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도(刀)를 아십니까?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6-12-17 14:17:12

          
 도(刀)를 아십니까? 
[영화리뷰] <도시락>(刀時樂) 
 
2006-12-12 오후 5:52:37                  [ 안효원 기자]   

 
▲ 도심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무협액션활극 <도시락>. 영화는 액션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른 새벽 뒷산 약수터를 찾았을 때 칼을 든 두 사람이 피를 흘린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두 검사(劍士)의 몸사위, 귀를 찢는 듣한 칼의 굉음, 아마 낯선 광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할 지도 모른다. ‘서울독립영화제2006’ 장편경쟁부문에 출품된 여명준 감독의 <도시락>(刀時樂)에서 펼쳐지는 장면이다.

평범한 회사원 유영빈(이상홍 분)은 회사에서는 ‘무능력한 인간’으로 통하지만, 1 대 3 결투에서 승리할 만큼 유명한 고수이다. 그는 이른 아침 결투를 벌이고 피로 물든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해서 말끔한 샐러리맨으로 변신하는 이중생활을 반복한다. 그리고 영빈은 친구 진운광(여명준 분)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검사(劍士)를 꿈꾸는 고등학생 최본국(유재욱 분)을 만난다.

결투에서 아버지를 죽인 검사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잡은 본국, 영빈은 그를 보고 복수의 복수를 낳는 결투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수련에 정진하는 본국에게서 칼에 대한 열정을 본 영빈은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결투 금지령이 국회를 통과하고, 본국은 결투가 금지령이 시행되기 직전 스승 운광의 칼을 들고 결투에 나선다. 본국은 결투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만나게 되고, 영빈, 운광, 본국은 운명의 장난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도시락>의 배경은 대한민국 지금, 하지만 다른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1 대 1 결투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경찰과 공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도전자(갑)와 도전받은 자(을)가 되어 결투를 벌인다. 그들은 본명이 아닌 검명을 사용하며,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목숨을 건 결투는 치열한 자기 수련을 요구한다. 상대방의 칼에 언제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사들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상태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빈, 운광, 본국의 수련 장면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다. 결투에서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그 만큼 결투를 준비하는 그들의 수련 또한 진지하다. 몸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수련 장면은 인간의 몸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결투를 벌이는 이들의 몸동작 또한 인간의 몸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가뿐 숨을 몰아쉬는 검사들의 모습에 ‘나와 다른’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검사들의 몸동작 하나하나가 그들이 겪은 고된 수련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검사들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인디아나 존스의 총 앞에서 중동인들의 칼과 몸동작은 때론
우스꽝스럽게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치열한 수련과 몸 중심의 사고는 지금 우리의 삶을 낯설게 보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중동에 간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분) 앞에 거구의 검사가 등장한다. 그는 화려한 검사위를 펼치지만 인디아나 존스의 총 한방에 쓰러진다. 순간 그의 칼과 몸동작은 우스꽝스럽게 비쳐지고, 그의 고된 수련 과정은 무의미해 진다. 

이 장면은 총과 대포 등 근대화된 무기 앞에서 무력해진 칼과 전근대의 패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양상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를 제공하면서, 몸을 나약하게 만든다.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클릭 한번 하면 집까지 배달되는 홈쇼핑, 게임이나 미디어를 통한 대리만족 등은 한없이 몸을 왜소하게 한다.

<도시락>의 전개에서 또하나 중요한 모티브는 ‘복수’이다. 칼이 피를 부르고, 피는 복수를 부른다. 영빈은 오랜 기간 결투를 벌임으로써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의 가족들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증오의 칼날을 갈고 있다. 영빈은 어느덧 자신을 향한 복수심에 환멸을 느끼고, 본국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들려고 할 때, 복수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복수로 인한 증오심은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결투를 할 때 본명이 아닌 검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복수의 대상을 결투장 밖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대상이 없는 복수심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만들고, 익명성의 현대사회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된다.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적을 찾아다니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복수의 화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결투는 법적으로 금지되게 되고, 검사들은 현대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영빈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수퍼맨 안경을 쓰고 회사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칼에 대한 의지는 쉽게 꺽이지 않으며,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몸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거부되었을 때,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수련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결투법 금지가 시행되고 난 후 영빈의 사무실로 한 장의 결투장이 배달된다. 영빈은 옥상으로 올라가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자신을 가두던 거대한 도시, 고층 건물 밖으로 나온 영빈, 다시 칼을 들고 예전에 느끼던 흥분을 느끼지만, 동시에 복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고뇌하게 된다.

홀로 수련을 해온 영빈이 어떻게 최후의 결투를 벌일 것인지, 결투가 금지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궁금하다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