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한국 무예의 역사와 특성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4-02-04 00:04:14

2001. 8. <<군사>> 43집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의 맨손격투 무예는 약 2천년간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 주변의 여러나라들과의 접촉속에서 발전해 온 맨손무예는 각 시대마다 그 명칭을 달리하였다. 수박, 권법, 태껸, 슈벽, 태권도 등은 한국의 맨손무예들을 대표하는 칭호들이었다. 그 가운데 태껸은 한국 맨손무예의 역사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명칭이었다. 그러한 전통속에서, 해방후 체계화된 태권도는 50년이라는 가장 짧은 기간동안에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 내지 스포츠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한국의 맨손무예은 기본적으로 크게 3가지 요소를 지니면서 발달해 왔다. 즉 자연발생적인 무예연마로부터 출발하여 전투기술적 요소, 겨루기 중심의 경기 내지 놀이적 요소, 민족의 혼과 정신을 담고 있는 가치체계로의 요소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의 맨손무예가 보편적인 발달과정을 겪어 왔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맨손무예는 다음과 같은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한국의 맨손무예는 일찍부터 국가권력에 의해 주도되어 통제되어 왔다. 고려이후 1천년간 문치주의에 입각한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한 결과였다. 이점은 분권적인 무사문화를 유지해온 일본이나 광할한 지배체제를 가진 중국이 소림사처럼 별도의 무술양성기관을 갖고 있던 점과 달랐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국방력 내지 왕실의 안정을 위해서만 무예가 필요할 뿐 이를 벗어난 무예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무예 발전의 한계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맨손무예가 일찍부터 놀이화로 발전할 수 있었던 토양이 되기도 하였다.  
둘째, 한국의 맨손무예는 삼국이래로 민과 함께 발전해 왔다. 갈수록 병기가 발달해 가고 있는 추세속에서 맨손무예는 지배층보다는 일반 백성들의 무예단련의 수단이었다. 동시에 놀이화되어간 맨손무예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역사상 수많은 무예들이 존재했음에도 그것의 쇠락은 곧 민과의 결합 여부, 즉 토착화에 달려 있었다. 그 가운데 맨손무예는 일찍부터 민과 함께 일상의 삶속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나갔다. 바로 이점이 한국 맨손무예의 명맥을 유지해 온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셋째, 한국의 맨손무예는 다양한 맨손무예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한 맨손무예는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띠면서도 그 기술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였다. 이를 구분하면 크게 3가지 형태로 말할 수 있다. 발기술 보다 손기술을 위주로 사용한 권법(슈벽, 수박치기), 손기술보다 발기술을 위주로 하는 수박(변, 권박), 손기술을 사용하되 씨름적 요소가 가미된 시박(신교)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 가운데 원래의 태껸은 수박과 시박을 결합한 형태였다. 오늘날의 태껸이나 태권도는 바로 수박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넷째, 한국의 맨손무예는 일찍부터 무예와 놀이가 조화되면서 발달해 왔다. 원래 인간본능의 공격과 방어를 위한 자연발생적인 투기로 비롯된 맨손무예는 무기 발달에 따라 전투기술로서 기능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그 영향은 두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무예 능력을 판단하는 수단 내지 창검류의 보조수단으로 기능하였다. 둘째 무예적 기능을 상실하면서 유희화, 놀이화되었다. 이 두가지 측면은 시대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하는가 하면,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나갔다. 한국 역사상 18세기는 그것이 가장 조화롭게 발전된 시기였다. 이점에서 한국 맨손무예의 특성은 武와 戱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무희화라는 성격을 갖는다.  
넷째, 한국의 맨손무예는 이를 체계화하고 계승하려는 민족적인 움직임이 계속되어 왔다. 최초의 권법서인 <<권보>>(1604)로부터 1610년 <<무예제보번역속집>>가 편찬되었다가,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와 그의 아들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는 한국무예의 완성이자 한국 맨손무예사의 집대성인 것이다. 또한 <<육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재물보>>, <<해동죽지>> 등에서 권법을 비롯한 맨손무예가 체계화되거나 정리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밑바닥에는 맨손무예가 모든 무예의 기초라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이다. 동시에 당시의 맨손무예의 전통을 소중히 여겼던 바로 선조들의 기록정신과 소중한 문화의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한국 맨손무예의 역사는 2천년 동안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양식이자 의식이 담긴 상징체계이다. 오늘날 태권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10대문화 가운데 하나로 말해지는 점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맨손무예 문화는 크게 전쟁기술 단계, 놀이화 단계, 스포츠화 단계라는 문명화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다. 
다만, 현재 한국 무예의 현대적 발전 과정에서 특기할 사항은 무예가치의 편중화를 들 수 있다. 무예를 연마하되 심신수양을 통한 자아완성의 가치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적인 가치 만의 추구가 그것이다. 경기태권도 위주로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는 현 단계에서, 인간한계의 도전이라는 스포츠 정신과 심신수양을 통한 자아완성이라는 가치를 하나로 통합하여 발전시키는데 이제 모두 지혜를 모아야 때다. 그것이 곧 한국태권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요. 한국의 무예를 발전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