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년의 눈물’…모습 드러낸 개성의 고려 왕릉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3-09 19: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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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눈물’…모습 드러낸 개성의 고려 왕릉
석축 파묻히고 난간석 나뒹굴고
농지개간·남벌로 민묘처럼 초라
개성시 판문군에 있는 고려 5대 임금 경종(재위 975~981)의 영릉. ‘여걸’ 천추태후는 원래 그의 다른 왕비였다. 뒷산의 숲이 모두 베어진데다, 석물들도 거의 사라져 황량한 분위기다. =사진설명
북한 개성 부근 고려 왕릉들의 모습이 분단 60여년 만에 확인됐다. 8일 사진으로 공개된 고려 왕릉들은 관리소홀 등으로 무척 황량한 모습이지만, 10~14세기 우리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성의 남북 언저리인 옛 경기도 개풍군 일대에 있는 유적들로, 북한 주민들이 사는 협동농장 근처이거나 휴전선에 가까운 군사 지역이어서 외부 연구자들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없었다.
장경희 한서대 교수가 처음 공개한 고려 임금의 왕릉 사진들 가운데 무덤 임자가 밝혀진 것은 모두 12기다. 2대 혜종에서 시작해 정종(3대), 경종(5대), 성종(6대), 현종(8대), 문종(11대),
순종(12대), 예종(16대), 신종(20대), 원종(24대), 충목왕(29대), 충정왕(30대)이다. 태조 왕건의 비 신성왕후, 경종의 비 헌정왕후, 신원 미상의 왕족 무덤들인 동구릉·서구릉, 칠릉떼 등도 소개됐다. 북한 고려 왕릉 가운데 현재 모습이 알려진 곳은 첫 임금 태조의 현릉과 31대 임금인 공민왕과 비 노국대장공주의 쌍릉인 현·정릉뿐이다.
고려 왕릉은 대체로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계승해 산기슭에 3~4층 단을 쌓고 맨 윗단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두고, 아래로 석등, 문·무인석, 제향각 등을 배치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인 도굴 피해를 봤고, 한국전쟁 때도 막대한 석물들이 파괴·분실돼 대다수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북한 쪽은 이후 주요 왕릉들을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했으나, 야산 곳곳을 남벌하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능역이 크게 축소됐다. 혜종·성종릉의 경우 병풍석과 석축이 파묻혔고, 경종릉은 장명등·석상·망주석이 사라졌다. 신종릉은 잘못된 복원으로 깨진 난간석이 굴러다니고, 민묘처럼 왜소한 몰골로 변했다.
장 교수는 “서울 근교 조선 왕릉들이 석물·수목·건축물까지 보존된 것과 비교된다”며 “현지 산에는 나무가 없어 큰비가 오면 무덤 흙이 계속 쓸려내려 갈 수밖에 없는 만큼 종합 방재대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 교수는 공개한 사진과 실측도면, 답사 결과 등을 묶은 책자 <고려왕릉>(예맥)을 발간해 학계에 보고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장경희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