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9세기 서구문화의 육체 이미지
이름 : 최형국
등록일 : 2004-04-07 21:39:53
서양미술사, 육체, 권력, 이미지의 역사
19세기 서구문화의 육체 이미지
-최형국-
19세기 유럽의 역사는 구 봉건체제와의 기나긴 투쟁의 장으로 봉건적 공민의 삶에서 민주적 시민의 삶으로 옮겨가는 시기였으며, 발전하는 시대사상과 더불어 인간과 자연을 보다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시기였다. 이것은 이전의 절대적 이성에 대한 근본적 탐색과 회의를 가져왔고 이성의 척도는 이제 칸트적인 선험적 보편이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추론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사유의 발전은 생물학, 광학분야에서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간을 보는 시각까지도 유물론적이고 인류학적인 방향으로 크게 변해갔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로부터 니체의 '힘에의 의2)',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이르는 사고의 전환들은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했다. 즉 19세기는 신고전주의적 근대의 세계상으로부터 근대를 보다 실증주의적 시각으로 구축해 내고자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상적 발달은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생명'의 비밀은 불합리의 근간이요 이성의 저편에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가능하게 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관조는 곧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더 이상 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런 개인의 의지들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의 의지임을 알게 하였다.
1) 1819년 라이프치히에서 간행. 쇼펜하우어가 이 저서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우리를 에워싸는 시간과 공간을 그 형식으로 하는 이 세계는 진정한 실재(物自體)가 아니라 단순한 주관적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세계의 배후에서 세계를 성립시키는 실재(實在)는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이다. 이 고통으로 가득찬 생(生)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첫째 모든 욕망을 떠난 예술적 관상(觀想)을 통해서이다. 더욱 철저한 방법으로는 금욕적인 ‘의지부정(意志否定)’에 의해 개개의 자아를 향한 속박을 떠남으로서 우주의 원리에 합치한다는 인도 현자(賢者)의 생활태도라는 것이다.
2)니체의 형이상학에 있어서의 두개의 근본적 용어는 ①힘에의 의지와 ②동일한 것의 영원 회귀이다. 이 양자는 존재자를 그의 존재에 있어서, 예로부터 형이상학을 지배하여 온 견해 에 따라서 규정한다. 힘에의 의지란 의지가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 힘을 얻기를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란, 의지가 힘을 얻음으로써 스스로를 극복하고서 다시 새로운 출발점 으로서의 의지 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존재자 전체의 본 질은 '권력에의 의지'이며 그것의 존재방식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이다.
19세기 초 근대 회화사에서 등장한 사실주의자들이 관심을 갖은 것은 바로 사회적 인간이었다. 즉, 인간의 사회적 존재를 넘어선 어떤 초월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는 미술이 사람의 사회적 표징, 즉 몸의 사회적 의미들을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의미는 인간이 걸친 의복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실주의자들에게 의복이란 몸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과 같아서, 의복은 곧 사회적 몸이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본래 몸이란 동물적 본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곧 몸의 사회성 자체가 동물적이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사회가 병들고 그에 따라 몸도 병들게 되면, 병든 몸을 은폐하는 것이 의복의 권위이다.
몸의 사회성에 대한 관심 고조는 몸의 사회적 형식에 따른 신체적 아름다움의 차이를 낳고, 성정 상징의 차이도 낳는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에 있어서 야비하고 천박한 것도 아름다운 것에 속할 수 있다고 믿게 하였다. 이러한 예술계의 몸에 대한 관심은 곧 대중문화에서도 나타나게 되었고 자본주의의 대표격인 오락산업과 향락산업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몸의 사회성은 곧 '보는 것' '보여지는 것'으로 가능하였기에 세계는 '보기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게 된 것을 인지하였다.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발달은 몸을 오락산업의 최대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이러한 몸의 산업화는 몸의 특성을 그 각각의 감성적 특성에서 기호화하므로 몸의 실체성이 아닌 몸의 이미지를 의미화 할 뿐이다.
여기에서 사진기의 발달은 몸의 기호화를 촉진하는 더 없는 자극제였고, 인상주의는 보이는 모든 것을 '인상의 기호'로 전환시켜 보았다. 이는 눈에 보이는 데로 표현하는 객관주의를 지향하였기에 시각의 주관성을 전폭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인상주의 미술가들에게 개별적 신체의 다름은 이제 눈앞에서 부유하는 감각의 차이로만 인식되었으며 이는 색과 형태가 구성하는 자기들만의 세계, 회화적 자율성의 세계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러한 관점 아래 쇠라의 후기인상주의에 와서 보다 명료하게 산업화된 세계의 이미지를 점묘법의 과학화된 기호로 표현함으로써 사진의 세계와는 다른 순수 기호세계의 분위기 연출 및 순간적 시각의 욕구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