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과 활용방안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3-12-14 05:45:47
2002. 12. 전통문화의 가치인식과 활용방안 학술세미나(주최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재현과 활용 방안
- 궁중의례를 중심으로 -
심승구
(한국체육대 교양학부 교수)
1. 머리말
2.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변천과 추이
3.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 현황과 문제점
4.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발굴과 재현 방향
5. 맺음말
1. 머리말
다문화시대라고 하는 오늘날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세기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국권 상실과 일제 강점기, 전쟁과 분단, 그리고 빈곤의 시대를 잘 극복해 낸 스스로의 저력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고픔과 가난을 이겨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적지 않게 잃어버렸다. 사실 전통문화를 마치 근대화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자의반 타의반 소홀히 취급하거나 아예 서슴없이 버렸던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 결과 근대이후 지난 100여년간 우리는 전통문화의 힘과 가치를 되새길 틈도 없이, 엄청난 전통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궁중의례는 전통문화 가운데 가장 단절이 심한 부분에 속한다. 근대이후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봉건사회의 상징이던 국왕의 존엄은 부정되고, 외세의 침탈과 강점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지배층에 대한 불신은 왕실의 전통 내지 왕실문화를 단절시켰다. 더욱이 일제하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던 왕실문화는 철저히 일본에 의해 압살되거나 폐지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해방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국가의례 가운데 극히 일부가 복원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그 전체적인 규모나 윤곽은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글은 조선시대의 국가의례, 특히 왕실을 중심으로한 궁중의례를 통해 한국의 유교사회의 찬란하면서도 격조높은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조선시대의 국가의례는 왕조의 정치체제와 지배구조를 반영하는 중추적인 규범인 동시에 조선왕조가 추구했던 성리학적인 이상사회의 가치를 담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서는 조선시대의 국가의례와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지금 전통에 담겨있는 지혜와 정신을 통해 새로운 한국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시점에 와 있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장점을 스스로 발견하기보다는 남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남을 통해 우리 문화를 인정하고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발굴하여 계승․발전시키고 나아가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본고는 조선시대의 국가의례의 발굴과 재현을 통해 전통 궁중문화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한편, 장차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의 탐색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변천과 추이
조선왕조는 禮治를 바탕으로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한 국가였다. 예란 문명사회에서 준행되는 생활규범으로서 절제와 조화를 통해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는 인간의 사회를 근원적으로 규제하는 힘을 지니지만, 도덕적 교화를 표방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러한 예를 형식화, 전범화한 것이 의례이다. 의례는 역사적 산물인 만큼,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한국에서 유교가 국가의 정통적 이념으로 확립되고 유교의례가 정착된 것은 조선왕조에 이르러서였다.
유교의례는 개인과 가정을 규제하는 가례(家禮)와 국가와 왕실이 준행하는 국가의례(王朝禮)로 구분된다. 가례는 한 개인이 일생동안 거치는 관(冠), 혼(婚), 상(喪), 제(祭)의 사례(四禮)를 말하며, 국가의례는 길(吉), 흉(凶), 군(軍), 빈(賓), 가례(嘉禮) 등의 오례(五禮)를 말한다. 특히 국가의례로서 오례의 체제가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려사』의 예지(禮志)를 통해서였으나, 전형적인 국가의례로 정착되는 것은 조선왕조에 들어와서였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오례(五禮)」로부터 출발한 조선왕조의 국가의례는 성종 5년(1474)에 편찬된 『국조오례의』를 통해 정립되었다. 오례에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 등의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본국(本國) 및 이웃나라의 국상(國喪)이나 국장(國葬)에 관한 흉례(凶禮), 출정(出征) 및 반사(班師)에 관한 군례(軍禮), 국빈(國賓)을 맞이하고 보내는 빈례(賓禮), 즉위․책봉․국혼(國婚)․사연(賜宴)․노부(鹵簿) 등에 관한 가례(嘉禮) 등을 말한다. 오례의는 『주례(周禮)』의 춘관(春官) 대종백(大宗伯)에서 밝히듯이,ꡒ길례로써 나라의 귀신을 제사하고, 흉례로써 나라의 상사(喪事)를 슬퍼하고, 빈례로써 다른 나라들과 친하고, 군례로써 나라들을 화동(和同)하며, 가례로써 만백성과 친한다ꡓ라는 국가운영의 원칙이자 유교이념의 가치를 실천하는 규범이었다.
