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예 연구소 (2003 ~ 2023)
제목 : 조선후기 무묘의 창건과 향사의 정치적 의미
이름 : 심승구
등록일 : 2003-12-14 05:40:04

  <<조선시대 정치와 제도>> (집문당, 2003, 공저)
   
                          조선후기 무묘의 창건과 향사의 정치적 의미 
                                      -관왕묘를 중심으로- 

                                                                                            심승구
                                                                                  (한국체육대 교양학부 교수) 

                                           - 요약문 - 

오늘날 동대문 밖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를 관왕묘라고 하는데 동쪽의 관왕묘라고 해서 흔히 동묘라고 한다.삼국지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관우를모시는 사당이 왜 서울 한 복판에 모셔져 있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중국의 일개 장수의 묘인 관우묘를 왜 숭배하는가? 라고 반문하고 모화사상 내지 사대주의로 비칠수 있는 관왕묘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왕묘는 임진왜란 중에 설치된 이후 조선후기의 왕실은 물론 일반민중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차지해 왔다. 즉 왕실의 안녕과 민생의 부를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실제로 관왕묘는조선후기 국왕들에게 왕권강화의 기반으로 이용되었다. 그것은 관우가 충절과 의리의 상징적인 인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권강화에 주력했던 숙종, 영조, 정조등은 관왕묘에 대한 숭배를 통해 신하와 군사들에게 국왕에게 충성과 의리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조선말까지 지속되었다. 

아울러 관우는 오늘날 부처,마호메트 다음으로 동아시아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 이유는 관우가 재물신으로서의 영험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물신으로서의 관우의 영험은 바로 임진왜란 이후 민간신앙으로 발전해 나가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 왔다. 결국 이러한 조선의 역사성이 숨쉬는 것이 바로 동묘가 지니는 정치 사회적 의미이다.