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고종 황제어새 “가짜 가능성 크다”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4-05 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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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고종 황제어새 “가짜 가능성 크다” 

1차 평가 참여했던 평가위원 주장… 국립고궁박물관 태도도 석연치 않아 

"사라졌던 고종 황제 국새 찾았다.” 

3월 17일부터 1주일여간 주요 언론을 장식한 기사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이 한 재미교포로부터 구입한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진짜 국새였다는 발표였다. 현존하는 대한제국의 유일한 국새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일강제합방문서에서 사용한 국새인 ‘대한국새(大韓國璽)’의 현존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보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이 국새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감정에 관한 당대 최고전문가의 지적이다. 

“용어 선택이나 발표 절차가 석연찮은 문제가 있다. 만약 ‘진품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발표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틀림없는 진품이며, 또 국보 지정까지 성급히 운운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진짜를 가짜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슨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연구자료로 소장가치는 있다” 

농산 정충락(66)씨는  
이번 ‘황제어새’ 1차 평가에 참여했다. 유명 서예평론가이기도 한 정씨는 전각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정씨는 ‘안품(가짜)일 가능성이 있다’와 ‘안품이다’ 둘 중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안품이다는 쪽으로 기운다’고 말했다. 정씨는 근거가 되었던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유리원판 사진과 인면(도장이 찍힌 면) 바닥의 새김이 최소 5군데 이상 차이가 있으며, 손을 탄 옆면에 비해 글씨가 거의 닳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황제어새’가 안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소견서에 ‘왜정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적었는데, 대한제국기가 아니라 왜정시대라고 한다면 알아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진품이다 안품이다 단언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돌려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소견서에 다만 “연구자료로서 소장가치는 있다고 썼다”고 밝혔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암 정병례(62)씨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그 역시 전각 최고 권위자다. 정씨는 “인문(印文)도 차이가 뚜렷했고, 그때 시대의 것이 맞는지, 황제가 정말 썼는지 그것도 알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국새라고 볼 수 없다’고 소견서에 분명히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과반수 가까이 이건 잘 모르겠다고 점잖게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두 평가위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1차 평가에 참여한 매듭 전문가도 도장의 매듭을 보고 “진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손잡이 부분의 거북이 등의 육각형 문양이 유리원판 사진과 조금씩 다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ㅇ교수 역시 모인 자리에서 의구심을 드러냈다는 데 두 위원은 의견이 일치했다. ㅇ교수는 “지금은 입장을 표명하기 곤란하다”며 ‘노 코멘트’ 입장을 밝혔다. 

‘의구심’가진 평가위원 많아 

1차 평가에 참여한 인사들 중 일부가 현장에서 진짜가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을 밝힌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성인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역시 1차 평가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 성 연구원은 “당시 유물로 볼 때 위조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어떤 분은 더 봐야 한다고 말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니 박물관 측에서 소견서를 주면 그것을 보고 참고하겠다고 했다”라며 “나중에 다른 평가위원의 전화를 받고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해볼까 했는데, 괜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 같고 그래서 걸려다 말았다”고 덧붙였다. 

물론 1차 때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견해도 있다. 최공호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고고학)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임에 틀림없다”고 소견서를 적어냈다. 적어도 성연구원과 최교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최교수는 “실제 도장과 인주를 묻혀 찍은 ‘인영’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1차 평가에서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의견이 2차 평가 이후 뒤집혔다. 어떻게 된 일일까. 2차 평가 과정에 참여했던 손환일 경기대 연구교수는 “처음 평가 때는 관련 기록도 얼마 안 되고 해서 신중한 분위기였다면 검증 과정에서 헐버트 기념사업회 문서에 찍힌 인문이 발견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라며 “이밖에도 내함 통에 붙어 있는 융이 어보를 만들 때 쓴 견(명주실)과 같은 종류라는 것이 밝혀지는 등 근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문제 제기를 한 분들은 1차 평가를 한 분들이니 못 봤을 수 있지만 나는 ‘파이널 인펙터’로 20쪽가량의 내부 문건을 봤기 때문에 전 과정을 안다”라고 덧붙였다. 

