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종가제례의 연구 현황과 과제 종가제례의 연구 현황과 과제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8-12-28 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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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종가제례의 연구 현황과 과제  종가제례의 연구 현황과 과제
 
 이름 :  김인규   Read: 38    Date: 2008.08.29  

 
종가제례의 연구 현황과 과제 

김 인 규(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1. 머리말 

우리 사회에서 유교는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비록 이전보다 그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우리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으며, 특히 제례와 상례 분야에서는 아직도 그 영향이 두드러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제례나 상례 분야에 대한 연구가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특히 ‘종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례에 대한 연구’로만 한정한다면 연구 성과는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종가 제례 관련 연구 성과를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토 대상을 종가 제례와 관련된 연구로만 한정짓지는 않았다. 기존 연구 가운데 종가라는 주체가 행하는 제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실행 주체가 다르거나 모호한 연구 성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연구는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가령 특정한 섬 지역에서 행하는 제례나 건축학적인 연구, 음식분야나 법제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는 제외하였다. 아울러 제례와 관련된 재산상속 문제 등도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이 밖에 각종 보고서에 유교 제례가 수록되어 있는 것도 살펴보지 못하였다. 
종가 제례와 관련된 논저는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한국사연구휘보를 검색하여 찾았으며 그 밖에 나름대로 수집한 목록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목록을 기초로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시기별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발표자가 나름대로 느낀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언급해 보았다. 
단기간에 많은 연구 성과를 정리하다 보니 연구자가 애써 쓴 논문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한 점과 소개 과정에서 발표자가 연구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왜곡한 점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발표자는 이 분야의 비전공자이므로 더욱 그러할 것으로 생각된다.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2. 연구 동향과 내용 

우리나라 유교 제례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부터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1980년대 들어와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뒤에 좀더 소개하겠지만 그러한 계기는 1986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와 1999년에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유교 제례를 주제로 집중적인 연구를 소개한 것 때문이다. 그러나 종가 제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00년 이후에 종가제례의 사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시대별로 제례 관련 연구 성과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1980년대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면, 이 시기에는 주로 인류학 분야에서 유교 제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유교 제례가 우리나라의 가족과 혈연관계 및 혈연에 대한 관념을 밝혀주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여 이 분야를 연구하였으며 아울러 유교 제례를 무속이나 다른 나라의 제례와 비교하는 연구도 수행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연구자는 로저 L. 자넬리와 임돈희, 최길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로저 L. 자넬리와 임돈희는『조상의례와 한국사회』(2000)에서 1973~74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의 한 마을을 장기간 조사하여 그 지역의 가족, 제례, 상례, 무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종합하여 다른 동아시아의 조상의례와 비교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조상의례가 한국사회에서 산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나 기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실제적으로 어떻게 행해지고 있으며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 연구는 근대화로 급속하게 변해가는 시점에서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조상 의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성과이다. 이후 임돈희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후속적인 연구로 「한국 조상숭배의 미래상」(1986)과 「한국 조상의 두 얼굴:조상덕과 조상탓」(1988)를 발표하였다. 