『국조오례의』가 편찬된 후 새로운 예제가 생겨나면서 국가의례는 계속 늘어갔다. 더구나 兩亂 이후에 오례의 중 개정되거나 폐지되어야 할 부분이 많아지자 영조 20년(1744년)에는『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였다. 또한 영조 27년(1751)에는 世孫의 章服 제정을 위해 길례와 가례 2편을 추가 보완하여 『國朝續五禮儀補』를 편찬하였다. 이어서 정조 12년(1788)에는 오례의 연혁과 그 이전까지 준수된 국가의례의 실행 사례를 모두 모아『春官通考』 등을 통해 국가의례를 전체적으로 재정비하였다. 여기서 『국조속오례의』나 『국조속오례의보』는『국조오례의』이후에 정비된 禮制만을 별도로 모아 정리한 책이며, 『춘관통고』는 그 이전까지 준수된 국가의례를 전체적으로 재정리한 책자였다.
그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출범하면서 고종이 황제에 오르자 황제국에 걸맞는 국가의례를 정비하게 되었다. 이때 편찬한 의례서가 바로『大韓禮典』(1897)으로서, 이때부터 조선의 국가의례는 황제의(皇帝儀)로 격상되어 거행하였다. 황제와 같은 호칭의 변경은 물론이고 원구단 제사와 같은 천자의 의례가 갖추었으며, 망궐례와 같이 중국에 대한 의례가 모두 폐지됨으로써 독립국가로서의 의례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순종이 즉위하게 됨에 따라 국가의례는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 준식민지 상태에 놓인 대한제국은 국가의례의 격을 이미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대한제국 황실의 위상은 ‘李王家’라 하여 일본 천황의 친족 수준으로 더 격하되었다. 일본의 황실봉작제를 기준으로 할 때 이왕가의 등급은 천황의 4세까지 적용되는 유복친 밖의 친족에 해당하였다. 이러한 처지는 제후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한 조선왕조보다도 더욱 떨어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가의례도 ‘이왕직아악부’에 의해 소수의 국가 祭禮 정도만 축소되어 유지될 뿐 침체 국면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예의 정점이었던 황실의 몰락은 조선 사회의 가장 크고 중요한 기틀의 붕괴를 의미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조선시대의 국가의례는 복원되지 못하였다. 다만 국가의례 가운데 문묘제례만이 겨우 재개되었으나, 그나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중단되었다. 국가의례의 복원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면서 문화재 보호차원의 외형적 결실을 맺기 시작하였다. 1961년 문화재관리국이 설치되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종묘의 정전, 영녕전, 제례악, 사직단, 선농단, 선잠단 등이 국보, 보물, 사적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그리고 1969년도부터 국가의례의 일부로서 종묘제례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의해 다시 봉행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종묘제례는 꾸준한 복원작업을 거쳐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그 외에 1978년 관왕묘제, 1979년 선농제, 1988년 사직제, 1993년 선잠제 등이 그 지역 사회와 관련 인사들에 의해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祭禮였으므로 여러 면에서 불완전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들어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역의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조선시대의 국가의례는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종래까지 민간인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복원되어 왔던 국가제례의 경우, 해당 지역의 관변 단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가 주도로 문화유산의 원형보존 및 체계적 정비 그리고 가치의 재인식이 이루어지는 한편, 우리 문화의 세계화라는 기치아래 발전시켜온 국가의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1995년에 종묘를 비롯하여 1997년에 창덕궁․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을 뿐 아니라, 2001년에는 종묘제례와 제례악이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수백 년간 내려온 조선왕조의 국가의례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이처럼 문화한국의 이미지가 제고되는 시대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궁중문화의 재현이 시도되기 시작하였다. 1995년부터 문화재관리국(1999년 문화재청 승격)이 궁중문화의 재현을 처음 시작한 이래, 1999년부터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재현사업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행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전까지 조선시대의 국가의례 중 민간차원에 주도된 제례 위주의 복원에서 가례, 빈례, 흉례 등의 국가의례가 새로이 조명되어 복원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 밖에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의 각 시도와 군에서도 문화관광 사업의 일환으로 국왕과 관련된 전통문화 행사를 개최하는가 하면, 서울의 각 구청에서는 앞다투어 각각 고유의 문화 행사를 통해 지역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추세이다.