만약, 이게 가짜라면 누가, 어떤 목적에서 가짜를 만들었을까. 정충락씨는 “사실 그런 도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실물을 볼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 중 하나일 것”이라며 “나쁜 목적은 아니고, 고종 황제 사후에 뜻을 규합해 어떤 일을 도모할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발표를 총괄한 국립고궁박물관의 태도도 석연치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 발표를 총괄한 정계옥 유물과학과 과장은 “유물 감정 과정에서 항상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1~2명의 사람이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지가 취재한 결과, 가짜라고 단언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가 과정에서 의구심을 밝혔던 평가위원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진품 결정은 누가, 어떻게 내린 것일까. 정 과장은 “자신은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유물과 관련해서 비전문가”라고 누차 강조하면서도 “선생님들은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목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다. 
진품임을 확신한다”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정 과장은 진품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관례 상 공개할 수 없지만 (선생님들도) 소견서에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실제 ‘하’ 등급을 매긴 사람도 10명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의 주장은 다르다. 평가위원들은 “상·중·하 등급은 진품과 가품의 기준이 아니라 유물의 보존 상태 등을 표시하는 항목이었다”라고 밝혔다. 

고궁박물관 측의 의혹은 이뿐 아니다. 소견서라는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남긴 평가위원들이 그후 박물관 측으로부터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찬반을 떠난 대다수 평가위원의 주장이다. 평가위원들이 자신이 낸 소견서와 배치되는 결론이 내려진 것에 대해 박물관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발견 발표 몰라 

박물관 측은 비파괴 검사 등을 통해 재질이나 제작 연도를 파악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 결과나 소견서의 주장들은 충분히 검토했고, 관련 근거자료는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 과장은 이와 관련해 손 교수가 봤다고 언급한 ‘내부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번 황제어새 발견 발표는 문화재청 관계자도 모르게 진행돼 의혹을 사고 있다. 문화재청 동산유물과 관계자는 “유물의 구입이나 감정 절차 등은 해당 박물관에 위임한다”라며 “솔직히 우리도 관련 보도자료가 나와서야 황제어새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 누군가의 성급한 과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상당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소견서나 감정결정 경위, 그리고 특히 구입 과정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당장 공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고궁박물관 측 정 과장은 “우리가 소견서의 내용을 공개할 의무는 없다. 기자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 같다. 이제부터 이야기를 공문으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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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라는 표현 써도 되나 

“대한이나 조선이라는 국호라면 몰라도 황제라고 적혀 있는데 나라 국(國)자 국새라고 할 수 있는가.” 
정충락씨의 주장이다. 전각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국새라는 표현을 함부러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충락씨는 ‘황제인(皇帝印)’ 또는 ‘왕인(王印)’이라면 또 몰라도 이번에 발견된 ‘황제어새’를 국새로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병례씨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정병례씨는 “소견서에도 적었지만 가장 먼저 시정해야 하는 것이 국새가 발견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각 전문가들이 이번 발표에 대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지난해 ‘조선시대 인장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인근 연구원은 ‘황제어새’를 국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 연구원에 따르면, 국새라고 할 때 조건은 인문 안에 국명이나 황제 그리고 새(璽)자가 들어가야 한다. 두 번째 근거는 대외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성 연구원에 따르면, 이 시기 국새로 이견이 없는 것은 현존 여부가 불투명한 ‘대한국새’다. 현재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원수지보’ 등은 내치, 군수통치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국새로 볼 수 없다. 

반면 ‘황제어새’는 대외 외교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조건을 충족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국새를 받아왔던 조선시대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국새와 관련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라며 “대한제국 시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몇몇 사료에서 보이듯 일제가 국새를 강탈한 상황에서 고종 황제가 비밀리에 별도로 국새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황제어새를 실제 고종황제가 국새로 인식하고 있었을지의 문제가 남는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엄밀하게 협의의 의미에서 국새라면 대한국새밖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사인이 아니라 국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장이라는 의미에서 광의의 의미에서 황제지새 역시 국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내치를 위해 만든 것도 국새다. 그는 “당시 고종 황제가 국한문을 섞어 북경에 있는 독일공사에 보낸 편지가 있는데 원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국새들을 뺏겼다’는 독일어 표현에서 광의의 국새 개념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학술적으로 아직 국새나 어새 혹은 어보의 분류 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의 기준으로 당시의 특수한 상황을 무시하고 단정지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