「한국 조상숭배의 미래상」에서는 현지 조사한 마을에서의 시제, 명절제사, 기제사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변화 원인과 향후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그 결과 시제는 문중의 위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명절제사와 기제사는 문중 내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제사와 관련된 상속에서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여 중국의 경우 균등상속이므로 제사 책임도 똑같으나 일본은 후계자 단독 상속이므로 단독으로 책임을 진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자가 많은 재산을 가져서 제사의 책임이 크나 다른 자손들이 제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명절 제사는 형제간의 결속의 의미로 변할 것이며, 기제사는 친부모와 처갓집 부모만 지낼 것이며 최소의 비용으로 시제는 지내나 대표적인 조상인 성씨 정체성의 상징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크게 지낼 것으로 전망하였다. 한 특정 지역의 사례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시간차를 두고 연구함으로써 앞으로의 변화 양상까지 추적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써서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한국 조상의 두 얼굴 : 조상덕과 조상탓」에서는 유교의 기제사와 무속의 조상거리를 비교하였는데, 남성의 유교 문화와 여성의 무속 문화라는 기존 연구의 관점을 가지고 비슷한 성격이 있는 기제사와 조상거리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조상에 대한 양면성이 나타나는데 유교의례에서는 ‘조상덕’을 무속의례에서는 ‘조상탓’이 잘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최길성은「한국 조상숭배의 연구」(1983)에서 기존의 제례 연구가 종교·신앙적인 측면과 가족제도나 정치 지배조직의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연구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이 두 가지 요소 모두가 조상 숭배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 연구 성과를 정리하면서 유교 의례의 보급으로 유교 제례가 혈연성이 강한 신앙 의례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그는「조상숭배의 한·일 비교」(1986)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여 연구한 일본인들의 조상 숭배에 대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조상 숭배는 유교 이전의 민간 신앙적 차원에서 본다면 좀더 유사성이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우리 학계에서는 일본의 연구 성과를 배척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비교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최길성은「한국 조상숭배 연구의 회고와 전망」(1988)에서 한국에서 조상 숭배에 관한 연구가 미미하다고 지적하면서, 기존의 연구를 바탕으로 연구자들 간의 조상숭배의 개념 차이, 예서에 의거한 제사 연구의 성과를 설명하였다. 그는 유교 제례에 대한 충분한 사례 연구와 유교 제례의 수용 문제 그리고 제사 상속 등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인류학자인 김광억도「조상숭배와 사회조직의 원리 : 한국과 중국의 비교」(1986)에서 한국과 중국의 조상숭배를 비교하여 한국에서 제사는 종손(장남)에게 물려준 지위를 확인하고 공유하려는 의미가 있으나, 중국의 제사는 조상과 자손 사이에 경제적인 결속을 위하여 조상을 숭배한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성태규의 경우에는「시제연구를 위한 한 시론」(1989)에서 학봉 김성일과 우복 정경세 집안에서 행하는 시제(時祭)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하였다. 그는 두 집안의 시제 절차와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시제의 경제적 기반 형태와 형성 과정, 유사의 사회적 성격, 시제에서 나타나는 친족 내의 위계질서의 부여라는 관점에서 종가의 시제 연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1980년대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유교 제례가 연구되었으나, 종가를 중심으로 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 나라의 제례나 무속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유교 제례의 성격과 의미를 분석한 연구가 많았다. 그러나 종가 제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그다지 축적되지 못하였으므로 제례 절차나 제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종가 제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가 더욱 진전된 시기는 1990년대 말이나 되어서였다.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간한 1999년도『민속연구』9집에 특집으로 유교제례에 대하여 논문이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다. 이 학술지에서 강희정은 「불천위 제사집단의 인식변화와 제일의 양력화」(1999년)라는 글에서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 마을의 조덕린(한양 조씨) 불천위 제사의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특히 조덕린의 불천위 제사일이 양력으로 변화된 것을 중심으로 의례 행위의 주제 집단과 의례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이 마을에서는 일찍부터 양력을 기준으로 불천위 제사를 지낸 원인이 일찍부터 개화되었으며 외지로 나간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조덕린 제사가 단설에서 합설로 변화된 이면에는 주실 사람들이 형식은 변화하되 조상에 대한 예의 의미는 유지한다는 ‘합리적’ 원칙을 가지고 변화시켰으며, 이것이 제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연구는 한 지역의 불천위 제사 사례를 중심으로 제사의 변화 원인과 그 의미를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나, 아쉬운 점은 불천위 제사에 참석자 등 일제시대 이후부터의 구체적인 변화 양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종가 제례에 대한 사례 연구는 이기태도 하였는데, 그는 「현대사회의 제례-대구광역시 한 동성촌락의 사례」(1999)에서 대구시의 옻골 마을의 제례 일정의 변화, 제수의 간소화, 일상복의 의례복화, 봉사댓수의 축소 등 제례가 바뀌었는데, 이것은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임을 지적하였다. 