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국화와 칼을 반쯤 읽어보고.
이름 : 이기현
등록일 : 2003-08-13 19:35:20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제 2차 세계대전중에 씌어진 책이다.
일본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저자가 오히려 일본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정연한 논리로 일본을 분석하였다고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이원복의 만화책인 '현대문명진단'에서 소개된 것으로 처음 알았다.
특별히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인의 경우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먼나라이기도 하고 적대적 감정과 우호적인 감정을 동시에 갖을 수 밖에 없는
나라이다. 일본을 말하는 순간 상당히 성가시고 껄끄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1940년대의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명분 내지는 감정이 혼재되어 나 자신도 일본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난감한 명제들을... 일본에 해묵은 감정이 없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비교적 간단 명료하게 정리를 해 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책을 읽어 내려 가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것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는 것인데, 미국인의 시각에서 일본을 바라봤을때 이해가 가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써 내려간 만큼 나의 입장에서는 미국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인류학적 특성중에는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게 된 당시 미국의 급박한 상황... 즉, 적대국인 일본의
국민적 특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전략 수립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은 이미 사라졌다고 해도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책 이후로 60년이
지났으므로 일본 국민의 생활 패턴이나 사상도 조금은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6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 책의 객관성이랄까,
지금도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는 내용이라는 점은 놀라운 것이다.
또 이른바 저자가 '특별한 연구 기술'이라고 표현한 문화인류학이라는
도구는 매우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의 전반적인 취지나 뜻은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의뢰한 미국 정부는 왜 일본을 이해해야만 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답은 간단히 나온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일본 이해는 곧 지배와 통제를 위한 것이 아닐까?
거시적인 일본 국민의 행동의 동기와 패턴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면 별다른 저항없이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문화인류학을 '거시 심리학'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어쨋든 이 책에 나온 대로 미국은 천황에 대한 일본 국민의 '온'을 잘 이용하여
어제까지만 해도 최후의 1인까지 죽음을 각오할 것 같았던 호전적인 일본 군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유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직간접적인 성과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책에 나온 '온'과 '주'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분명 천황은
각 서방 대다수의 뜻에 따라 재판에 회부되여 도조 히데끼와 동일하게 사형에
처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순수하지만
이 책 주변의 상황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나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전혀 모르지만 아마도 인류학이 지배 계층으로 부터 악용된다면? 이라는 가정도
아주 배재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통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자유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곧 통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기분은 더욱 고약한 것이다.
사실 최근에 CRM이라 하여 장사치들이 고객을 관리한답시고 도입하는 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이 통제에 있음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물론 그 통제라는 것이
생각한대로 늘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가 획일화 될수록 이런 기분 나쁜
이론들이 힘을 얻어간다.
어느 글에선가 각 나라의 문화와 습성은 모두 다르지만 적어도 청소년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이것이 곧 통제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이키, 맥도날드 그리고 코카 콜라... 모두가 그것을 입고 먹고 즐긴다.
만약 1940년대의 코카 콜라 사장이 일본에 콜라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에 '국화와 칼'만큼 전략 수립에 효과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는 책을 또 발견할 수 있을까?
같은 논리적 도구를 이용하여 일본이 아닌 한국을, 적게는 나의 생각이나
행동 패턴을 파헤친 글을 내가 보았다면 시청앞 한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
결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