고 설날이나 추석 등의 명절에 차례도 일체 지내지 않는다. 생신제 이외에는 한식날 선대 묘소에 성묘와 아울러 간단한 추모의 예가 있을 뿐이다. 그 대신 선조의 청백정신과 선비문화를 계승하기 위하여 사재를 들여 유물 전시를 위한 박물관을 건립하고,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전시와 교육활동을 통하여 선조의 업적을 빛냄과 아울러 전통문화의 전승과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통 종가 중에서는 아마 가장 선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4) 차례 
차례는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 올리는 약식 제사이다. 『가례』를 비롯한 예서에는 차례라는 것이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사당에서 행하는 참례와 민속 명절에 지내는 절사나 천신의례를 차례 또는 차사라고 한다. 사당이 있는 종가에서 정월 초하루와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올리는 약식제사를 참례라 하고, 한식, 단오, 유두, 칠석, 추석, 중구 등의 속절에 시절음식과 새로 나온 과일이나 생선 등을 올리는 약식의 제사를 천신례라고 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간략한 의례인 보름의 사당 참배에서는 술잔을 올리지 않고 찻잔만을 올리는데, ‘차를 올리는 예’라 하여 ‘차례’라는 말이 유래된 것으로 본다. 
오늘날은 사당이 있는 종가에서도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참례를 하고, 절사나 천신으로 올리는 차례도 설날과 추석 때에만 지내는 것으로 줄어들었다. 그 외에 특별한 명절의례로 퇴계 종가에서는 추석 대신에 유두 천신제를 지내고, 초려 이유태 종가에서는 별도로 동지 차례를 지내고 있다. 
차례는 약식 제사이기 때문에 제수도 기제사에 비하여 간소하게 차리고, 행례 절차도 무축단헌으로 약식으로 지낸다. 즉 술잔을 한잔만 올리고 독축절차도 생략된다. 차례의 제수는 계절에 따라 특별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설날에는 밥 대신에 떡국을 올리고 추석에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만든 떡을 올린다. 유두에는 햇밀로 만든 국수를 올리고, 동지에는 팥죽을 특식으로 올린다. 
차례를 지내는 시각은 명절 아침 일찍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나, 불천위가 있는 종가에서는 대개 낮 12시경에 지낸다. 지손들이 각자 소종가나 당내친끼리 먼저 차례를 올리고 난 다음 맨 나중에 대종가에 모여 불천위에 대한 차례를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차례는 사당에 모시고 있는 모든 조상에게 합동으로 지내기 때문에 신주를 출주하지 않고 사당에서 지낸다. 불천위를 비롯하여 4대친의 신주 앞에 세대별로 각각 제상을 합설로 차린다. 의례절차는 신주를 개독한 후, 강신→참신→헌작→사신의 순으로 지낸다. 신주를 출주하지 않고 사당에서 지낼 때는 기제 때와 달리 ‘선강후참’의 순으로 진행한다. 


3. 전통제례의 특징 및 변화추이 

가. 상장례 및 제례문화의 변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영육분리의 관념에 따라 상제례의 의례가 진행된다. 장례를 치르면 육신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영혼은 신주에 의지하여 다시 집으로 반혼(返魂)하여 궤연(&#20960;筵) 즉 상청에 모신다. 3년간 살아있을 때와 같이 상식을 드리고 소상과 대상을 치른다. 3년상이 끝나면 사당에 부묘(&#31060;廟)하여 4대에 걸쳐 역시 살아있는 것과 같이 문안드리고 기제와 명절에 제사를 드린다. 사후 약 100여 년간을 조상과 자손이 함께 지낸다. 4대를 지나 친진(親盡)이 되면 신주를 묘소에 묻고 1년에 한번 묘소에서 세일사를 지낸다. 이와 같이 죽음은 곧바로 생자와의 단절이 아니라 생의 연장 과정으로 인식하고 사자와 생자가 교유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신이 거주하는 공간도 상청에서 사당으로 다시 묘소로 차츰 멀어져 가고, 의례에 있어서도 복식과 음식, 행례의 빈도나 절차 등이 줄어들고 간소화되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전통적인 예식 의례가 서양문화의 편의성에 편승하여 완전하게 재편되어 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사례(四禮) 중 혼례문화는 거의 완전히 서구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상장례에 있어서도 장례의 유형과 절차, 상기(喪期)에 있어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례 방법은 유교식, 불교식, 기독교식이 공존하며 상기는 종래의 3년상은 물론 100일 탈상도 이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고, 불교식의 49재, 기독교의 당일 탈상이 혼재한다. 유교의례에 따르는 사람들도 삼우제로서 상기를 마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나. 봉사대수 
기제사는 몇 대 조상까지 지내는가 하는 문제는 조선시대 이래로 관심사가 되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4대봉사를 당연시하여 왔지만 그것이 만고불변의 예법은 아니었고 시대와 예서에 따라 그 예를 달리 하였다. 