한편 김영순은 「불천위 제사의 집사분정에 나타나는 종법체계와 연령의식」(1999)에서 안동지역의 종가에서 지내는 불천위 제사 절차를 통하여 종법체계와 서열의식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한국적 의례문화의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각 종가의 홀기를 분석하여 제례과정을 상세히 분석한 장점이 있으나 그 의미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제례 과정에서의 집사 역할 및 여성이 제사하지 못하는 원인을 지적하여 사례 연구의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현의 경우 「제사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연구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1999)에서 기존의 유교 제례와 관련된 연구사를 정리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점으로는 유교식 제사를 너무 정치적 이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이에 대한 대안으로 프랑스의 죽음에 대한 심성사 연구를 소개하면서 향후에는 실증적인 사례를 더욱 연구하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연구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남식은 「제사문법의 가정법적 준거와 그 문맥에서 본 영적 존재의 두 범주」(1999)에서 제사의 신위(神位)와 상가(喪家)의 영위(靈位)를 나누어서 두 신격이 갖는 성격과 의미를 분석하고 이 의미가 우리의 제사문법이 만들어낸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2000년대에는 비로소 유교 제례에 대한 현지 조사 및 사례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현지 조사한 결과를 『한국의 제사』(2003)라는 보고서로 간행한 것이 그러한 하나의 예이다. 비록 종가의 제사만을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17곳의 종가를 조사하여 기존 문헌자료와 아울러 제사의 절차와 의미를 사진과 곁들여 소개함으로써 제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제사의 절자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그 내용이 간략하여 앞으로 조사된 사례와 내용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도 2002년부터 주로 불천위 제례를 행하고 있는 종가를 중심으로 영상기록과 아울러 제례 과정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현황을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표-1>에서 보듯이 총 27곳의 종가 제례를 조사하여 제례에 대한 절차와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일반인들도 종가의 제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www.nricp.go.kr)에서 동영상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종가 제사뿐만 아니라 종가의 내력과 제사 음식까지 정리하여 이 분야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기록’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현 시점의 제사 모습을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제사 참석자들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그들의 제사에 대한 관념, 이전 제사의 모습이나 변화되는 과정을 좀더 심도 있게 추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한편 유교 제례에 대하여 역사학계에서는 이전부터 주로 성리학의 정착 과정을 설명하면서 언급되어 왔는데, 이러한 연구 가운데 하나로 이숙인은「『주자가례』와 조선 중기의 제례문화」(2006)에서 조선시대 주자가례가 갖는 사상사적 의미를 설명하였다. 조선 중기의 제례 문화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명분과 원칙을 강조했지만 구체적 관계의 인정(人情)을 폐기시키지 않는 혼재한 형태를 보였는데, 이 시기에는 주자가례의 명분론과 국속을 강조하는 상황론이 대립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명분론이 우세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학 분야에서 조선시대에 구체적인 제사 모습을 보여주는 연구는 드문데, 16세기 때 이문건이 쓴 『묵재일기(&#40665;齋日記)』를 자료로 당시 사대부의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밝히고 있는 연구가 있다. 정긍식의「묵재일기에 나타난 가제사의 실태」(1999)와 김경숙 「16세기 사대부 집안의 제사설행과 그 성격」(2000)이 그것이다. 김경숙의 경우 이문건이 기제사를 중시하며 기제사를 포함하여 1년 간 10여 회 제사를 지냈는데, 이 시기에는 유교적 질서가 완전히 정착되지 못하여 3대 봉사를 하였고 시조(始祖)에 대한 제사는 안봉사라는 절에서 영당제를 지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김문택도 「16~17세기 안동 진성이씨가 묘제 양상과 유교적 이념」(2005)에서 이정회가 남긴 『송간일기(松澗日記)』를 근거로 진성이씨가의 제사 횟수, 제사 시기 등을 언급하고 당시 묘제를 가장 중요시했음을 밝히고 있다. 반면에 이정회의 스승인 이황은 사당에서 지내는 시제를 중요시하였는데 이처럼 차이가 있는 것은 전통적인 관습과 선조에 대한 인정(人情)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때의 개인 일기 등 당시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를 이용한다면, 앞으로 당시 제사의 구체적인 실상을 좀더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표-1 종가 조사 현황 > 
