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1892년 고종 진찬의를 재현하며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5-12-08 18:44:02

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를 재현하며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마다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진찬(進饌)이란 원래 ‘왕실의 어른께 음식을 올린다’ 는 뜻으로, 조선후기 궁중의 대표적인 잔치의례로 발달하였다. 1892년(고종 29) 진찬의(進饌儀)는 제 26대 왕인 고종의 보령 41세와 등극 30주년을 경복궁에서 축하하는 궁중잔치였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한 고종은 국정을 주도하지 못하다가, 고종 10년에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 27년에 신정왕후(익종비)마저 사망하자 비로소 친정(親政)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고종 29년 진찬의는 즉위한 지 30년 만에 독자적인 왕권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진찬의는 원래 고종의 생일인 7월 25일에 거행해야 하지만, 농사철인 여름을 피해 가을로 연기하여 시행하였다. 진찬의는 외진찬 세 차례, 내진찬 여섯 차례 등 아홉 차례의 예행연습인 습의를 거친 뒤, 3일 동안 본 행사(외진찬ㆍ내진찬ㆍ야진찬)와 뒤풀이 행사(회작ㆍ야연) 등 다섯 가지 잔치로 진행되었다. 
첫째 날인 9월 24일 오전 6시경에는 고종을 주인공으로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는 근정전 외진찬이 이루어졌다. 둘째 날인 9월 25일 오전 8시경에는 고종과 왕비를 주인공으로한 왕실가족이 참석하는 내진찬이 강녕전에서, 같은 날 밤 10시경 야진찬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날인 9월 26일 오전 8시경에는 왕과 왕비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수고한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왕세자회작이 강녕전에서, 같은 날 밤 10시경에는 야연이 이루어졌다. 
고종은 진찬의식을 통해 군신화합을 이루어 외세침탈과 개화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기회로 삼으려 하였다. 잔치를 마친 후에는 죄수 석방, 노인 우대, 빈민구제, 세금감면 등을 통하여 백성들의 삶을 살핌으로써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자주적인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동안 조선시대 궁중의례를 재현한 행사가 많이 있었지만, 고종대 진찬의식이 재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892년 진찬의는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왕조례(王朝禮)로 시행한 마지막 궁중잔치로서, 1897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제례(皇帝禮)에 의해 거행한 궁중잔치와 비교가 된다는 점에서 재현의 의미가 크다. 
다만, 본 행사는 현실여건을 감안하여 진찬의 가운데 근정전에서 거행하는 외진찬을 중심으로 재현하였다. 철저한 학술적 고증을 토대로 의례절차는 물론이고 복식, 의물, 의장 등을 새로이 복원하고 제작하였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대표적인 왕실문화의 하나로 선 보일 이번 재현행사는 선조들의 궁중 연향 속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엿보게 해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2005년 10월 29일 

					                                   책임고증 심승구 (한국체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