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후각의 침묵을 깨뜨린 냄새의 반란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6-07-11 10:55:05


서평 : <<아로마-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학사 불교신문 406호 (2003년 1월 29일자)


                            '후각의 침묵' 을 깨뜨린 냄새의 반란 
                                                                                           심승구 (한국체육대 교양학부교수) 

몇 해전 조선후기에 편찬한 <<재물보>>(1798년, 일종의 백과사전)를 살필 기회가 있었다. 책자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高麗臭(고려취)' 라는 항목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글자 밑으로 '고린내' 라는 한글 표기와 함께 "세간에 이르기를 고려인이 목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북경인이 그 냄새를 '고려취' 라고 불렀다"는 주석을 볼 수 있었다. 
흔히 '고린내' 라면 발 냄새를 비롯해 향기롭지 못한 냄새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그 고린내의 어원이 고려인의 냄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로웠다. 계속된 주석에는 "하지만 발 냄새는 고려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나는 냄새" 라고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속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린내가 실제 고려인의 청결이나 냄새보다는, 혹 이민족을 경계하고 우월감을 조장하려는 중국인의 의도가 깔린 표현일 가능성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의 기록 속에서 냄새가 계급적·인종적 경계를 창출하고 강화하는 상징적 수단이 된 사례를 확인한 기회였다. 
그 후 냄새는 나의 역사 연구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망각의 저편에 사라졌던 냄새의 향연을 다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요즘 향의 대명사이자 향기치료로 널리 알려진 '아로마'를 표제로 단 <<아로마 - 냄새의 문화사>>(현실문화연구刊)라는 책 읽는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콘스탄스 클라센, 데이비드 하위즈, 앤소니 시노트 등 3명의 캐나다의 대학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서구와 비서구,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냄새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미시사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냄새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숨을 들이쉴 따름이다. 하지만 냄새에는 힘이 있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오늘날 냄새는 경시되어 왔다. 동물들과 달리 직립 이후 인간의 후각은 미약하고 퇴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후각이 미개발 됐기 때문에 고대 세계에 냄새의 중요성을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제한 저자는 근대 서구의 시각(視覺) 중심주의에 의해 가려진 전근대의 후각 세계를 발굴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우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세계에서는 성대한 왕실 행렬, 부유층의 연회 뿐 아니라 가정과 도시, 신의 전당 등 삶의 공간 모든 곳에 향료 사용이 풍요로웠다. 당시 향기는 악취를 제거하고 향기로운 삶을 위해 뿐 아니라 대중적 오락의 쾌감, 계급의 구분, 치유제, 승리의 기원, 사자(死者)의 신에게로 인도 등 실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특히 당시에는 향료보다 더 나은 것이 화관의 향기였다. 오늘날 월계관은 승리의 상징으로 간주되지만, 시각적 이미지일 뿐 후각적 함의는 없다. 하지만 당시 월계수로 만든 관은 더할 나위없는 승리의 냄새였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월계관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준다. 
중세에 들어 기독교 금욕주의로 향료 사용이 줄어들었지만, 십자군 원정으로 동양의 향신료와 방향제는 중세에서 계몽주의 시대까지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였음을 살피고 있다. 예컨대 17세기 베르사유궁전에서는 요일별로 매일 다른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에티켓에 어긋날 정도였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위생학의 발달로 인해 19세기에 이르러 향기는 종교와 의학의 영역에서 쫓겨나 감정과 관능의 영역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19세기와 20세기 초 과학자·심리학자들의 주장처럼, 후각에 대한 억압은 문명인이 지닌 결정적인 특성중의 하나라고 갈파한다. 아울러 당대 사상가들의 냄새에 대한 무시와 압박 태도는 곧 현대 서구의 후각관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서구의 향기 문화와 달리 비서구 문화권의 냄새를 다양한 예화와 풍습을 통해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벵골만의 안다만 제도에서는 철 따라 피는 꽃 향기로 시간의 흐름을 읽어낸다. 서구적 근대에서 실종된, 이른바 향기력(香氣曆)의 세계다. 