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세계 유산 반구대와 울산 공무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5-22 22:18:39

?>
세계 유산 반구대와 울산 공무 

반구대 암각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을 놓고 몇 해 동안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문화재청은 사연 댐 수위를 해발 52m로 낮춰 암각화가 침수되는 일을 최소화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울산시는 원수의 공급 부족이 우려되기 때문에 암각화 위쪽과 아래쪽에 제방을 설치해 물길을 바꾸는 '터널형 유로 변경안'을 내놓았다. 

수년 동안 문화재청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울산시는 최근 임시 보존 방안을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암각화 앞쪽 20~30m 지점에 지하 물막이 벽을 쌓고 그 물막이 벽에서 폭 50~60m 구간을 해발 52m 높이로 매립해 침수를 막은 뒤 건너편 야산을 절개해 새로운 물길을 내고 그 위에는 목조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사연 댐의 수위를 낮출 때 원수 확보의 어려움이 커지기 때문에 울산시가 문화재청의 방안을 받아들이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원수도 확보하고 문화재도 보존하자는 것이 시의 '일거양득'식 복안이다. 

그러나 주변 자연환경을 변형해서 문화재를 지키겠다는 방안이 과연 문화를 생각하는 울산시 당국의 방안인지 묻고 싶다. 둑을 쌓고 산을 절개해 새로운 수로를 낸다는 발상은 마치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를 죽이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암각화는 급한 대로 물에서는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주변의 자연 환경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재라는 것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주변 환경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암각화 주변의 자연 환경은 암각화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문화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암각화에 매료되는 것은 그것의 예술성 못지않게 역사성에 감동하는 것이다. 

반구대 주변의 자연 환경은 그것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단서며 역사적 상상의 징검다리와 같다. 주변 환경이 훼손된 문화재는 역사의 신비감이 상실되고 역사적 추리도, 역사적 상상도 불가능해진다. 그 문화재와의 역사적 소통이 단절되고, 문화재의 생명력조차 앗아가버린다. 

반구대의 주변 환경은 그 자체가 자연 문화적 가치를 지닌 비경이다. 뛰어난 산세와 흘러가는 물이 이루는 풍광은 천혜의 절경이다. 반구대를 돌아 암각화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산세와 물의 조화는 자연의 기막힌 결합이며 그것이 바로 암각화를 낳은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암각화가 소프트웨어라면 그 주변 환경은 하드웨어와 같은 것이다. 

울산시의 선택은 거위를 죽여서라도 황금알은 얻겠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며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단이라고 우길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뇌를 거듭한 바른 결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울산시의 방안은 귀중한 문화재를 어떻게든 보존해야겠다는 최선의 답안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이고 기계적이며, 행정적인 답안으로 보인다. 과거 30~40년 전 공업도시 울산을 건설하는 과정에서나 했을 것 같은 행정당국의 발상이다. '당국의 문화에 대한 인식과 정책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반구대 침수피해를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문화재청의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볼 것을 요구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그 주변 환경은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세계적인 문화자산이기 때문이다. 

이충호 국제펜클럽 울산회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