중국에서는 고전 『예기』에서부터 천자는 7묘, 제후는 5묘, 대부는 3묘, 사 1묘로 정하여 신분과 지위에 따라 예의 차등을 두었는데, 가례에서 신분의 구별 없이 4대 봉사로 평준화된 것은 대체로『주자가례』가 보급된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말 공양왕 2년(1390) 정몽주의 건의에 의하여 마련된 제례 규정은 대부(4품) 이상은 3대, 6품 이상은 2대, 7품 이하 서인은 부모만을 제사하도록 하였고,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도 문무관 6품 이상은 3대를 제사하고, 7품 이하는 2대를 제사하며, 서인은 단지 고비(부모) 1대만을 제사하도록 차등을 두어 규정하였다. 
조선중기 이후 『주자가례』가 사대부 계급을 중심으로 보급되고 4대 봉사가 정착되어 왔지만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4대 봉사가 보편화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된 이후의 일이다. 이후 1세기가 지나는 동안 급격한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겪어오면서도 4대 봉사가 오래도록 유지되어 온 것은 봉사 대수의 차등이 반상제도의 신분에 바탕을 두고 있었던 사실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1969년에 제정된 가례의례 준칙에서 4대 봉사를 2대 봉사로 권장하였는데도 당시 많은 국민들이 이에 반발하여 따르지 않았던 것도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과거 신분에 대한 잠재의식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이후 사회체제가 급격히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서구화, 도시화가 급진전되어 향촌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만연되면서 신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어 4대 봉사 문제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조사대상 종가는 아직도 거의 대부분 4대 봉사를 하고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이미 3대봉사, 2대봉사, 부모만 제사지내는 집, 심지어는 종교적인 이유로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친족의 범위도 전통적으로는 같은 고조부하의 직계자손을 범위로 하기 때문에 8촌 이내가 되며 이것이 제사를 함께 지내는 최소의 단위가 되어 왔으나 가족제도가 핵가족화 되고 출산률이 저조하게 됨에 따라 자연히 친족의 범위도 점차 축소되어 가고 있다. 

다. 제사방식의 변화 
봉사대수 뿐만 아니라 제사의 방식에도 차츰 다양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첫째, 기제사의 경우, 각 조상의 기일에 다 지내지 않고 날을 정하여 기제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조상을 합동으로 지내는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4대 봉사의 경우 1년에 최소한 8번 이상 지내는 기제사를 1년에 한번으로 갈음하는 방법이다. 마치 국가 전례인 종묘대제 때에 태조 이하 역대 모든 열성조에게 한꺼번에 대향을 올리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가례 예서에서 4대 조상을 4계절에 함께 제사지내던 사시제의 방식을 원용하되 횟수는 1년에 한번으로 그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고위와 비위의 제사를 각각 지내지 않고 합설로 한번만 지내는 방법이다. 즉 고위의 기일에 비위와 함께 지내고 비위의 기일에는 지내지 않음으로써 제사 횟수를 반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그밖에 아예 기제사를 모두 폐하고 설날과 추석 명절에 차례만 지내거나 차례도 생략하고 묘소에서 성묘만 하는 등의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둘째, 묘제의 경우에는 더 다양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묘제는 몇 대까지 지내는가 하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세대가 내려갈수록 모든 조상의 묘소에 개별적으로 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묘소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제수를 장만하고 운반할 인력도 부족하여 앞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재사나 정침에서 지방을 모시고 합동으로 지내는 방법이 점차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라. 여성의 제사 참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제사에 참례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예서에서는 제사 준비 및 행례과정에서 여성도 남자들과 똑같이 참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예기』에 “제사는 부부가 함께 올린다.〔夫婦共祭〕”고 명시되어 있고, 『주자가례』 및 『사례편람』등 가례서에도 헌작, 진찬, 유식 등 의례절차에서 모두 주인과 주부가 함께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인이 초헌을 하고 나면 주부가 아헌을 하는 것은 물론, 진찬 때에 어육과 미면식, 그리고 메와 갱을 올릴 때에도 주인과 주부가 나란히 번갈아 올린다. 유식례에서도 주인이 첨작을 하면 주부가 삽시정저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제사 참례도 완전히 남녀평등으로 되어 있다. 
