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때 왕이 기우제 지낸 제단 터 용산 미군기지 안에 있다"
서울 용산구 용산중고교 옆 미군 기지 '캠프 코이너' 내에 조선시대 왕이 기우제 등을 지내던 제단인 '남단'(南壇)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곳 기지는 평택으로 옮겨갈 예정이지만 같은 자리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신축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영우(67) 한림대 특임교수는 12일 "1937년 작성된 '경성부사'(京城府史:서울 역사)와 18세기 제작된 '광여도(廣輿圖)'등 옛 지도를 보면 남단의 위치는 현재의 캠프 코이너 내부가 된다"고 밝혔다.
경성부사엔 "용산중학교 동쪽에서부터 뻗은 작은 언덕 줄기를 따라 내려와, 현재 야포 병영 가운데 돌출한 부위의 남쪽 끝에는 옛부터 남단이 설치돼 있었다…그래서 이 언덕길을 남단고개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남단의 규모는 폭 7m51㎝(직사각형), 높이 86㎝ 가량이다.
경성부사의 기록을 처음 확인한 학자는 히라키 마코토(平木實ㆍ67)
전 일본 덴리(天理)대 조선학과 교수. 그는 덴리대의 학술지'조선학보'에 2000년 발표한 논문 '조선후기 환구단 제사에 대하여'에서 남단의 위치와 기능 등을 규명했다. 히라키 교수와 평소 친분이 있던 한 교수는 이 논문을 읽고 옛 지도에서 남단의 위치를 세밀히 고증했다.
남단은 태조 때 만들어진 이후 조선말기까지 종묘ㆍ사직 제사 다음으로 중요한 제사를 올린 곳이다. 당초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제천(하늘에 제사를 지냄)행사를 위해 만들었지만 중국을 의식해 제천은 삼갔다. 대신 자연의 변화(風雲雷雨)와 산천신, 성황신에 대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세조와 광해군 때는 조선도 천자국이란 자부심을 높이려는 뜻으로 제천을 거행했다.
남단의 원래 명칭은 '환구단(환丘壇)'. 태종 때 남단으로 이름을 바꿨고, 대한제국기때인 1897년 현재의 조선호텔 자리에 신축하며 다시 '환구단'혹은'원구단'으로 개칭했다. 남단의 존재는 19세기 말 이래 청나라ㆍ일본ㆍ미국의 군대가 잇따라 이 일대에 주둔하면서 잊혀졌다.
한 교수는 "우선 현장 조사를 거쳐 남단의 정확한 위치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