연도발 행 도 서조 사 대 상조 사 내 용2002 종가의 제례와 음식 1 
종가의 제례와 음식 2 
종가의 제례와 음식 2 
종가의 제례와 음식 3 
종가의 제례와 음식 3 학봉 김성일 종가 
한훤당 김굉필 종가 
서계 박세당 종가 
양민공 손소 종가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 -설,불천위제,추석,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불천위제2003 종가의 제례와 음식 4 
종가의 제례와 음식 5 
종가의 제례와 음식 5 
종가의 제례와 음식 6 
종가의 제례와 음식 6 
종가의 제례와 음식 9 점필재 김종직 종가 
고산 윤선도 종가 
갈암 이현일 종가 
초려 이유태 종가 
사계 김장생 종가 
탄옹 권시 종가 -설,불천위제,추석,묘제 
-불천위제 
-길제 
-설, 동지 
-불천위제 
-묘제2004 종가의 제례와 음식 7 
종가의 제례와 음식 8 
종가의 제례와 음식 8 
종가의 제례와 음식 9 
종가의 제례와 음식 10 퇴계 이황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 
충재 권벌 종가 
일두 정여창 종가 
보백당 김계행 종가 -설,유두,불천위제,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묘제2005 종가의 제례와 음식 11 
종가의 제례와 음식 10 
종가의 제례와 음식 14 
종가의 제례와 음식 14 응와 이원조 종가 
죽전 박광전 종가 
농수 김효로 종가 
우복 정경세 종가 -설,추석,불천위제,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묘제 
-불천위제, 묘제2006 종가의 제례와 음식 15 
종가의 제례와 음식 12 
종가의 제례와 음식 16 
종가의 제례와 음식 16 방촌 황희 종가 
노당 심덕부 종가 
오리 이원익 종가 
진주류씨 종중 -불천위제, 향사 
-불천위제 
-생신제 
-묘제2007 종가의 제례와 음식 12 
종가의 제례와 음식 13 
종가의 제례와 음식 13 안효공파 심온 종가 
명재 윤증 종가 
남이흥 장군 종가 -불천위제, 단오 
-묘제 
-불천위제, 추석계16권27개 종가50건 
* 굵게 표시된 책은 2008년 10월에 발간 예정임 

김시덕의 경우「용인지역의 제사」(2000)에서 용인 지역의 한양 조씨 양경공파의 제사를 비롯하여 8개 집안의 기제사를 중심으로 제사 실천과정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전저(奠箸/수저 드림)의 관행, 상차림의 특징, 초헌을 하면서 계반 삽시하는 관행, 헌관이 재배할 때 참사자 전원이 재배하는 관행 등을 분석하여 지역적 특징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출된 결과를 지역적 특징이라고 하기에는 열거하는 사례의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도 다른 사례가 나올 수 있어 연구자의 의견대로 과거 유교학파에 나타난 제사 특징을 찾기 위해서는 해당 학파 집안의 많은 사례를 더욱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는 「가가례로 보는 경기지역 제사의 특성」(2000)에서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않고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제사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어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사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는 「디지털 시대 제사방식의 지속과 변화」(2001)에서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도 제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라 제사가 변하는 것은 ‘지속하기 위한 변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순도 「기제사가 당내 행사에서 가족 행사로 간다」(2001)에서 제사의 변화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기제사가 고례에는 없었으나 중국 송나라 때 생긴 것이며 4대 봉사의 원인은 8촌의 당내가 공동생활을 하였으며 4대가 동거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일제시대와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변화되었고 이후 산업화가 본격화됨으로써 더욱 변화하게 되어 기제사에서 가족이 당내의 행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향촌의 유교의례와 문화』(2003)에서 종가 제사의 현장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기제사, 불천위 제사의 절차와 내용을 정리하고 이러한 제사가 종법체계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유교 제례에 나타난 종교적 관념을 살펴보는 연구도 있다. 석대권은 「제례를 통해 본 종교적 관념의 변화」(2003)에서 조상숭배의례가 양반계층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표상이 되기도 했으며 혈연유대 강화 역할도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조상’중심의 종교적 의례행위보다 가족 친족의 유대를 중시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영동의 경우 「전통적 기제사를 통해 본 조상관」(2002)에서 안동지역에서 조사된 기제사 자료를 가지고 조상관을 분석하였는데, 먼저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이 있는 망자(亡者)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조상도 산 사람과 같다는 신인동성관(神人同性觀)이 지배적인 가운데 죽은 조상을 산 사람보다 더 공경하는 차원에서 생사구별의식에 근거한 신인이성관(神人異性觀)이 일정하게 개입되어 있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논지는「종가의 사당을 통해본 조상관」(2004)에서도 밝히고 있다. 
한편 최순권의 경우 「신주고」(2001)에서 신주의 역사적 변천, 제작방법, 신주의 외형적 구조 등과 같이 신주의 외적 형태를 설명하였으며,「조선후기 기제 행례의 차이에 관한 일고찰」(2007)에서는 각종 예서 및 현장 조사를 기초로 하여 행례 과정에서의 유교 학파에 따른 차이점을 정리하였다. 이 연구는 여러 연구자가 이미 지적하였던 유교 학파에 따른 제사의 차이점과 그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논의 과정에서 해당 사례를 좀더 구체적으로 풍부하게 언급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앞으로 종가의 제례에 풍부한 현지 조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믿어진다. 
