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문화 연구원 (2006 ~ 2023)
제목 : 세계유산 ‘종묘’의 제도·절차 총정리
이름 : 관리자
등록일 : 2009-06-16 22: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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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종묘’의 제도·절차 총정리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나라의 제향(제사)을 받들던 장소인 종묘(宗廟)는 사직(社稷)과 함께 전통시대 국가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종묘와 사직에 대한 제사는 조선시대 제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대사(大祀)에 속했으며 국가는 종묘와 관련된 의례를 제일 중시했다. 

사적 제125호이자 지난 1995년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의 제도와 의식절차, 관련 행사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인 ‘종묘의궤(宗廟儀軌)’(전 2권·김영사·사진)가 완역, 출간됐다. 종묘의 의식절차 및 관련 행사를 기록한 ‘종묘제례(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감안하면 역사기록으로서 ‘종묘의궤’ 번역이 갖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이 기획하고 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을 지낸 선종순씨가 번역을 맡은 책은 현존하는 조선 제16대 왕 인조 이후 모두 14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종묘의궤’ 중 숙종 대인 1706년 편찬된 것을 텍스트로 하고 있다. 이는 1706년 편찬된 ‘종묘의궤’가 종묘 제도와 의식 절차 등을 역사적으로 정리한 첫 번째 의궤이자 이후 편찬된 ‘종묘의궤’나 ‘종묘의궤속록’들의 기본 텍스트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종묘의궤’처럼 기관별로 전례(典禮) 지침을 수록한 서지형(署志形) 의궤들은 개별적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관련 의궤 전체를 모아 비교한 뒤 기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후대 편찬된 의궤에 추가된 부분까지 함께 번역, 출간하는 게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706년 ‘종묘의궤’가 편찬된 시점은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의 예송(禮訟) 논쟁과 세 차례의 환국(換局)을 거치면서 치열한 대립을 하다가 1694년 갑술환국을 계기로 서인이 승리하고 난 뒤 얼마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 시기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해 모든 예제(禮制)를 정비하고자 노력했던 서인은 무엇보다 국가 예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종묘 제도를 바로잡음으로써 왕실의 정통성과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세우려고 했다. 신덕왕후(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와 단종의 복위, 정종의 묘호 추존을 비롯한 역대 왕과 왕비의 휘호(徽號)의 정비 등도 여기서 비롯됐는데, ‘종묘의궤’의 편찬은 이같은 일련의 작업을 집대성해 문자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설(제1책)을 비롯해 모두 4책으로 구성된 ‘종묘의궤’는 2권으로 번역, 출간됐으며 1권에는 62장의 관련사진과 종묘제례 재현의 중요 고증자료의 하나인 ‘대한제국동가도(大韓帝國動駕圖)’ 등의 화보가 컬러 도판으로 수록돼 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