제사는 후손이 선조에 대한 추모행사이며 특히 핵가족화 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친족이 한데 모여 유대 관계를 결속시키는 기회가 되므로 남녀가 함께 제사를 준비하고 참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제사 준비 때문에 명절을 꺼리는 현상은 일만하고 제사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제사의 의미와 역할 분담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면 제사준비를 노동으로 인식하고 꺼리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마. 제사 일시, 제복 및 제수 
제사는 제사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날짜와 시각이 있다. 기제사는 반드시 기일에 지내야 하며 제사 시간은 자정 이후 첫 새벽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종가에서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지만 멀리서 오는 제관들을 위하여 초저녁으로 시간을 조정하여 행하기도 한다. 특히 불천위의 묘제(향사)는 주말 또는 공휴일로 정하여 보다 더 많은 문중 성원들이 모일 수 있게 하고 있다. 
제사 때에 입는 제복은 영남 지방의 경우 노장들은 아직도 도포나 유건 등 예복을 개인용으로 마련하여 착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남아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대부분 종중에서 공용으로 준비해두고 제향 당일 집사로 분정되는 사람들만 착용하는 것으로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천위 기제사의 제수는 종래에는 유사가 제물을 구입하여 종가 또는 종중에서 일가 친척들이 협력하여 마련하였으나, 지금은 이농현상으로 제수 준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묘제의 경우에는 종래에는 묘지기가 재사에 거주하면서 위토를 경작하여 제수를 준비해 주었는데, 지금은 재사들이 거의 다 빈집으로 비어있는 실정이다. 일손이 모자랄 때에는 외부 인력을 사서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제사음식 전문용역업체에 주문 의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제사까지 등장하고 있으며 명절에 여행지의 호텔이자 콘도에서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따라서 맞춤제수가 인기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 종손의 지위와 역할 
종가의 종자 계승은 적장자 상속의 원칙으로 계승되어 왔다. 조선 전기에는 윤회봉사, 형제 상속의 관습도 있었으나 점차 적장자, 적장손으로 계승이 보편화되고 조선 후기에는 명분을 중시하여 적자가 없을 경우에는 양자를 들여 종가를 이어 나가는 입후제도가 정착되어 왔다. 장자에게는 제사 몫의 재산이 별도로 상속되었고 ‘봉제사 접빈객’을 임무만을 수행하면서 종법제도의 중심에 서서 문중을 대표하며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봉건적 가족제도 질서가 와해되어 가면서 종손의 권위와 특권은 상실되고 개인적으로는 종통 계승의 의무감과 현실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의 종손들도 대부분 공직이나 기타 직장 생활에 종사하다가 종가를 이어나가기 위하여 낙향하여 개인적인 사회 생활을 희생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차세대 종손은 더욱 더 그러한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입후 문제도 가부장제도의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핵가족화, 호주상속제의 폐지, 남녀평등문제, 출산률의 저조 등으로 입후 제도는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하며 현실적으로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아들이 없는 경우 딸이 부모 제사를 모시기도 하고, 장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기피하는 경우에 중자가 지내기도 하는 사례가 이미 많이 성행하고 있다 
조사대상 종가에서도 종손이 일찍 타계하여 조카를 후사로 입후하여 명맥은 유지하고 있으나 입후된 조카가 아직 어린 학생의 신분이므로 그의 생부가 각종 제사를 주관하며 종손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명분은 유지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의미는 이미 상실되었고 어린 종손이 성장하여 명실 공히 종통을 이어나갈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4. 전통제례문화의 전승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지난 6년간 종가의 제례에 대한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문헌과의 비교 검토를 통하여 현재 실시되고 있는 각 종가 제례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번 현지 조사를 통하여 비록 종가가 모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영상과 글로 기록하여 집대성하였다는 데 조사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종가의 제례도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발표자의 제언과 그리고 향후의 추가적인 연구 대상을 언급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가. 전통제례의 문화재 지정 건의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던 전통제례 문화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완전히 소멸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무형의 문화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번 조사기록의 결과를 토대로 하여 각 종가의 전통제례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건의한다. 
제사 의례와 관련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국가 전례와 관련하여 종묘와 사직, 성균관 문묘를 비롯하여 지방의 향교나 서원 등이 사적 또는 유형문화재로 국보, 보물 및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무형문화재로는 종묘대제(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사직대제(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및 석전대제(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 세 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유교 및 종가문화와 관련된 것으로는 주로 유형문화재로서 가옥(종택 &#8228; 고택 &#8228; 생가 등), 기구, 의복 등이 있고, 제례문화와 관련하여 사당, 재사 및 묘소와 신도비 등이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