3.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재현 현황과 문제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부터는 정부 주도로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복원과 재현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95년이래 최근까지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시행해 온 궁중문화의 재현행사 현황과, 2002년 한해동안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추진한 조선시대 왕실 관련 재현 행사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기간
행사명
장소
주최
수행업체
예산(천)
1995
5.27
수문장교대의식
왕세자생일축하연
궁중정재, 정악
경복궁근정전
문화재청
한국의장
42,420
1996
6.1
왕세자입학의, 행차
왕세자사부빈객상견의
왕세자관례의
경복궁근정전
문화재청
예문관
63,192
10.19
국조보감의
창경궁명전전
종묘 정전
문화재청
영음기획
46,500
1997
5.8
국조보감의
창경궁명전전
종묘 정전
문화재청
영음기획
44,580
10.18
세종대왕즉위의
경복궁근정전
문화재청
SBS프로
67,920
1998
2.25
경회루연못소척담수고유제
경복궁경회루
문화재청
예문관
27,000
9.23
홍례문상량식
경복궁흥례문
문화재청
예문관
110,000
1999
10.17
왕세자책봉의
경복궁근정전
문화재청
예문관
70,000
9.4-11.3
세종대왕즉위식
경복궁근정전
보호재단
서울예술
500,000
2000
10.7-8
양로연의
창경궁명정전
문화재청
MBC미디
216,000
10.14-21
중궁정지명부조하의
중궁정지회명부의
창경궁명정전
문화재청
한국의장
243,000
2001
9.22-10.5
조참의
창경궁명정전
한국문화재
보호재단
서울예술
400,000
10,20-21
정지왕세자백관조하의
창경궁명정전
문화재청
한국의장
230,000
10.26
경복궁흥례문낙성식
경보궁흥례문
문화재청
한국의장
68,000
2002
5.11-11.3
조선시대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경복궁흥례문광화문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
보호재단
700,000
6.15-16
수인국서폐의,연인국사의
창경궁명정전
문화재청
서울예술
240,000
9.4-11.3
국왕즉위식
창경궁명정전
한국문화재
보호재단
한국문화재
보호재단
400,000
10.5,10.13
중궁정지회명부의
창경궁명정전
문화재청
한국의장
222,000
표-1 <정부 주관 궁중문화 재현행사 현황> (1995-2002)
표-2 <2002년 지차제 주관 왕실 관련 주요 문화행사 현황>
기간
행사명
장소
주최
수행업체
예산(천)
2002
3.1-12.31
왕궁수문장교대의식
창덕궁,덕수궁
서울시
유니온
100,000
4.20
고종명성후가례
운현궁
서울시
한국문화재단
30,000
5.18
태조이성계사냥행사
살곶이다리
성동구청
이벤트축제
70,000
10.5
철종임금등극행렬
용홍-강화교
강화군청
스타라인
30,000
10.20
조선조 과거재현
창경궁
서울시
한국의장
222,000
10.27
사직대제
사직단
서울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100,000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지난 1995년부터 궁중문화 재현행사를 매년 한 두 차례씩 꾸준히 시행해 왔다. 정부기관인 문화재청과 그 산하의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도로 추진된 전통문화 재현행사는 주로 궁궐을 활용한 궁중문화를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서울이 600년 고도이자 문화도시였음을 생각하면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궁중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선보이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점에 착안한 것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도 마찬가지 였다.
그 동안 시행한 재현행사를 내용별로 살펴보면, 왕세자 관련 의식(생일축하연․입학․행차․사부빈객상견․책봉․조하), 국왕 관련 의식(즉위․가례, 행렬), 왕비 관련 의식(조하․회명부의), 조회 관련 의식(조참의), 사신접대 의식(인국서폐․인국사의), 궁궐호위 의식(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교대), 노인우대 의식(양로연), 관리선발(과거), 기타(상량, 낙성, 고유제, 사직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나타난다. 이처럼 궁중문화의 다양한 재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재현행사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행사 시행전의 문제로서 전통문화 행사 추진의 비 계획성과 행사 의도의 모호성이다. 1995년 정부 주도로 추진한 궁중문화의 첫 재현행사가 “수문장교대의식, 왕세자탄일축하연, 궁중정재 및 정악”으로 출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행사추진 의도 내지 목적이 불분명하다. 이후 추진된 행사의 주제도 역시 일정한 원칙이나 계획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 같은 문제는 궁중문화 재현행사의 주제에 대한 타당성 검토나 충분한 연구없이 그때그때 결정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정부 주도의 재현행사 가운데 2~3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충분한 고민없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현행사의 부실 내지 기형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궁중문화의 재현행사를 위한 고증연구총서가 『朝鮮時代 卽位儀禮와 朝賀儀禮儀의 硏究』(1996, 문화재관리국), 『朝鮮時代 養老宴儀禮와 御宴儀禮儀 硏究』(1997, 문화재관리국), 『朝鮮時代 宮城門 開閉와 守門將 交代儀式 硏究』(2002, 한국문화재보호재단, 近刊) 등 3권에 불과한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더구나 궁중문화 재현행사의 예산이 수천에서 수억까지 들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고증연구서의 부재는 그 동안 궁중문화의 재현이 얼마나 소모적이고도 외형적인 재현에 그치고 말았는가 하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둘째는 행사 시행과정의 문제로서, 시행 기관의 난립성에 따른 행사의 중복과 예산의 비효율성을 지적된다. 그간 궁중의례는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서울시, 각 구청, 그 외 지차제 등이 주체가 되어 추진해 왔다. 행사 주체가 다른 것은 문화행사의 다양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각 지차제에서 시행하는 전통행사를 자체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행사가 이곳 저곳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아예 같은 행사가 서로 다르게 시행되는 경우도 발생함으로써 예산의 낭비 내지 비효율성이 제기되어 왔다.