이 외에도 비서구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시간, 공간에서 성(性)과 자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들을 구조화하고 분류하는데 냄새를 이용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또한 그들에게 냄새의 중요성은 구애, 영들과의 교류, 장례, 곡식재배, 치료 등 광범위한 활동과 목적을 위해 다양한 냄새의례를 발달시켰다. 한 예로 뉴기니의 우메다 부족 사냥꾼은 베개 밑에 허브 다발을 넣고 자는데, 그 향기가 사냥에 관한 꿈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다음날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향기가 촉발시킨 꿈을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후각의 차이에 대한 탐구는 서구에 의해 가려지고 은폐된 다문화적인 냄새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냄새가 지닌 인간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구에서의 냄새의 사회사를 이해하고 비서구 사회에서의 냄새의 문화적 발달을 인식한 저자들은 마지막으로 현대 서구의 후각적 특성을 권력과 사회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우선, 현대 서구 사회에서 냄새는 주변적이며 억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반면에 현대의 권력은 냄새가 없는 무취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서구 사회의 계급구분의 비밀은 바로 조지 오웰이 지적한 것처럼, \\'하층계급은 냄새가 난다\\'로 요약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 말은 권력을 쥐고 있는 그룹이 주변부가 끊임없이 중심을 향해 압박해 오는 냄새의 맹공에서 자신들의 무취성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을 뜻한다. 다시말하면 냄새가 곧 계급을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후각적 선호와 혐오는 대개 인간 심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냄새와 관련된 가치를 환기하고 조작하는 것은 사회적 계층구조를 발생시키고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다. 냄새가 사회계급 간의 경계 뿐 아니라 민족집단,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강화하는데 동원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나치가 유태인들이 악취를 풍긴다고 믿었던 사실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후각의 그 같은 사회적 코드는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작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개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친다고 경계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냄새가 새롭게 복원되면서 후각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행로를 살피고 있다. 후각에 대한 관리는 육체, 가정, 직장, 시장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동시에, 향기를 이용해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아로마테라피\\' 또는 \\'아로마콜로지\\'로 발전한다. 생활 방식의 향상 뿐 아니라 치료제로서, 심미적 차원만이 아닌 기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향수 마케터들은 상업적 담론을 통해 학자와 문화의 중재자들이 무시해 왔던 \\'사람들에게 냄새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점을 강조한다. 우리의 포스트모던 세계는 냄새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냄새가 억제되고 컴퓨터, TV가 무취의 세계이다. 이런 후각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냄새 그것은 포스트모던 감각과 일치한다. 다시말하면, 시각-파노라마적이고 분석적이며 직선적인-이 모더니티의 감각이라면, 후각-개인적, 직관적, 다향적인-은 포스트모더니티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 책은 서구와 비서구 문화권, 시대 변화에 따른 후각에 대한 믿음과 실재를 다양하고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구와 다채로운 비서구 사회에서 냄새가 수행했던 문화적 역할을 최초로 밝혀내면서, 무엇보다도 시각을 가장 이성적인 감각으로 인식한 반면에 후각을 가장 광기와 야만의 감각으로 간주한 서구 현대가 만들어낸 \\'후각의 침묵\\'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구 근대 이성에 의해 거세된 냄새가 반란을 일으켜 포스트모던 세계를 향해 신선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 감각을 배제하고 냄새에 초점을 맞춘 점이나 문화 속에서 냄새의 역할은 오직 다감각적인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후각에 대한 편견과 불균형을 바로잡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한다. 감감적 평형상태가 회복된 다음에 비로소 다른 감각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냄새의 감각을 서구 사회의 학문적·문화적 무의식으로부터 새로운 사회적·지적 담론의 열린 공간으로 이끌어 내는데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저자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