김미영은 최근 이 분야에 가장 활발한 연구자 가운데 하나로 「조상제사를 둘러싼 이론과 실제」(2006)에서 안동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천위 제사의 제물과 진설의 역사적 유래 및 상징적 의미를 예서에 나타난 고례와 현장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예서에는 제물 진설의 구체적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家家禮’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 가가례가 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주된 요소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제사가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하여 제물이 웅장해졌음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신주를 통해본 유교의 영혼관」(2006)에서는 신주가 종가를 지탱하고 상징하는 귀중한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하였으며 신주의 재료, 신주 형태의 의미를 문헌 및 현장 자료를 이용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사에서 중요시되고 있으나 연구가 미진한 ‘신주’를 문헌과 현장에서 조사한 내용을 적절히 결합하여 풀어내고 있다. 
김미영은 「조상제례의 변화와 정체성 지속에 관한 연구」(2007)에서 안동지역 불천위 44곳의 종가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한 결과, 제례의 변화 원인이 후손들이 간편함을 추구하는 의식구조에서 초래된 것이나 불천위 제사에서는 해당 문중의 상징적 존재이므로 변화가 적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종가 제례에서 변화된 것은 제례 시간이 제례자의 감소로 여러 사람이 모인 초저녁으로 바뀌었으며 신주도 사당에 모셔둔 채 별도의 지방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고위(考位)와 비위(&#22947;位)를 합사하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음식도 익힌 음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조상제례의 일상성과 비일상성」(2008)에서 조상제례의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공존 배경, 실제적 기능, 상징적 의미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제례의 절차, 용어, 제물에는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혼재해 있으며 상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3. 향후의 연구 과제 

지금까지 유교 제례와 관련된 연구를 1970년대부터 10년을 단위로 하여 개별 연구 성과를 설명하였다. 10년 단위로 연구 성과를 설명하였으나 특별히 시기별로 두드러진 연구의 차이를 나타낸 것은 아니라 편의상 분류하였다. 그런데 이미 지적하였듯이 최근 2000년대에 들어와서 유교 제례에 관련된 연구는 다른 시기에 비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속히 증가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한국학 관련 연구가 이 시기에 들어와서 많은 연구자들의 배출과 아울러 양적으로 팽창되었던 전반적인 사회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교 제례와 관련된 연구는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발표자는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의 활성화를 주장하면서 기존 연구 성과를 정리하면서 느꼈던 점을 기초로 앞으로 좀더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점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유교 제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좀더 수집되었으면 한다. 사례는 이론이나 해석의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연구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비록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7곳의 종가 제례를 상세히 조사했지만,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는 많은 종가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불천위 제사만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천위 제사가 어느 곳에서 어느 정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안동 지역 이외에는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유교 제례에 대한 현황 파악과 아울러 조사할 가치가 있는 종가 제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함으로써 심도 있는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례 조사는 종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과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만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차원에서 유교 제사의 윤관이 잡힐 수 있다. 또한 그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설문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제사에 대한 관념과 절차 그리고 향후 변화 방향에 대하여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후대에 우리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 
한편 종가 제례에 대한 사례를 조사할 때에는 제례의 참석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불천위 제사에는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데 이들의 연령과 어떤 지역에서 어떠한 이유로 불천위 제사에 참석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후일 동일한 제사를 조사했을 때 참석자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바로 사회의 변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종가를 중심으로 제사 계승의 문제도 좀더 다루어져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현재 종가의 제례 전승에 일정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제례를 달리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일제시대를 경험하였던 세대가 생존해 있을 동안에 이전 제사의 모습을 꼼꼼히 조사하여야 한다. 현재는 이전의 제사 모습에 대하여 단편적인 인터뷰 자료만이 제시되고 있으나, 종가 제사도 사회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었음이 틀림없으므로 각 종가마다의 제사의 변화된 모습을 모으게 되면 일정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것은 바로 앞으로 제사 모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종가 제례와 관련된 문헌과 연계된 연구도 더욱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조선시대 제례의 구체적인 모습은 일기 등을 비롯하여 각종 기록에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조선시대 제례의 구체적인 사례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은 바로 현재의 제례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종가에 보존되어 있는 진설도를 포함한 오래된 홀기와 현재의 제례를 비교 검토하는 것도 제례 절차나 음식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연구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 끝으로 전공자도 아닌 발표자가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일부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대하여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며 오늘 발표를 통하여 앞으로 종가 제례 관련 연구가 보다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종가 제례 관련 논저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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