행사 주체의 난립에 따른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시행과정에서 학계의 충분한 고증이나 연구 없이 비전문가에 의해 재현이 맡겨져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전통문화 행사를 단순하게 관광 또는 축제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궁중의례의 원형 복원을 소홀히 하거나 왜곡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실제로 검증되지 않은 고증에 의해 재현행사가 되풀이됨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 심한 혼동과 왜곡을 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은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재현행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전통문화의 재현은 원형의 보존을 통한 전통문화의 가치와 정신을 되살리거나 계승 발전시키기보다는 관광자원, 산업자원으로 삼는 것에 치우쳐 있다. 그 한 사례로서 국왕행차의 경우, 그저 행차 목적과 내용에 관계없이 왕의 복장과 가마, 몇 개의 의물만 들고 행차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형식의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가장 격조높은 궁중문화를 저급하게 생각하거나 폄하하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셋째, 전통 재현행사를 담당하는 수행 업체의 비전문성과 영리성 추구에 의한 행사의 부실을 들 수 있다. 사실 국가의례를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부딪치는 당연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의례를 체계적으로 재현할 전담 기구와 전문 인력의 부족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행사 주관기관은 예산을 확보하고 수행업체를 선정하는 형태로 모든 것을 수행업체에 맡기는 실정이 된다. 이에 따라 행사는 수행업체가 고증위원의 자문을 받아 추진하게 되는데, 현실적인 여건상 충분한 고증과 자문은 애당초 어려운 형식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설령 고증과 자문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산, 시간, 능력, 여건의 미비 등 여러 이유로 고증과 재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2년 조선시대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을 수행업체가 위탁하지 않고, 처음으로 자체 인원을 조직하여 재현 행사를 직접 추진한 일은 매우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궁중의례 재현행사의 기간 및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들 수 있다. 궁중문화의 재현은 그 속성상 장기간 행사운영에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궁중문화 행사는 한 두 차례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와 거의 오랜 기간 지속하는 연중 행사로 운영되고 있다. 우선, 일회성 재현행사의 경우는 예산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재현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다음 행사에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수행업체의 교체 선정에 따른 불가피한 경험 단절이 재현행사의 수준을 고정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연중 행사는 현재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의 경우(5월~11월)에, 궁중의 일상 호위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행사 참가자 확보와 교육, 그리고 장기간 재현행사에 따른 예산의 부족 및 행사 규모의 간소화, 참가자 관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일상의 호위문화인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의 경우에도 횟수의 조정을 통한 충실한 재현행사로 전환하는 시도가 요구된다. 또한 행사 전담요원의 확보를 위해 군 관계기관이 협조를 얻을 수 있다면 특례 보충력(?)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 밖에 행사 참여자의 비 전문성에 따른 교육 및 관리의 어려움으로 행사의 부실화, 궁중의례의 재현 내용과 장소 또는 계절과의 불일치로 인한 행사 의미의 반감, 재현과 관련된 복식 의물 장비 무기 등의 부족과 제작에 따른 어려움, 재현행사에 의한 교육적 가치의 활용 등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4.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발굴과 재현 방향
조선시대의 궁중의례를 재현하려는 까닭은 단절되었던 전통문화의 원형을 복원함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고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찾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혜로 활용하는데 있다. 전통문화를 복원해 나가는 과정은 실제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고 국가적으로는 한국 문화의 개성을 지키는 일이며, 세계적으로는 문화적 다양성을 키우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통치규범이자 생활규범인 국가의례는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품격있고 격조높은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특성을 지닌다. 지난 199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처음 선정된 사실은 조선시대의 국가의례가 단순히 한국의 전통문화의 복원 차원이 아니라 인류문화에 중요한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귀중한 사례이다.
