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시대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식을 재현하며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4-10-30 09:14:25
이 글은 2004년 10월 23,24,30,3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재현하는 숙종 인현왕후 가례의식 리플렛 원고 내용이다.
숙종ㆍ인현왕후의 가례의식을 재현하며
조선시대 국왕의 혼인을 비롯해 왕실혼례를 ‘가례(嘉禮)’라고 불렀다. 이번에 재현하는 가례는 1681년(숙종 7)에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와의 왕실혼례이다.
1680년(숙종 6)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가 승하하자, 왕실은 국모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계비 맞을 준비를 하였다. 1681년(숙종 7) 1월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후보명단인 처자단자를 거둬들였다. 3월에는 초간, 재간, 삼간의 절차인 삼간택을 거쳐 병조판서 민유중의 딸인 여흥민씨(당시 15세)를 왕비로 정하고, 별궁에 나가 왕실의 법도와 가례를 익히게 하였다. 이어 3차례의 가례 예행연습인 습의를 거친 후, 4월 13일부터 5월 13일까지 공식적인 가례를 행하였다.
가례는 납채(혼인을 구하는 의식), 납징(예물을 보내는 의식), 고기(기일을 알리는 의식), 책비(왕비를 책봉하는 의식), 친영(왕비를 나가 맞이하는 의식), 동뢰연(술잔을 나누는 의식)의 차례로 6례(六禮)를 거행하였다. 가례를 마친 후에는 새 왕비가 왕대비(명성왕후, 현종의 비)와 대왕대비(장열왕후, 인조의 비)께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 백관의 하례를 받는 진하의례를 하였다. 이로써 약 5개월에 걸친 가례의식이 모두 끝이 났다.
숙종ㆍ인현왕후의 가례의식에서 주목되는 절차는 친영이다. 국왕이 별궁에 나가 왕비를 맞아 궁궐로 돌아오는 이 제도는 숙종조에 비로소 확립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696년(숙종 21)에는 왕비가 종묘에 고하는 묘현례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이처럼 숙종조의 가례의식은『국조오례의』(1474) 이래 양란 이후 변화된 의식을 새롭게 정비한 것으로써, 후일『국조속오례의』(1751)에 명문화되어 조선후기 국가의례의 전범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 동안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이 많이 이루어져 왔으나, 국왕의 혼례인 가례의식을 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의 왕은 세자 때 혼인하기 때문에, 왕이 된 후에 혼인을 한 경우는 흔치 않다. 숙종ㆍ인현왕후의 가례를 재현하게 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가례는 창덕궁과 별궁(어의궁, 현재 종로구 효제동)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 행사는 현실 여건을 감안하여 경복궁 근정전에서 6례 가운데 책비, 친영, 동뢰연을 중심으로 재현하였다. 특히 철저한 학술적 고증을 토대로 의례절차는 물론이고 복식, 의물, 의장 등을 새로이 복원하고 제작하였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으나, 조선 중ㆍ후기 왕실의 혼례문화를 살피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2004년 10월 23일
책임고증 심승구
(문학박사, 한국체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