그러한 사실은 이제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발굴과 재현을 통해 다양한 한국 궁중문화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시켜야할 의무와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 준 셈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국가의례 가운데 궁중의례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일 뿐 아니라 세계인에게 선보여도 좋을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의 하나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인 창덕궁이나 신도시로 구성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상기한다면, 이제 우리가 그 속에 어떠한 궁중의례를 찾아 재현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궁중의례의 발굴과 재현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궁중의례를 발굴하고 재현할만한 휼륭한 문헌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에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의 기록문화는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겨준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이를 잘 활용만 한다면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될 만한 가치있는 궁중문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 한 예로서, 화성의 경우『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 기록된 각 행사 의례를 그대로 재현을 한다면 그 자체가 세계적인 무형문화유산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궁중의례를 복원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크다. 이때 그 궁중의례의 골격이 되는 것이 바로 『국조오례의』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례의는 조선왕조가 추구했던 성리학적인 이상사회의 정신과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복원작업은 일차적으로 오례의의 재현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오례의의 모든 내용을 오늘날 재현할 필요는 없다. 당대 사회의 이해를 위해서는 오례의의 모든 내용이 이해될 필요가 있지만, 지금 우리가 궁중의례를 재현하고자 하는 뜻은 조선시대의 의례를 통해 오늘날 계승해야할 정신이나 가치를 찾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오늘날 복원해야할 궁중의례를 간략히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吉禮의 경우는 현재 복원되어 시행중인 社稷과 宗廟, 文廟, 先農, 先蠶를 제외하고 雩祀儀, 久雨禜祭, 歷代始祖儀, 纛祭, 圓丘壇祭 등의 祭禮가 고려할 만 하다. 특히 대한제국 당시 새롭게 원구단의 복원을 통한 황제국으로서의 국가제례를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嘉禮의 경우 국가의례 중 가장 종류가 많고 활용가치가 높은 의례로서, 君主政의 권위와 질서를 상징하는 朝賀儀를 비롯하여 文科殿試儀, 武科殿試儀, 中宮養老儀 文武官冠儀, 納妃, 冊妃, 冊王世子儀, 敎書頒降儀, 鄕飮酒儀 등을 고려할 만하다. 셋째, 賓禮의 경우는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受隣國書幣儀, 宴隣國使儀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넷째, 軍禮의 경우는 그 동안 한번도 궁중의례로 재현된 바 없다. 大射禮, 觀射儀, 大閱儀, 講武儀, 吹角令 등의 軍禮는 兵은 百年을 쓰지 않을 수 있으나 하루라도 武備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담긴 의례들이다. 마지막으로 凶禮의 경우는 喪禮와 葬禮라서 복원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으나 즉위의례가 흉례에 嗣王儀로 규정되어 있다. 왕위의 계승이 선왕이 죽은 후에 진행되는 장례 절차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는 사실은 유교의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왕의 즉위의례보다는 왕세자 책봉의례가 한결 빛나는 축전이었던 것이다.
이 외에 오례의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궁중의례와 관련되어 왕실의 일상과 호위체제를 조명할 수 있는 현재 진행중인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이외에 순라의식, 적간의식 등 다양한 궁중의식을 발굴하고 활성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5. 맺음말
지난 95년부터 정부 주도로 조선시대의 궁중문화가 재현되기 시작하여 올해로 8년째를 접어든다. 하지만, 전통행사의 재현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이나 점검의 기회는 별로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통문화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그 이전 전통문화 재현행사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순서이다. 그 동안 사실 우리는 한국의 전통문화 가운데 민중문화의 발굴에 적지 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반면에 왕실문화나 선비문화의 발굴에는 다소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이제부터는 한국 전통문화의 균형적인 발전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늦었지만, 조선시대 궁중문화의 재현을 통한 원형 보존과 계승은 뜻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재현을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이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향후 한국의 궁중문화가 국민들에게는 민족적 긍지와 문화적 자부심을, 세계인에게는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시대의 국가의례를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 재현, 선양하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현재 국가의례의 재현은 문화재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서울시, 그리고 각 구청 등 다양하다. 여기에 각 지방에서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왕실 내지 국왕과 관련된 전통문화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각 지역에 맞는 전통문화를 향유하려는 인식은 좋으나, 문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이를 재현하여 뜻을 살리는 것은 매우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조선시대를 포함해서 전근대 모든 국가의례를 포괄하여 재현행사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를 전담 기구와 전문 인력의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국가의례의 연구를 위한 전문 연구인력의 양성과 함께 국가의례 전담관리 기구내지 부서의 확보는 한국 궁중문화의 발전은 물론 무형문화유산을 세계화시키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궁중문화의 재현을 위한 장기적인 운영계획이 필요하다. 그 동안 재현행사는 매년 그때그때 문화행사를 정하여 국가 행사이벤트를 위한 정치 홍보성행사,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철저한 계획성이나 준비성 없이 계획을 추진하게 되어 결국 졸속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예산의 낭비는 물론 전통문화의 가치나 의미를 왜곡하거나 상실하는 문제를 낳았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학계의 자문을 받아 궁중의례로 재현할 행사들을 선정하여, 이를테면 10년의 행사 계획을 미리 세우고 이를 연차적으로 추진한다면 궁중의례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의미있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재현을 위한 충분한 연구성과를 전제로 한 재현이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는 대부분의 재현은 전통문화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의상이나 장비, 의물, 그리고 음식 등의 외형적인 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재현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쉽게 그 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외형적인 모습이 일차적이고 중요한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조건에 앞서, 재현의 참뜻은 절제와 조화를 통해 질서를 추구하는 의례가 당대 사회에 지니는 의미와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현에 앞서 충분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그 속에서 재현의 참뜻을 발견하여 이를 알리기 위한 재현이 되어야 전통문화의 가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넷째, 궁중문화의 재현에 앞서 고증자료집의 발간은 물론 재현의 전 과정을 담은 종합보고서의 작성이 필요하다. 궁중문화 재현행사를 위한 자료화를 통해 후일 궁중문화 재현행사에 중요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사실 수 백년 동안 끊어진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설령 완벽한 고증과 재현을 했다 치더라도 그 원형에 다가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상 제약이 뒤따른다. 하지만, 원형을 찾아가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따라서 궁중문화의 재현행사와 관련된 자문회의 및 업무추진 과정의 회의자료로부터 연구총서의 발간, 재현의 전과정을 비디오 촬영 및 행사후 평가회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보고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작업만이 올바른 궁중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조선시대의 각종 행사보고서인 의궤가 담고 있는 조선의 기록문화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섯째, 궁중의례의 가치를 고양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5대 궁궐을 비롯한 역사공간을 최대한 활용함은 물론이고, 현재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과 화성, 그리고 종묘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된 종묘제례와 제례악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창덕궁에서 행해진 각종 궁중행사의 재현을 통해 창덕궁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그 속에서 재현하는 궁중의 무형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인데 비해 그 대문인 돈화문 앞에서 매일 벌어지는 수문장 교대의식은 전혀 학계의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단순히 전통적인 행사를 관광상품으로 소개하는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이 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전통문화를 단순히 관광자원 내지 산업자원의 수단으로 환치시키려는 안이한 발상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설픈 전통문화의 재현은 결국 우수한 전통문화를 우리 스스로 결국 깍아내리는 일이 되고 만다.
여섯째, 정부가 주도하는 재현행사를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상호 연계하여 공동주최의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현재 진행중인 재현행사는 비슷비슷하거나 중복되는 전통 문화행사를 서로 다른 국가기관에서 별도로 시행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전통문화의 재현이라면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사실은 그 목적이 모두 전통을 흉내낸 일회성 이벤트에 치우쳐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각 지자체가 전통문화 행사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동으로 개최하되, 고증은 학계의 전문가로 일원화하여 도움을 받는 방안이 요구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전통문화의 왜곡을 차단하고 국가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동시에 궁중문화의 재현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다듬어 갈 뿐 아니라 의미있는 문화행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는 300년을 주기로 문화적 황금기인 르네상스를 경험하였다. 15세기 세종의 시대, 18세기 정조의 시대가 우리 선조들의 몫이었다면, 21세기의 르네상스는 바로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지금 해야 할 일은 조선시대 국가의례의 원형 복원과 재현, 그리고 그 속에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적 가치과 정신의 발견, 그것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